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삶이
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농촌 시스템을
만듭니다

팜프라 유지황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남해 두모마을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청년들에게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농업회사법인 팜프라(Farmfra)다.
이곳에서는 유지황 대표와 청년들이 주거, 교육, 문화, 농업 등을 함께 고민하고 실현하며 새로운 농촌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의 삶을 고민하다

반짝거리는 남해 바다를 따라 난 도로를 달리다 비탈진 샛길로 들어서면 두모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뒤편으로는 울창한 나무가 빼곡한 금산이 자리하고, 마을 한 가운데는 1급수 하천물이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자리한 팜프라는 눈에 띄지만 모나지 않게 마을 풍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세모난 지붕의 단층 건물들 몇 채와 사옥으로 사용하는 목재건물, 그리고 작물을 심는 텃밭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팜프라는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곳이에요. 이들이 농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반들을 제공하고 있죠. 장기적으로는 주거공간을 만든다든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로컬 투자회사나 소자본 창업 등을 지원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이러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요. 청년의 삶이 변화하면 지역소멸을 막을 순 없겠지만 늦춰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지황 대표는 20대 초반에 배낭여행으로 간 이집트에서 인생을 바꿀 경험을 했다. 현지시장을 방문했을 때 차 밑에서 사는 어린아이를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 왜 불평등한 삶이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어린아이의 문제는 곧 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식(食), 주(住), 학(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중요한 ‘식’을 해결할 수 있는 농사였습니다.”
토지를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토지나 집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양한 이유로 쫓기듯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속성을 갖기 어려웠고, 청년들이 기반 없이 농업에 종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유지황 대표가 다른 청년 두 명과 함께 농업세계일주를 떠난 것도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됐다.
“2년 동안 총 11개 나라를 돌며 농장 35여 곳에서 농사를 배웠습니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청년들에게 제도적으로 농업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땅과 집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현실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청년 지원 사업이 많지 않았거든요. 결국 사회 시스템적으로 농부를 키우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코부기 프로젝트’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집이었다. 빌린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털어 이동식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일명 ‘코부기 프로젝트’로, 자신의 집을 등에 이고 다니는 거북이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코부기는 침실, 서재, 주방, 욕실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심플하고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유지황 대표는 그렇게 다양한 농업 관련 활동을 하며 만난 청년들과 함께 해마다 한 채씩 청년들이 살고 싶은 집을 지었다.
“도시 사람들이 힘든 점은 내 집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죠. 20대 때 서울에서 생활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반지하에 살았어요.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빈집들은 있지만 빌리기가 쉽지 않고, 벌레나 곰팡이 등 관리도 미흡합니다. 저는 빈집을 좋아하지 않아요. 작지만 공간이 효율적이고, 청년들이 살고 싶은 집들이 농촌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부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청년들과 함께 주거, 땅, 수익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해 나갔다. 그리고 지난 2018년 팜프라를 설립하면서 남해 두모마을에 팜프라촌을 조성했다. 전국 200개 마을과 폐교 44곳을 돌아다니다가 힘들게 자리 잡은 곳이었다. 다행히 지자체나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청년기본법이나 청년 거점공간에 대한 조례 등이 없어서 관련 사업이 없었습니다. 사업 초기부터 우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디자인, 인쇄, 농산물 재배와 판매 등 지속적으로 공공성을 가진 일들을 해나갔습니다.”
유지황 대표는 개인적으로 한 해 200개 이상 강연을 하며 얻은 수익을 전부 팜프라에 재투자했다. 그렇게 사업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현재 코부기, 코부기미니, 독채스테이 등 숙박시설 총 4개 동과 목공 작업이 가능한 팜프라 웍스, 촌 라이프 편집숍인 팜프라 스토어가 완성됐다.
“지금 코부기는 숙박시설로 사용되고 있지만, 다음엔 40㎡ 정도로 새로운 주거모델인 코부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도 저희 직원들은 마을 원룸 4개를 빌려서 생활하고 있어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몇 년이 된 저희들도 정착할 집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이제 막 정착하려는 청년들은 집을 더 구하기 어렵죠. 농촌 청년들의 평균 소득을 고려한 금액으로 코부기를 분양한다면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농촌 만들어야

팜프라촌에는 농촌에 이주하기 전 농촌생활이 잘 맞는지 확인하려는 청년들이 많이 찾아온다. 마을에서 지내며 불편한 점과 불편하지 않은 점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청년들이 처음 농촌에 왔을 때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팜프라가 완충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제가 타는 차가 며칠 집 앞에 없으면 마을 어르신이 어디 다녀왔는지 물어보세요. 저는 관심 어린 애정이라고 생각해서 괜찮은데, 어떤 분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요. 반면에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은 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분들도 있고요. 그럴 때 저희가 다양한 세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어질 때는 남해 다른 청년들과도 연결해 줄 수 있고, 일자리 소개도 가능합니다.”
이와 함께 팜프라는 공공영역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해군 청년정책, 청년조례를 설계하는 용역사업을 추진했으며, 남해청년센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설정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한 농업·농촌, 청년과 관련된 지자체와 공공기관 사업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Test Bed)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아쉬운 건 아직 정책과 수요자의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소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이 마을에 누군가가 와서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걸 불편해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공공영역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민간 협업으로 풀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다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앞으로 팜프라도 청년들이 농촌에서 삶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