무궁무진한 가능성
우리 가루쌀

글 ㅣ 김주희 사진·자료제공 ㅣ 국립식량과학원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쌀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 밥쌀 소비는 줄어들고 있지만 가공식품 원료로는 쌀 소비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가공용 쌀가루 전용 품종인 가루쌀을 개발해 재배와 소비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 온 쌀의 변신, 가루쌀

쌀은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 영양성분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소화 흡수가 잘 되고 포만감도 오래 간다. 다른 곡물과 섞어 밥을 지어도 맛이 뛰어나고 국이나 반찬과도 잘 어울려 한식을 대표하는 주식이다. 반찬이 없을 때는 차가운 물에 말아 끼니를 대신하고 잔칫날에는 떡과 술을 만들어 즐기며 언제나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 왔다.
현재는 1인 가구 증가, 식생활 문화 변화 등으로 가정에서 직접 밥을 지어 먹는 일은 줄고 있으나, 건강한 음식을 찾는 트렌드에 맞춰 쌀로 만든 가공식품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쌀국수, 쌀빵, 쌀케이크, 쌀과자, 쌀맥주 등 가공식품에서 쌀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쌀 가공식품 개발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간재인 쌀가루가 저렴하고 균일한 품질로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용이 편리하고 가공식품 특성에 적합한 쌀가루가 필요했다.
농촌진흥청은 제과·제빵 등 가공에 적합한 가루쌀을 개발했다. 가루쌀의 대표 품종은 지난 2019년 개발한 바로미2로, 밥쌀용 쌀 품종과는 전혀 다른 가공용 쌀가루 전용 품종이다.
그동안 쌀로 빵이나 떡을 만들려면 습식제분을 위해 단단한 멥쌀을 물에 불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멥쌀의 물성이 단단해 물에 불려야지만 분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식제분에 비해 비용이 높을 뿐만 아니라 공정이 복잡해 대량생산을 위한 설비 구축에도 많은 비용이 요구되었다. 밀보다 쌀을 가루로 만들 때 비용이 2배 이상 드는 이유였다.
가루쌀은 전분 입자가 성글게 배열되어 있는 ‘분질배유 유전자(flo7)’를 포함하고 있는 벼 품종으로, 농촌진흥청이 세계 최초로 확보한 건식제분 원천 소재다. 멥쌀과 달리 단단한 정도가 낮아 소규모 업체 제분기로도 쉽게 빻을 수 있으며, 대규모 밀 제분 설비에 현미를 넣어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쌀빵·쌀라면·쌀고추장 등 가루쌀 활용도 높아

가루쌀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공 분야는 베이커리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밀가루 대신 소화가 잘 되는 쌀빵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홍윤베이커리, 경기 홍종흔베이커리, 충북 진천쌀빵 미잠미과, 부산 라이스베이커리 등 지역 유명 베이커리에서는 가루쌀로 만든 다양한 쌀빵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베이커리 업체들이 가루쌀 특성을 고려한 제품별 혼합비율을 정립해 소비자가 즐겨 찾는 맛있고 건강한 쌀빵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도록 지난 2017년부터 (사)대한제과협회와 함께 ‘우리쌀빵 기능경진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 열린 대회에서는 제과·제빵 전문가 40팀이 참여했으며 소형 구움과자, 롤케이크, 건강빵, 조리빵 등 종목 한 가지를 정해 제품을 완성한 뒤 출품했다. 규정에 따라 미리 제공된 가루쌀을 섞어 만든 반죽을 이용했으며, 심사위원들이 맛, 예술성, 창의성, 대중성, 배합표 등을 평가한 후 20팀을 선발했다. 선발된 팀은 오는 11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3년 가루쌀 제과·제빵 경진대회’에 진출해 순위를 겨룬다. 또한 이번 대회에 출품된 40점의 쌀빵 제품은 지난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2023 국제종자박람회’ 홍보관에 전시돼 방문객들을 맞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소비자들이 가루쌀로 만든 쌀빵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루쌀과 함께하는 건강한 빵지순례’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백화점 식품관 반짝매장(팝업스토어)을 통해 전국 19개 동네빵집 쌀빵들을 선보였다. 또한 가루쌀 빵지순례 지도 포스터를 만들어 전국 베이커리 업체들 정보를 제공해 가루쌀로 만든 쌀빵을 홍보하고 있다.
소화불량이나 글루텐 알레르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라면을 먹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도 희소식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세종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이수용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한 ‘가루쌀 혼합 비율에 따른 라면 가공적성 연구’에서 밀가루 사용량의 20% 이내를 가루쌀로 대체해도 전량 밀가루로 만든 라면과 품질면에서는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대표적인 밀가루 소비 식품인 라면 생산 현장에 이번 연구 결과를 적용했을 경우, 연간 7.7만 톤의 밀가루를 가루쌀로 대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농심과 삼양식품, 하림산업은 가루쌀로 저칼로리 볶음면과 짜장라면 등 가루쌀라면을 개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듬영농조합법인은 2019년부터 농촌진흥청과 협력하며 가루쌀로 빵, 과자 같은 제품을 만들어왔고 현재 대형 온라인쇼핑몰과 대기업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 등에 납품하고 있다. 샘표식품은 농촌진흥청과 함께 가루쌀로 만든 ‘100% 국산 쌀 고추장’을 개발했으며, 해태제과는 가루쌀을 넣은 오예스 개발에 나섰다. 대전 유명 베이커리인 성심당도 가루쌀 식빵과 케이크 개발에 한창이다.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 가루쌀의 미래 기대돼

가루쌀은 생육기가 짧은 조생종으로 다른 작물과의 돌려짓기에도 적합하다. 전북 지역에서는 6월 하순부터 7월 초까지 모를 낼 수 있어 맥류 돌려짓기를 했을 때 수확작업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도열병, 흰잎마름병과 줄무늬잎마름병에도 강한 복합저항성을 갖춰 생산량 증가, 노동력 감소 효과가 있어 농가 소득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쌀 수급 균형을 회복하고 식품 원료곡 수입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해 ‘2023년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경상남도에 있는 2,000ha 규모의 38개 생산단지가 참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전담관리팀을 지정 운영하고, 재배기술 교육과 기술지원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도 농업기술원,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관계관과 민간전문가, 협력업체 등으로 구성된 4인 1조 전담팀이 각 생산단지를 맡아 가루쌀 재배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육 불량이나 병해충 등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지원한다. 특히 육묘장 준비 단계(5월), 모종 기르기와 모심기(6월), 벼 이삭 나오는 시기(9월), 이삭이 익는 시기(10월)에는 집중적인 현장점검과 기술지원을 펼치고 있다.
또한 7월 17일부터 10월 말까지 ‘가루쌀 종합상황실’을 한시적으로 운영해 전국 가루쌀 생산단지의 생육상황과 현장 어려움 등을 종합해 균일한 품질과 일정한 수량의 가루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가루쌀은 쌀 소비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을 개선하고 새로운 식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품종이다. 또한 농가는 소득 향상을, 제조업체는 상품 개발에 필요한 쌀가루를 보다 편리하고 저렴하게 사용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보다 건강한 식생활, 새로운 미식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궁무진 가능성이 있는 가루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쌀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