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 사과숲애의 한호균 대표는 2020년 세계농업기술상 기술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40년 넘게 사과 농사를 지으며 느낀 어려움을 해결하려 여러 농업시설을 개발한 것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반자동 우박 가림 시설, 잡초생장 방지 장치, 농업용 시트 개폐 장치 등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원동력으로 한호균 대표가 꼽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립심’이다.
자립 가능한 요건을 기준으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지속적인 농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장수 시절의 경험이 이끌어준 사과농사
거창에서 나고 자랐던 한호균 대표는 농사를 짓기 전 다양한 일을 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나뭇짐을 지고 거창 읍내에서 나무 장사를 했었고 10대 중후반에는 서울의 신발공장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계를 잇기 위해 팍팍한 삶을 살 때 어렴풋하게나마 사과 농사에 대한 꿈을 품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다른 나무장수가 사과나무에 매어뒀던 소가 사과나무를 크게 상하게 한 것이다.
“당시 달구지에 가득하게 담은 나무 한 짝이 40원 돈이었는데, 사과나무가 꺾여서 넘어가니 보상으로 100원을 줘야 했어요. 그걸 보고 사과나무가 있으면 생계는 해결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죠.”
타지를 돌아다니다 19세에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 참여했던 4-H 활동은 사과 농사에 대한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지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과 재배 교육을 받아보니 전망도 괜찮았고, 새롭게 사들인 땅의 토양 성분도 과수 농사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쌀을 심어도 힘든 시기에 사과 농사를 왜 짓느냐며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농장은 꾸준한 정성으로 입소문이 나며 점차 궤도에 올랐다. 특히 한호균 대표가 공을 들인 부분은 토양관리였다. 일반적으로는 땅에 영양분을 가득히 주려고 토양관리를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토양을 1년에 한 번씩 분석하면서 필요한 성분을 넘치지 않게 주는 방식을 택했다.
“보통 농사를 지을 때 거름이나 비료를 많이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약을 많이 치면 농사가 잘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농부의 마음가짐이 아닌 목수의 마음가짐입니다. 목수야 나무가 크게 잘 자라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으니 크게 키우고 싶을 수 있지요. 하지만 농부의 목적은 나무를 크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맛있게 키워내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무가 비대하게 자랄 필요가 없어요.”
한호균 대표의 철학은 돌려짓기를 하지 않고 사들인 땅에서 꾸준히 농사를 짓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보통은 지력이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 땅을 바꿔가며 농사를 짓곤 한다. 그러나 한호균 대표는 자신의 땅에서 돌려짓기를 하지 않고 사과나무를 심은 것이 벌써 네 번째다. 비배관리를 남들이 보기에 풍족할 정도로 하지 않고도 농업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결과로 보여준 셈이다.
지속가능한 농법, 소모성 비용 줄이기에서 시작된다
거창에서 사과 탑프루트 회장, 거창군사과발전협의회장을 역임할 만큼 사과의 애정이 남다른 한호균 대표는 사과 재배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육에서 한호균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립심과 열정이 농사에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과 한 박스의 가격이 고작 1만 원이라도 이를 버텨낼 수 있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모성으로 나가는 돈을 줄여 지속가능한 농사를 짓는 것은 그 스스로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기계농업이다. 26,446㎡(약 8,000평)의 밭을 가꾸고 수확하는 데 가족들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다양한 기계 덕분이다. 다만 투자와 소모의 경계는 엄격하게 긋는 게 필요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농기계를 들이는 것은 투자지만, 그 농기계를 계속 바꾸기 위해 돈을 들이는 것은 소모죠. 사소해 보이지만 꾸준히 나가는 비용도 있어요. 사과 농사를 지을 때 사과에 색이 골고루 들게 하기 위해 밭에다가 은박지를 깔아요. 저희는 이 은박 시트를 15년째 쓰고 있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집도 있거든요. 1년 내내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딱 15일 정도 숙기에 과일 색을 예쁘게 하기 위해 쓰는 건데 이걸 버리면 이중으로 소모돼요. 우선 내년에 다시 은박시트를 사는 것이 소모고, 버리면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소모죠.”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게 된 것도 관행 농법의 소모적인 면을 자각하게 된 부분이 크다. 풀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다 보면 지렁이나 토종 미생물이 죽으면서 땅의 생명력도 깎여나간다. 그러면 땅의 영양을 살리기 위해 비배관리가 필요하다며 비료를 투입하면서 꼬리를 무는 소모성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사과는 식량 작물이 아닌 기호식품이다. 시세가 오롯하게 소비자의 기호와 주머니 사정에 달린 것이다. 그런 만큼 경비를 줄이고 환경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유지해야 종종 닥쳐오는 위기도 견뎌낼 수 있는 농업체력이 갖춰지는 것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우박 가림 시설이 통째로 뽑히고 쓰러질 때도 그간 온전히 모아놨던 경험과 자금으로 회생이 가능했다.
“잡초 생장을 방지하는 방초망이나 우박 가림 시설 등은 처음에는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고 설치한 거였어요.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잡초가 자라지 않게 망을 치고 나무들이 우박에 맞지 않게 보호막을 쳐준다는 목적이었죠.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 장치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방초망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흙의 수분을 유지시켜 주는 데다 겨울철 동해()와 꿩이 나무뿌리를 쪼는 것도 막아줬습니다. 우박 가림 시설은 한여름에는 사과의 햇빛 화상을 방지하고 새가 쪼아 먹지 않게 보호해줬어요. 또한 저희는 호박벌로 수정을 시키는데 이 넓은 과원에서 호박벌이 이탈하지 않고 수정 시키도록 도움을 줬지요. 인공수정을 시키는 것도 인건비가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친환경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소모성 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농업체험, 미래 세대를 기대하다.
한호균 대표는 2019년 ‘사과숲애’라는 이름으로 농원의 이름을 새롭게 등록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과 농사의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아들과 며느리가 사과체험을 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면서 이름을 그에 맞게 새롭게 지은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개방하지는 못하지만 시간별로 한 팀씩만 받으면서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체험은 어린이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를 채워가는 어린이들에게 미각체험과 농업체험이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뿌듯했던 것 중 하나가 어른들은 몰라도 어린이들은 우리 농장의 사과를 꼭 알아맞힌다는 겁니다. 그만큼 어린이들은 경험을 흡수하는 능력이 빠르고 정확해요. 농업체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농업의 본을 보여주면 그걸 기억하고 배워갈 테니까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체험은 ‘사과 샌드위치 만들기’와 ‘나는야 사과 농부’로 두 가지다. ‘사과샌드위치 만들기’는 농장에서 엄선한 사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스스로 즐기는 카페 콘셉트의 체험이다. 샌드위치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나 사과주스도 함께 제공되어 한 시간 동안 일행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 ‘나는야 사과 농부’ 체험은 각자가 꿈꾸는 사과를 표현하는 미술체험과 사과의 한살이 과정을 이해하고 사과씨앗으로 화분을 만드는 농업체험이 결합된 형태다.
“이제까지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했지, 이 공간이 삶의 쉼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다만 손자와 자식들이 이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으니 그만큼 깨끗하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 정도만 했지요. 지금은 이 농장이 삶의 쉼터를 넘어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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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를 돌아다니다 19세에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 참여했던 4-H 활동은
사과 농사에 대한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지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