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한국형 캔탈로프멜론
연구개발 성공

장춘종묘 최응규 대표

글 ㅣ 하우람사진 ㅣ 최성훈
종자 산업이란 단기간 내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민간기업에서, 그것도 소수의 인원으로 품종을 개발하고 수익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농업회사법인 장춘종묘를 운영하고 있는 최응규 대표는 육종개발을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재배되는 캔탈로프멜론을 육종하여 국산화에 성공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육종가가 되고, 어떻게 국산화에 성공하게 됐을까?
최응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우리나라 채소분야
제1호 개인육종가

장춘종묘 최응규 대표
‘왜 우리나라 씨앗을 안 쓰고 일본에서 돈을 주고 살까?’ 농촌에서 자랐던 최응규 대표는 어릴 때부터 종자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렴풋하게 일본산 종자와 국산 종자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최응규 대표는 수입산 종자를 판매하는 종자회사를 눈여겨봤고, 이후 성장하며 농업을 전공하여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떡잎부터 육종가’였던 셈이다.
“어릴 때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일본 씨앗을 안 산다면 아버지가 나한테 용돈을 더 줬을 텐데, 그 돈으로 사탕이라도 하나 더 사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작은 곳에서의 생각들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좋은 씨앗을 개발하면 동네 어른들이 좋아할 거고, 돈이 많아지고, 온 동네 친구들도 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이것이 채소 육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중앙종묘 육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최응규 대표는 1995년 1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때부터 ‘개인육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에는 개인육종가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수입산 종자 중개상이었던 ‘통일장춘종묘’를 인수한 최응규 대표는 한국 농업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목표로 육종연구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일본 종자회사에서 함께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당시 고령군 성산면의 멜론단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육종가들로부터 같은 문제를 함께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았죠. 파파이야멜론의 수확시기 때 찾아오는 시듦병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일본 육종가들이 우리나라보다 사정을 더 정확히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함께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도 더 강했고요.”
최응규 대표는 일본의 공동연구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내병성 파파이야멜론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산·학·연이 힘을 합쳐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일본을 보며 ‘우리나라의 개인육종가들에게도 농촌진흥청이나 산·학·연이 매치되어 신품종을 개발할 기회가 더 주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국내 재배용
‘한국형 캔탈로프멜론’ 육종

캔탈로프멜론
캔탈로프멜론
우리나라의 멜론 재배는 2000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당시 멜론 농가에서는 바이러스로 인한 시듦병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재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때문에 병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일이 시급했고, 최응규 대표는 최대한 빨리 한국형 멜론을 연구개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서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도 증가하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맛본 캔탈로프멜론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한국에서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 없었습니다. 만약 품종 개발에만 성공한다면 장춘종묘와 재배농가, 소비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박과채소를 연구해왔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2000년이 찾아오고 ‘밀레니엄 시대’가 왔다며 사람들이 흥분했을 때 다짐했습니다. 2020년 이전에는 한국에서도 캔탈로프멜론을 키울 수 있게 만들자고 말입니다.”
캔탈로프멜론은 로마 교황청이 있는 캔탈로프 마을에서 활발히 재배되었다는 뜻에서 ‘캔탈로프멜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의 유래에서 엿볼 수 있듯 유럽에서 주로 재배됐다. 향이 좋고 영양소가 풍부하여 국내에서도 수요가 높았지만, 재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수입산 캔탈로프멜론은 고가로 판매되고 있었다.
“장춘종묘에서 개발한 한국형 캔탈로프멜론 4품종은 흰가루병 및 바이러스병 저항성 품종입니다. 친환경재배가 가능하고 멜론의 화흔부(꼭지)가 단단해서 저장성이 좋다는 점이 특징이죠. 2017년부터 농가실증시험을 통해 보급했고, 2018년부터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기존 멜론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백화점과 SNS를 통해 거래되면서 재배 농가에게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은 우수 연구개발 사례 10건을 발표했다. 이때 장춘종묘의 최응규 대표는 흰가루병 및 바이러스병에 저항성이 있고 친환경재배가 가능한 캔탈로프멜론 4품종의 재배에 성공해 농가 고소득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00년이 찾아오고
‘밀레니엄 시대’가 왔다며
사람들이 흥분했을 때 다짐했습니다.
2020년 이전에는
한국에서도 캔탈로프멜론을 키울 수 있게
만들자고 말입니다.

장춘종묘 최응규 대표

“종자 연구개발,
사명감이 필요한 작업”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농가에 보급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최응규 대표가 개발한 한국형 캔탈로프멜론은 2012년 처음으로 개발됐지만, 정식으로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육종의 특성상 어려움도 많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멜론 연구에 매진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힘든 고비를 자주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난 당신이 돈을 못 벌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아내의 응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만약 돈을 벌고 싶었다면 육종가가 아닌 다른 일을 선택했을 겁니다. 외국 품종 대신 국산 품종을 개발하여 국산화를 이루고 싶다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육종가의 길을 멈췄을지도 모릅니다.”
최응규 대표는 한국형 캔탈로프멜론을 개발한 뒤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꾸준한 연구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게 최응규 대표의 지론이다. 그에게는 연구개발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만약 벼 줄기에서 바나나가 열린다고 생각해봅시다. 굉장히 낯설겠지만, 바나나가 비싸서 못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일들은 향후 반드시 연구개발을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만 언제 이루어질지, 시기가 문제일 뿐입니다. 꾸준한 연구개발의 힘은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최응규 대표는 한 알의 씨앗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최응규 대표는 지금도 당도가 더 높고 과즙이 풍부한 멜론을 개발하고 있다. ‘그대로 베어 먹어도 주스를 마시는 듯한 식감’의 품종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장춘종묘가 연구개발하는 종자들은 농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장춘종묘 최응규 대표
장춘종묘 최응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