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사과 품종은 1890년대 일본 나가노 사과시험장에서 선발된 ‘후지’가 36.8%, ‘후지’의 변이 품종이 36.7%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의 좋은 품종이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만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사과 품종이 해외에서도 충분히 오랜 기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좋은 품종이 가지는 가치는 매우 큽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우리 품종을 소개하고 즐기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과연구소 건물 벽면에는 ‘인류 역사를 바꾼 네 개의 사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사과, 빌헬름텔의 ‘자유’의 사과, 뉴턴의 ‘과학’의 사과, 그리고 우리나라 사과 재배 농업인의 ‘기회’의 사과입니다. 같은 사과를 재배하더라도 더욱 다양하고 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사과연구소와 농업인들이 함께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우리 사과 품종은 조금씩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감홍’은 재배가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맛이 좋은 사과로 알려지면서 문경과 포항 등지에서 특산품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리수’는 추석용 신품종으로 식감과 병해 저항성이 좋아 묘목을 심는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루비에스’, ‘피크닉’ 등과 같은 중소과 사과 품종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현장에서 묘목을 보급하는 단계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7년에서 10년까지도 걸려요. 아직 농업인들이 우리 품종을 재배하기엔 헤쳐 나가야 할 난관과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품종을 재배하고 소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사과연구소는 품질이 뛰어난 사과 품종을 개발하는 일과 함께 이상기후에 대비한 품종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이상고온 현상은 기존에 비해 7배 정도 늘었다. 특히 2018년은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피해가 컸던 해라고 기억할 정도다. 사과꽃이 필 무렵인 4월 초순에 영하 8도의 한파가 찾아와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꽃봉오리가 90% 이상 얼어 죽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름의 사우나 같은 더위와 가뭄은 제대로 된 과실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고 살아남은 열매들은 우박과 태풍으로 다시 한 번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기후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 병해충 발생 양상도 사과 품종 연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사과를 지을 때 병해충은 약 12종이었지만 지금은 탄저병이나 노린재 같은 병해충 등 총 18개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꽃매미충이나 미국선녀벌레, 총채벌레 등이 들어와 여러 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기후가 변화하면 그와 연결된 다양한 요소가 사과에 총체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재배 기술, 그리고 농가의 일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스마트 사과원 개발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과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 농업인 분들도 함께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과수화상병 박멸을 위한 최선의 수단은 예방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공적방제 매뉴얼을 지켜서 예방을 꼭 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