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삼의 가치,
품종 개발로 다시 활짝

글 ㅣ 김주희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 인삼과
인삼은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지만, 고려인삼만큼 오래도록 효과 좋기로 정평이 난 인삼이 있을까?
중국, 일본 등지에 조선의 사신이 오가면서 함께 들여온 인삼에 사람들이 열광했다는 것은
고려인삼이 다른 지역에서 난 인삼과는 격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오래도록 지켜온 정통성이 고려인삼의 자랑이지만, 현재는 품종 개량과 대량 생산을 함께 해온
중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재배한 인삼에 물량이 밀리고 있다.
세계 인삼거래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홍콩 인삼시장에서는 미국, 캐나다 산 화기삼의 물량이 ⅔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인삼 육종이 이루어지는 이유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인삼 재배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인삼 재배부터 품종 육성까지,
우리인삼의 역사

원래 삼이라고 하면 산삼을 일컬었다는 말이 있다. 심산유곡에서도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산삼이지만, 약용으로 큰 효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수요가 높아 그만큼 고갈되기도 쉬웠을 터다. 워낙에 오랜 시간을 들여야 뿌리가 발달하는 만큼 고려시대 말에도 인삼 부족 현상이 나타났던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처럼 대량재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정조실록’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00년대에는 임간재배에서 밭으로 내려와 인삼농사를 짓는 방법이 발달되었는데 음지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해를 가리고 땅을 관리하는 약토 만들기 등이 개발되었다.
그 전에는 인삼의 품종을 육성한다는 의식이 없었지만 1926년부터는 각각 색이 다른 인삼 변종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경기도 개풍군에서는 과실의 색이 황색인 황숙종, 붉은색과 황색의 중간인 등황색 과실인 등황숙종이 발견되었고, 장단군에서는 인삼 줄기의 색깔이 녹색인 청경종이 발견되었다. 이와 비교해 줄기가 자색이고 붉은 색 열매를 맺는 재래종을 일컬어 자경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종들이 발생하면서 유전자원 선발이 시작된 것이다.
인삼 이미지
보다 체계적인 연구는 1962년 중앙전매기술연구소 산하 고려인삼시험장이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고려인삼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80년대에는 고려인삼연구소가 한국인삼연초연구소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때부터 농가에서 수집되고 선발 육성된 계통들을 대상으로 지역 적응시험이 본격적으로 수행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미국삼, 삼칠삼 등 다른 지역에서 자란 인삼을 대상으로 교배육종도 시도되었지만 고려인삼과 미국삼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종자가 맺히지 않아 연구가 중단되기도 했다.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인삼 품종 육성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이르러서다. 2000년 초반에는 한국인삼공사가 민영화되면서 유전자원 317점이 농촌진흥청으로 이관되었는데 이를 통해 국가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 인삼 육종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지역 특화작목연구소에서도 본격적으로 인삼 육종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농업유산으로도 지정된 금산이 위치한 충청남도, 개성 인삼으로 이름 높았던 경기도 등이 인삼 품종 연구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1990년대부터 쭉 이어져 온 노력 덕분에 2020년 기준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인삼 품종은 약 32종에 달한다.

꾸준하게, 끈질기게,
자식농사만큼 어려운 인삼 품종 개발

다른 작물로 농사를 짓는 것과 인삼 농사를 짓는 것의 차이점 중 가장 큰 것은 들이는 시간이다. 한 번 인삼 묘종을 밭에 옮겨심고 나면 최소 3년간, 길게는 6년까지 같은 장소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토양 조건을 잘 관리해야 하고, 들이는 정성도 적지 않다. 그런 데다 여름이 너무 뜨거우면 고온장해를 입어 광합성을 중단하고 뿌리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도 인삼 농사의 어려운 점이다. 6년간 정성을 기울였어도 자연재해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과 동업한다는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작물을 심고 거두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품종개발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순계분리육종법에 의해 인삼의 품종을 육성하고자 할 때도 12년에서 15년이 소요되고 이런 순계의 품종을 교잡해서 상품성 있는 품종을 만들어 내려고 할 때는 30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인삼 한 뿌리에서 채종할 수 있는 씨앗이 1년에 약 40개가 되기 어려운 것, 유전 형질의 변이 폭이 좁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도 인삼 육종을 어렵게 했던 요소들이다.
인삼 이미지
키우기가 어려운 작물인 만큼 육종을 통해 개량하고자 하는 요소들도 다양하다. 뜨거운 온도에서 쉽게 자라지 않고 지상부부터 잎까지 황갈색으로 타들어가는 습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온저항성 형질을 키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인삼은 토양의 성질에 민감하지만, 장기간 재배하면서 땅의 염류농도가 높아지는 것에도 영향을 받아 황화, 적변 등이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생리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염류 저항성을 키우는 것도 육종의 목표 중 하나다. 인삼 재배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기전염성 병해인 점무늬병 저항성 높이기, 연작을 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피해인 뿌리썩음병 저항성 높이기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각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낸 품종들도 다양하다. 인삼공사에서는 2002년 최초로 등록한 천풍을 비롯해 약 20품종을 개발했다. 여기에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천량 등 4품종, 경기도원과 경희대 산학협력처가 공동으로 개발한 2품종, 충남도원에서 개발한 3품종 등이 있다. 재래종에 비해 병해충에 강하고 약용 성분인 사포닌을 다량으로 함유하면서도 수량이 많이 날 수 있도록 개발한 품종들이다. 다만 증식 배율이 낮은 편이라 육성된 품종을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조직배양을 통한 대량 증식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정상적이고 우량적인 식물체를 얻기 힘든 데다 조직배양을 한 모종이 자연환경에서 생존율이 낮아 실제 인삼 품종 증식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또한 생산자 중심의 품종 육성이 우선적으로 진행된 만큼 가공적성이 우수한 소비자 중심 품종 육성도 숙제로 남아있다.
반면 인삼 품종개발과 함께 거두게 된 성과도 있다. 인삼 품종을 구분할 수 있는 DNA 판별기술과 PNA 판별기술이 대표적이다. DNA 판별기술은 인삼 유전자를 기반으로 품종을 구별할 수 있는 마커를 선발해 이를 표지삼아 인삼 품종을 판별하는 방식이다. 반면 PNA 판별기술은 국산 주요 인삼 품종과 대표적 외국삼인 미국 화기삼의 펩티드 핵산을 칩에 심어 구별하게 한 방법이다. 값싼 수입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다, 신품종 인삼에 대해 품종 보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별을 위해 수집된 DNA 정보는 우수 품종을 육종하는 토대로도 쓰일 수 있어 한층 약효가 우수한 인삼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천량

천량

여주 재래종에서 순계 분리하여 만들어낸 2011년도 출원 품종이다. 땅 속 염류에 저항성이 강하고 다수성 품종이다. 줄기는 연한 자색이고 열매는 적색이며 잎이 아래로 뒤집혀 볼록하기 때문에 다른 품종과 쉽게 구분된다. 농촌진흥청이 최초로 등록한 품종이며 뿌리 수량이 많아 홍삼용으로 적합하다.
고원

고원

2013년도에 출원되었으며 수원 재래종에서 순계 분리한 품종으로 점무늬병에 저항성이 강하다. 뿌리가 길게 발달해 수량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줄기나 열매는 천량과 비슷한 색을 띄지만 잎 모양이 편평하다. 또한 면역기능을 높여주는 진세노사이드 Rb2, Rd의 함량이 높다.
천명

천명

열매가 살구색이며 잎은 노화되었을 때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부여 재래종에서 순계 분리하여 적변에 저항성이 강하다. 또한 뿌리 수량이 많이 나오는 다수성 품종으로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2015년도에 출원되었다.
진원

진원

2018년도에 출원되었으며 고온저항성이 큰 장점이다. 줄기와 잎자루 전체가 자색이며 진세노사이드 Rb1, Rb2의 함량이 높다. 고온저항성인 만큼 이상기후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