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싱그럽게 녹여주는
맛과 향

국민 과일,
감귤의 진화를 말하다

글 ㅣ 김주희자료 ㅣ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따뜻한 방 안에서 시원하게 보관한 귤을 몇 개씩 쌓아두고 먹는 모습은 어느새 겨울이 왔음을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제수용으로 꼭 필요한 과일이었지만
지금의 귤은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접하는 국민과일 중 하나로 정착했다.
특히 생산액 기준으로는 사과 다음가는 위치를 차지할 정도다.
수입 과일들과도 꾸준히 경쟁해야 하는 만큼 감귤농업계도 꾸준한 쇄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약재로 진상되었던 귀한 과일

귤
지금의 귤과 그 옛날의 귤 소비 양상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따로 없다. 세조실록 2권에는 감귤은 ‘종묘에 제사 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말이 쓰여 있다. 생과만이 아니라 감귤의 껍질도 약재로서 진상되었던 기록이 남아있으니 그야말로 귀한 몸이었다. ‘황감제’라 하여 근 300년 동안 성균관 유생들에게 감귤을 나눠주며 시행한 과거도 있었다. 귀한 토산품들이 진상되어도 이를 기념해 과거를 치른 것은 감귤이 유일하다.
왕실과 양반들, 미래 조정을 이끌어나갈 인재들 정도에게만 허락되었던 과실이지만 농민들에게는 여러모로 괴로움이기도 했다. 성종실록에 ‘감귤나무를 가진 자에게는 수령이 열매가 맺던 맺지 않던 괴롭게 징수하여 백성들이 살 수 없어서 나무를 베고 뿌리를 없애는 자까지 있다’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온주밀감이 도입되면서 이러한 경향도 점차 달라졌다. 1902년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 신부가 온주밀감 15그루를 들여온 것이 그 시초였다. 일본사람이 만든 농민회에서도 온주밀감, 하귤, 기주밀감, 팔삭 등 다양한 종류의 감귤 품종을 전파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의 농업이 황폐해진 상황이라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감귤 재배 면적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다. 감귤이 소득 작물로 빛을 보면서 1956년 우장춘 박사가 제주도, 거제도 등 남부 지역에서 귤 재배를 장려했다. 그러나 1977년 겨울에 남해안 쪽의 귤나무들이 대부분 동사하면서 제주도로 감귤 재배가 국한되기도 했다.
감귤이 ‘대학나무’로 불리게 된 것도 해방 이후부터다. 1960년대 초 제주도에서 감귤을 재배하고자 하는 농가들도 많아지면서 1961년에는 제주감귤농협이 설립되었고, 1968년에는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 감귤원 대부분이 1960년 말에 조성된 것도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의 영향이다.
이렇게 귤이 서민들의 친구가 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감귤농업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종자 전쟁으로 인한 로열티를 줄이기 위해 국산개발품종을 도입하는 것, 그리고 수입 과일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감귤농업은 일본산 품종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2019년 일본산 신품종인 미하야와 아스미가 품종보호출원이 되면서 농민들이 피해를 본 경우도 발생했다. 종묘 업체를 통해 정식으로 해당 품종을 구매했지만 로열티 분쟁과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면서 제주 감귤 농가들이 감귤 출하를 중지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고 감귤 소비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에서는 지속적으로 신품종 연구를 진행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감귤의 진화

온주밀감 재배 초창기 귤은 귀한 과실 중 하나였다. 아무나 먹을 수 없으며 구입하기도 어려웠고,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는 감귤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다 하여 대학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만 하면 좋은 가격을 받던 감귤은 재배면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가격이 폭락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바로 품종 개발이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배법이 적용되고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맛이 좋은 과실을 생산하기 위해 햇빛을 최대한 이용하고 빗물 관리를 쉽게 할 수 있는 토양멀칭재배가 도입되었고, 비닐하우스 가온재배법이 개발되어 우리는 사시사철 맛있는 귤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귤
품종도 온주밀감 위주에서 한라봉, 레드향, 레몬과 같은 품종으로 다변화됐다. 특히 껍질 벗기기 쉬운 온주밀감과 향이 좋은 오렌지를 교배하여 향이 있고 당도가 높은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품종들을 만감류라고 한다. 오렌지는 추위에 약한 품종인데 오렌지 혈통을 갖고 있는 만감류들은 대부분 하우스에서 재배된다. 어쨌든 그 덕택에 우리는 한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맛있는 한라봉, 레드향과 같은 감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품종들이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종자전쟁이라하여 심심찮게 뉴스가 나온다. 우리 기후와 토질에 맞는 경쟁력 있는 고유의 품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칠맛 나는 온주온주밀감 하례조생, 향이 있고 독특한 맛이 있는 미니향, 우수한 식감이 돋보이는 윈터프린스 등 몇 가지 품종은 그 자체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농가에 보급되어 정착되었거나, 농가의 많은 관심 속에 보급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품종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외 세계의 품종과 경쟁하더라도 충분히 우위에 설 수 있는 많은 품종들을 준비하고 있으며, 우리 국민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는 맛있는 감귤 품종을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감귤이 몸에 좋은 것은 예로부터 잘 알려져 있다. 이미 감귤은 진피, 귤피, 지실, 귤핵, 청피 등으로 불리며 한방에서는 소화기능 증가, 가래억제, 식욕부진 그리고 동맥경화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현대에 들어 기능성 성분 분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감귤에 함유되어 있던 기능성 성분들이 밝혀지고 있다. 감귤은 각종 비타민, 무기염류, 식이섬유 등과 함께 항산화, 항암, 항염증 효과가 있는 플라보노이드와 갱년기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베타크립토잔틴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감귤의 기능성 성분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제품이 개발·보급되고 있다. 이전의 단순한 농축액을 이용한 주스 생산을 넘어 현재는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감귤와인 그리고 미생물을 이용한 감귤바이오겔 생산기술 개발로 의료분야까지, 우리 감귤의 무한한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감귤연구소는 앞으로 국민의 건강과 맛을 챙겨주는 감귤의 무한한 진화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 감귤 품종 소개

현재 감귤연구소에서 개발해낸 감귤 품종은 총 24종에 이른다. 출하시기를 다양하게 하기 위해 성숙기도 다양하게 조정한 품종들이 많다. 감귤의 무게도 천차만별이다. 혼자서도 몇 개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30g 과중의 품종부터 과중이 300g까지 나가는 품종까지 있다. 맛도 향도 다채로운 우리 감귤 신품종을 소개한다
하례조생

하례조생

2004년 선발된 입간조생의 주심배 실생으로 육성되었다. 성숙기는 11월 상순에서 중순 사이에 이루어지며 연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 재배하면 노지재배로도 고품질의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궁천조생에 비해 당도는 높고 산함량은 적어 온주밀감 중에서도 대표적인 품종으로 손꼽힌다.
미니향

미니향

기주밀감과 병감을 교배하여 육성해 2015년에 선발되었다. 과실 크기가 30g~40g 정도로 껍질이 얇은 편이다. 과실 성숙기는 11월 중하순이다. 성숙기의 당도가 15°Bx 이상 가능해 강한 단맛이 나는 품종이다. 산 함량 감소는 빠른 편이지만 당도는 계속 오르는 편이라 12월까지 수확 가능하다.
선킹

선킹

과즙량이 많고 알갱이가 탱글탱글해 식감이 독특한 만다린 품종이다. 온주밀감보다 껍질이 두껍지만 벗기기가 매우 수월한 것이 특징이다. 남향과 앙코르를 교배해 2016년에 선발되었다. 과실 성숙기가 12월 중하순으로 과중이 약 240g 내외다. 온주밀감에 비해 병에 저항성이 높다.
무봉

무봉

당도가 높은 부지화와 쌉쌀한 맛이 있는 팔삭을 교배하여 육성해 2014년에 선발되었다. 11월 상순에 착색되지만 성숙하는 데에는 약 석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껍질이 얇아도 강도가 강한 것이 장점이다. 당도가 13.5°Bx고 산 함량도 1.5%로 달콤새콤한 맛과 씁쓸한 맛이 어우러져 자몽과 비슷한 맛이 난다.
탐빛1호

탐빛1호

프린스청견과 병감을 교배해 2012년에 선발되었다. 성숙기는 3월 하순이며 과즙이 많아 4~5월에 농후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온주밀감보다 붉은색이 강하고 당도도 14.6°Bx로 매우 높다. 노지에서 키우는 것보다 시설재배를 할 때 과실의 품질이 월등하게 좋으며 해거리가 심하기 때문에 열매 솎음 작업이 꼭 필요하다.
윈터프린스

윈터프린스

만다린 품종인 ‘하레히메’와 당도가 높은 ‘병감’을 교배하여 2016년에 선발하였다. 당도는 12~13°Bx로 달콤한 느낌이 나고, 과육이 부드럽고 식감과 향이 매우 뛰어나며, 무엇보다 껍질 벗기기가 쉬워 먹는데 편리하다. 12월 겨울에 접어 들면서 먹을 수 있는 감귤 중 으뜸이라는 뜻으로 겨울왕자 ‘윈터프린스’라 이름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