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먹거리를
묵묵하게 만든다

지리산이혜령발효농원 이혜령 대표

글 ㅣ 김주희사진 ㅣ 황성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산청군의 지리산이혜령발효농원의 이혜령 대표는 훌륭한 롤모델이다.
2002년부터 귀농을 준비하다가 2008년에 본격적으로 귀농을 한 뒤,
자신의 장기를 살려 기업을 세우고 지금까지 탄탄하게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산청군의 생활개선회에 들어가 지역 내에서도 든든한 일꾼으로 지역사회의 인망도 두텁다.
한국농식품여성 CEO로서 다방면에 선한 영향력을 뿌리는
이혜령 대표에게 귀농 과정과 회사 운영기를 들어보았다.

형제들과 귀농,
새로운 생활을 맞다

이혜령 대표가 산청으로 귀농을 하게 된 데는 이모님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 산청에서 15,000평 넓이에 감 농사를 지으시던 이모부가 돌아가시면서 이모님 홀로 감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것이 첫 걸음이었다. 형제들과의 논의 끝에 함께 산청으로 귀농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시작한 것이 알천농원이다. 감 농사가 가을에만 수익이 있는 만큼 이와 별개로 장류와 식초 등을 담가 꾸준한 수익을 올려보고자 가족기업을 세운 것이다.
“원래는 알천농원에서 장류며 식초며 담그곤 했어요. 그런데 장아찌 종류를 만드는 발효정원을 세우고 나니 여기에서도 장류나 식초를 담그는 것이 꼭 필요해진 거예요. 판매 품목이 겹치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고민을 했어요. 나중에는 알천농원에서는 학교 급식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식으로, 발효정원에서는 여러 발효 장류와 장아찌 등을 판매하는 식으로 정리가 되었죠.”
발효농원
알천농원
이혜령 대표가 이렇게 발효정원을 세우게 된 데에는 그의 요리솜씨와 밝은 눈이 한몫했다. 본래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선생에게 요리를 배울 정도로 요리에 관심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농토에서 지천으로 발견되는 약초를 보았을 때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당귀, 취나물, 민들레 등 다양한 풀을 채취해 장아찌로 만들어두었다가 지인들이 왔을 때 장아찌들을 반찬으로 내놓으니 반응도 좋았다.
“2008년에 남편이 명예퇴직한 뒤 산청에 아예 집을 짓고 귀농했어요. 지인들이 한 명, 두 명 놀러오면 밥을 차려주니 다들 판매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밖에 있는 장항아리들도 참 토속적이고 장식으로 괜찮다고요. 체험장을 만들거나 장아찌류를 담그면 좋겠다고 말해줘서 용기를 냈죠. 그래서 약초들이 피우는 꽃도 아름답지만 우리 모두 건강한 먹거리를 섭취하며 인생을 꽃피우고 발효도 꽃피우자는 의미로 지리산이혜령발효정원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지천에 있는 약초들이었지만 정작 농부들은 농사에 바빠 이를 캐고 손질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운이 좋기도 했다. 번듯한 농토도 있고, 형제들이 함께 귀농한 만큼 재미있게 농사를 지으며 소통할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다. 기반이 탄탄한 만큼 돈벌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건강한 먹거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 전파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장아찌가 산청 약초축제와 약초 엑스포 등 지역행사에서 인정을 받으며 그녀의 사업도 궤도에 올랐다.
장독대

이혜령 대표가 이렇게
발효정원을 세우게 된 데에는
그의 요리솜씨와
밝은 눈이 한몫했다.

계절별 먹거리
준비로 꾸리는 1년

지리산이혜령발효농원의 1년은 다채롭다. 계절별로 다르게 나는 약초와 나물들을 모아 손질하는 것부터 장과 식초 담기, 지역 행사 참여에 체험학습까지 따지면 매해 심심할 틈이 없다. 다양한 재료로 장아찌를 담그는 만큼 그 종류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씹는 맛이 있는 뿌리식물들은 고추장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깻잎처럼 잎이 거친 종류는 된장으로 장아찌를 담근다. 부드럽게 씹히는 당귀나 땅 두릅은 간장 장아찌로 만든다. 이렇게 재료별로 다르게 만든 장아찌는 사시사철 -2℃를 유지하는 지하저온창고에서 발효되는 시간을 거친다.
“발효를 하면 약재들의 효과가 몸에 순하게 흡수되면서 맛도 더 잘 어우러져요. 보통 장아찌는 짜거나 맵다고 느끼기 쉽죠. 저는 편하게 자주 먹을 수 있는 맛을 원했기 때문에 피클에 가까운가 싶을 정도로 덜 짜게 만들면서도 발효를 통해 맛이 어우러지도록 했죠.” 이렇게 6개월~1년 사이로 발효시킨 장아찌들은 로컬푸드 마켓이나 행사 판매장 등에 판매하곤 했다. 로컬마켓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산청군에서 난 농산물 중에서도 가장 질 좋은 농산물을 구입하는 등 식재료에 신경도 많이 썼다. 좋은 먹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안겨주면서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큰돈은 벌지 못해도 이름은 알려지는 날이 이어졌다. 여기에 아들이 산청군으로 내려오며 인터넷 쇼핑몰을 연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원래 디자인을 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산청으로 내려오면서 엄마를 돕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네이버에 뚝딱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준 거에요. 사실 이런 쪽은 잘 모르기 때문에 지역 행사 장터에 더 자주 나가서 판매를 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집에서 농사짓고 장아찌 담그는 것만 하면 되니까 몸이 좀 편안하지요. 4년 전에 내려와서 열심히 도와주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장독대

사람들과의 연대로 헤쳐가다

장아찌
2020년은 이혜령 대표에게도 도전의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체험프로그램 신청을 대부분 거절하면서 사람의 발길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고추장 담그기나 깻잎 장아찌, 곶감 장아찌 등을 만들어볼 수 있어 주부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특히 고추장은 이혜령 대표가 직접 엿을 고아 담그기 때문에 간편하면서도 인기가 높은 체험프로그램이었다.
“전기밥솥으로 엿을 고아 만들기 때문에 1달 전에서 1주일 전까지만 예약하면 언제든 고추장을 담글 수 있었어요. 그 외에 계절별로 다른 장아찌를 담그는 체험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먹거리를 만드는 곳이라 코로나19 감염위험이 있는 상황을 무릅쓰고 체험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7월에 일어난 산사태도 큰일이었다. 지리산에 250mm에 이르는 장마가 오면서 산사태가 심하게 났는데, 그 와중에 발효정원의 500여 평 감나무가 다 뽑히고 장을 담갔던 항아리도 거의 깨져버렸다. 장아찌 저장창고가 멀쩡한 것, 그리고 1년 묵힌 장부터 3년 묵힌 장까지 한 항아리씩 남은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오래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주변에 잘하려 했던 것이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와서 산사태 피해 수습을 도와주는 것에 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제가 산청으로 찾아왔을 때 지역 사람들을 사귀고 좋은 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생활개선회에 들어가서 임원까지 하고 한국농식품여성CEO연합회에서 경남지회장을 맡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쌓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산청군에서 여성 CEO로 활동하면서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적도 많았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하곤 했는데 장아찌 재료 손질을 위해 오셨던 노인 분들이 보고 깜짝 놀라며 혼을 낼 때도 있었다. 지역 현안에 대해 발언했을 때는 여자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만큼 여성으로서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기에 어려운 지역이기도 했지만, 꾸준한 지역 활동과 좋은 경영 결과를 통해 인식을 점차 개선해나갔다.
“농촌에서 여성 CEO로 활동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기반을 확보한 상태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활동하다 보면 풍파를 맞아도 주변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저도 앞으로 지리산 자락에서 20년 동안 같은 길을 묵묵히 걸으려고 합니다. 명인이 되면 더 많은 여성 CEO들이 농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리산이혜령발효정원
주소 : 경남 산청군 신안면 신차로355번길 223-6
연락처 : 055-974-274
홈페이지 : https://leehyeryunggarden.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