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관장은 정기적으로 비무장지대를 인접한 지역으로 토종씨앗 수집을 나선다. 강화도부터 강원도 고성군에 이르는 넓은 지역 곳곳을 다니며 토종씨앗을 수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많아 대대로 보관해온 토종씨앗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령의 실향민들이 대부분이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급함이다. 토종씨앗이 후대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 수집한 북녘의 토종씨앗들을 다시 그 지역으로 되돌려 보내고 싶어요. 우리 토종씨앗을 보관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거든요. 토종씨앗은 다양성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안에는 토종씨앗을 대물림해온 사람의 인생과 그 지역의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토종씨앗을 수집하면서 농사는 어떻게 지어왔는지, 명칭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먹는지 등의 다양한 정보들도 함께 수집한다. 토종씨앗을 대물림해온 이들의 지식과 재배법은 토종씨앗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한줄기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토종씨앗에 이름이 따로 없는 경우에는 우선 지역명을 붙여요. 때로는 대물림해온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특징을 잡아 이름을 짓기도 하지요. 한 번은 정선에서 콩을 수집했는데, 그 콩을 키우신 농부님이 말하기를 이 콩 품종이 옛날부터 맛있기로 유명했다고 설명하시는 거예요. 거기에서 착안해 ‘정선 감미콩으로 할까요?’라고 여쭤보니 아주 좋다고 하셨지요. 또 농서로만 확인했던 토종씨앗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 옛 농서에서 보았던 이름을 농부의 입으로 들으면서 복권에 당첨된 듯한 즐거움을 느끼곤 해요.”
이렇게 수집한 토종씨앗을 실제로 심어보면 다양한 특성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성조사를 위해 심는 토종씨앗의 종류는 1년에 600종, 그중 벼만 해도 50종에 달한다. 비슷한 품종이 있다면 같은 것인지 아닌지 조사하고, 나눔을 할 때도 섞이지 않도록 최대한 분리한다. 가끔은 수집했을 때부터 혼종이 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심고 나서 특성이 발현될 때 따로 빼서 심는 식으로 섞이지 않게 재배한다.
“제주도에서 겉보리를 수집해서 심었는데 싹이 난 것을 보니 검은 겉보리가 섞여 있었어요. 그래서 검은 겉보리를 골라내 따로 심으니 그 중에서 또 쌀보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특성이 다른 종자를 계속 분리해서 심다 보면 한층 다양한 토종종자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추나 갓을 심을 때도 이렇게 특징이 뚜렷한 종자들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포기만 따로 빼서 순도를 유지하는 식으로 품종을 구분지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