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으로 가득한
우리 토종종자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

글 ㅣ 김희정사진 ㅣ 황성규
흙살림연구소의 시작은 199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한 이태근 회장이 괴산에서
미생물연구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흙살림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건 것이다.
당시 유기농법에 대해 현장에서 연구하자는 목표를 지니고 농민 회원을 모은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부터는 토종 종자에 대한 관심을 더했다.
2011년에는 토종종자를 연구하는 흙살림 토종연구소도 개소했다.
흙살림 토종연구소의 윤성희 소장에게 토종종자의 중요성과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흙을 살리고 재래종을
살리는 방법을 찾아서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
농업에 있어서 흙의 중요성은 말로 헤아리기 어렵다. 각종 시설재배에도 흙을 기반으로 하는 농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흙살림이라는 이름을 붙인 연구소가 세워진 이유는 과도한 농약이나 비료가 흙의 생명성을 죽이게 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챙기면서도 친환경 농업, 유기농업을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전파하고 이를 운동으로써 진행하는 데에 흙살림연구소의 목표가 있는 셈이다.
“흙살림연구소의 전신인 괴산미생물연구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유기농업기술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일본이나 유럽에서 기술을 도입해서 활용해 봐도 외국의 흙과 우리의 흙이 달라 실패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 맞는 유기농업 방식을 찾으려고 한 것이 흙살림연구소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유기농법에 대한 정책적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1997년 친환경농법 육성법이 제정되면서 한층 친숙해졌습니다.”
윤성희 소장이 흙살림연구소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이러한 유기농업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농대 출신으로 학생일 때부터 농약이나 비료 없이 가능한 농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극소수였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어 흙살림연구소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농대에서도 작물유전학과 출신이었던 만큼 종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토종종자 연구로 그를 이끌었다. 풍토에 잘 적응한 재래종으로 농사를 지으면 농약과 비료를 덜 쓸 수 있어 흙살림과도 밀접한 연결점이 있던 것도 한 몫 했다.

1,500종의 토종종자,
냉장고에서 나와
싹틔우는 것이 필요해

현재 흙살림 토종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토종종자의 수는 1,500여 종에 이른다. 매해 활용하는 종자는 달라지지만 언제라도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저온에서 보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안완식 박사로부터 다양한 종자를 분양받기도 하고 토종종자 수집단도 운영하면서 확보한 종자들이다. 2010년에는 충북 괴산군 안에서 300종이 넘는 토종자원을 수집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1910년대에 기록된 ‘조선도품종일람’에서 조선 경성부에서 재배되던 재래종 벼가 메벼는 19품종, 찰벼가 7품종에 달합니다. 키가 큰데 쉽게 쓰러지지 않는 특징을 가진 ‘백석벼’ 같은 경우에는 충북 단양 일대에서도 재배되었죠. 200년 전 임원경제지에 나온 ‘목움추리벼’ 같은 경우에는 키가 작고 이삭목이 짧은 대신 알곡이 빽빽하게 달린 것이 특징이었고요. ‘돼지찰벼’같은 경우에는 국제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의 맛의 방주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벼들이 한 지역 안에서도 다양하게 재배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품종들이 농사용 종자로 쓰이는 것을 쉽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
이런 다양한 품종들이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육종학의 발달이 이뤄낸 결실을 대변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수량이 많고 병에 강한 우수 종자들을 개발해내고 이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는 옛 종자들은 뒤로 밀리기 쉽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토종종자를 찾지 않는 만큼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자원이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건물은 설계도가 있다면 화재가 난 뒤에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생물자원은 그렇지 않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토종종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농법도 같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재래종 벼 같은 경우에는 땅에 비료를 많이 줄수록 쉽게 쓰러지는 경향이 있는 품종도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전통 농법은 텃밭 이상의 규모로 키우는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규모를 키우면 이를 소비할 소비자도 있어야 하는데 어지간히 시장 접근성이 없으면 불확실성을 안고 가기가 어렵거든요. 일부 소비자 조직에서는 관심을 많이 가지지만, 가성비 문제도 있어서 소명 의식으로만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토종종자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물자원 그 자체의 중요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기후 변화가 닥쳐왔을 때, 다양한 유전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토종종자의 매우 기초적인 부분이다. 토종종자에서 유래된 식문화적인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점이다. 가공식품으로 배고픔을 달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그 지역에서만 나오는 맛을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순히 종자의 우수성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특이한 다양성의 가치들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유럽의 포도주 산업은 그 지역의 전통적인 포도를 쓰죠. 같은 품종을 미국에 가지고 와서 심어도 지역에 따라 포도 맛이 달라집니다. 와인이나 포도 식초 등에 빈티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이런 지역성, 품종성, 역사성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식문화에서도 가능합니다. 토종의 다양성이 받쳐주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종자들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지만요.”
흙살림 토종연구소

생산성을 챙기면서도 친환경 농업,
유기농업을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전파하고
이를 운동으로써 진행하는 데에
흙살림연구소의 목표가 있는 셈이다.

공공육종에서 나아가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토종종자로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이 토종종자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전문가나 농업 종사자들만 토종종자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집에서 취미로 텃밭을 키우는 사람들이 토종 상추나 배추씨 등을 분양받아서 키워내는 것도 토종종자를 이어나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토종종자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토종종자를 분석해서 기능과 영양 성분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등이다.
“‘개굴팥’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종자가 가진 특질이 다른 수십 가지 재래종이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이렇게 이름이 같으면서도 다른 토종종자들을 모두 모아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종자를 꾸준히 보존해온 농진청과 같은 기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니까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지역별로 특징 있는 특산품을 만드는 것은 시장에 맡길 수도 있거든요.”
다양한 재래종을 잘 키워 가공업체나 식당에 연결하면서 독특한 식품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괴산찰벼’와 같은 경우, 괴산군에서 1996년에 수집된 벼지만, 그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재배가 되지 않았던 재래종이다. 이 찰벼를 이용해 괴산의 찰떡을 만드는 등으로 지역 특유의 관광상품을 만드는 식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살릴 수 있는 사업들이 만들어질 여지가 적지 않다. 다른 지역의 유기농 찹쌀을 가져오는 것보다 그 지역의 재래종을 이용하는 것이 고유성을 살리기 쉽다는 점도 강점이다.
“품종마다 지니고 있는 맛도 다 특색이 다릅니다. 하지만 이런 토종의 맛은 그 종자가 사라져버리면 영영 복원하기가 어려워요. 유럽 같은 경우에는 토종종자 관련해서 우리보다 역사가 3~40년은 앞서 있지만, 진행하는 사업들도 옛날에 모았던 종자들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토종종자를 다양하게 모으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토종종자로 키운 농작물을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 먹고, 텃밭에서 키우며 지속적으로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종종자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소장
흙살림 토종연구소
주소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쇠실로 286-138
연락처 : 043-216-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