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나만의 꿈과 행복을 찾다

온나농장 권두현 대표

<파밍보이즈>는 농사로 지구를 구하고픈 지황, 꿈을 찾고픈 하석, 고향을 멋지게 가꾸고픈 두현까지
세 청년이 모여 농업세계일주를 떠난 영화다.
13나라 35곳의 해외농장에서 농사를 도우며 다양한 농업인들을 만난 청년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들은 각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중 고향을 멋지게 가꾸고 싶었던 권두현 씨는 고향에서 딸기농사를 지으며 꿈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권두현 씨의 에세이를 지난호에 이어 소개한다.

농사꾼도 장가 갈 수 있다!

농사를 짓다 보니 후배는 아이가 생겨서 아내와 함께 새로운 농장을 꾸리게 되었다. 나 또한 결혼을 하며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게 되었다. 시골에서 8살 어린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은 온나농장으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친구들과 놀러 다녀야 하는데 농사꾼을 만나는 바람에 농장에서 같이 딸기를 따며 농장 데이트를 하게 되었으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이제는 아내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면서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골에 들어가면 결혼 못하고 노총각 된다이~” 주위에서 하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난 당당히 나의 인연을 청년인구가 10.5% 밖에 되지 않는 이 시골에서 찾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농사꾼도 장가 갈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는 좋은 케이스가 되었다. 이후에 놀랍게도 주위 형, 동생들이 결혼을 했고, 체감상 농촌에 청년인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혼은 사실 선택이지만 확률이 희박한 곳에서 하는 결혼은 남자의 용기이다. 아무튼 작년에는 우리를 닮은 아들이 태어나면서 온나농장에 또 다른 선물이 등장했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얼만큼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진 못했다. 그냥 단순히 내가 현재 시골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면서 양가 부모님들을 돌보고 아내,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걸 보여주면 어떨까? 농업 정보와 자료는 내가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농업의 삶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그게 가장 큰 자극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욕심은 내려놓고
나만의 행복 찾기

나는 크게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서 모든 것을 계산하고 농촌에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좋아했고 관심 있어 하다 보니 오게 되었다. 와서도 쉽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씩 풀어나가는 상황이 재미있었고 해마다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뿌듯했다.
옛날 일이 기억난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한창 열정이 가득했을 때였다. 해가 떠있을 때 출근을 해서 해가 져있을 때 퇴근을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해가 지고 별이 가득 차 있는 하늘을 보며 퇴근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뿌듯했다. 그렇게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많은 상황들을 이겨내고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연구하는, 몇 억씩 버는 그런 농부는 아니다. 우리 가족들 먹여 살리려면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다. 나 또한 연봉은 5천만 원이 목표다. 그 이유는 어떤 연구에 따르면 월급에 대해 최대 만족감을 느끼는 금액이 5천만 원이라고 한다. 그 이상이 번다고 해서 만족감이 더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 목표는 연봉 5천만 원이고 첫해에 1천만 원 정도였다면 해마다 1천만 원씩 올라 현재는 목표에 가깝게 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욕심을 가지지 않는 선에서 농업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느낄 수 있는 점들을 최대한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집에서 농장으로 걸어가는 10분. 강변으로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펜더’라는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며 출근을 했고 조만간 아들이 크면 함께 산책하며 출근할 생각이다.

나만의 가치관을 갖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다

청년들이 나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농업에 종사하면 좋겠다. 농업세계일주를 다니며 가장 관심 있게 봤던 부분은 농부들이었다. 과연 농부들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농사를 하고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우리를 먹이고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분들이다. 가치관보다는 자식을 키우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함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생계만 위하는 것 같아 어린 마음에 답답하기도 했고, 때로는 희생한다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토끼는 ‘육아’다. 현재 오전 8시까지 육아를 하다가 출근을 한다. 그리고 점심 때 또 잠시 아이를 보고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해서 아내와 육아를 같이한다. 100일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을 함께 시켰고 재우기 담당도 나였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보다 농사일은 유동적으로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고, 외국인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고 있어 내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친구들이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한다. 당연히 바쁠 때는 새벽까지 일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외국인 친구들 퇴근할 때 나도 칼퇴를 할 수 있다!
두 번째 토끼는 ‘무농약 딸기’다. 현재 무농약 딸기를 5년째 인증 받고 있다. 주위에서 돈 안 된다며 하지 말라는 소리만 3년 동안 들었다. 그래서 어디 가서 무농약 딸기 농사를 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일명 은둔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3년차가 지나면서 판로가 조금씩 생겼고 농사도 감이 잡혀가고 있다. 작년에는 매출 절반이 백화점 납품이었고 올해는 그 이상으로 납품할 수 있다.
또한 농장이 소통하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때로는 체험장, 캠핑장, 수영장, 놀이터 등 다양한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소소한 공간들을 통해 가족들과 지인들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 아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줄 생각에 가슴 벅차기도 하다.
이처럼 나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농장을 운영해 나간다면 힘든 일이 생겨도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앞으로 40년 이상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해마다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해가고 있다. 40년 후에는 과연 나의 농장이 어떻게 변해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무척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