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과 거위와
보낸 1년
작은알자스 신이현 대표
루쿠쿠! 포도밭 닭과 거위
“닭똥이 필요한데 좀 구할 수 없을까?” 우리 집 닭과 거위 이야기는 이렇게 똥에서 시작되었다. 근처 양계장에서 좀 얻어올까 했는데 유기농 알을 낳는 닭들의 똥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몇 마리 키우는 건 어때?” 남편은 평소에도 닭을 키우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밭에서 뭔가를 할 때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이익이 따라오게 해야 해. 닭들은 밭의 벌레들을 잡아먹고 그 똥은 퇴비로 쓰고, 계란도 먹고 나중엔 고기로도 먹을 수 있으니 적어도 4가지 득이 되잖아.” 말은 그럴 듯한데 바쁜 와중에 일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 들은 척했다.
“닭똥이 있으면 나무들에게 정말 좋을 텐데!” 결국 그가 부르는 똥 노래에 내가 백기를 들었다. 충주 장날에 수컷 한 마리에 암컷 아홉 마리, 병아리 티를 갓 벗어난 어린 닭들을 사왔다. 거위도 암수로 한 마리씩 데리고 왔다. “이 물통으로 집을 지으면 밤에 다른 짐승들이 해치지 못해.” 남편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커다란 농업용 사각 물통으로 작은 닭장을 만들었다. 이틀 동안 닭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더니 셋째 날부터 스스로 물통 안에 훼 막대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기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보호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걱정스러운 것은 가끔씩 나타나 하늘을 빙빙 날아다니며 닭을 채갈 순간을 노리는 매였다. 그러나 닭들은 위험 감지능력과 스스로 보호 능력이 뛰어났다. 혼자 돌아다니지 않고 늘 무리지어 다녔다. 작은 위험이라도 감지되면 누군가 평소와 다른 이상한 소리로 울었고 모두들 나무 밑에 바짝 숨어들었다. 위험이 사라지면 다시 나와서 온 밭을 다니며 흙을 파고 풀을 쪼았다.
어린 거위는 닭들보다 힘이 없었다. 모이를 먹을 때 닭들이 뾰족한 부리로 등을 쪼아대면 꽥꽥 큰 소리로 울면서 도망갔다. 장차 닭들보다 몇 배로 크고 힘도 세지겠지만 그때는 약자였다. 우리가 밭에서 일하는 동안 두 거위는 꼭 붙어서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멈추면 그 자리서 풀을 뜯고 내가 앉으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뜯다 잠들었다.
포도밭에 닭과 거위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밭이 갑자기 활기차졌다. 부지런히 땅을 파헤치고 꼬끼오 거리는 닭들은 아무리 봐도 지겹지가 않았다. 내 발 옆에 붙어서 작은 소리로 쿠쿠거리는 거위를 쓰다듬고 말도 걸었다. “이제부터 너희 이름은 루쿠쿠로 하자. 루쿠쿠!” 밭일하는 것이 훨씬 덜 지루했다. 평생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도 닭과 거위들이 소리를 내주니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명 하나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여름날 아침에 포도나무 사이를 걸어가면 모두들 뒤따라 왔다. 내가 걸을 때마다 풀에 스친 메뚜기들이 풀쩍풀쩍 뛰며 도망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뚜기가 날아가면 닭들은 날쌔게 그것들을 사냥했다. 암컷들이 더 재빠르고 힘이 셌다. 수컷 닭은 올 때부터 작았고 계속 작았다. 모이를 먹을 때도 암컷들이 부리로 쪼아서 방해를 했다. 늘 멀리 떨어져서 저 혼자 풀을 뜯으며 눈치를 보았다. 이상한 것은 몇몇 암컷의 벼슬이 원래 수컷보다 더 화려하게 커져간다는 것이었다. “저것들은 다 수컷이야! 암컷 스무 마리에 수컷 한 마리면 충분한데 이 집엔 수컷이 너무 많아.” 이웃이 그렇게 말했다. 수컷 한 마리였는데 알고 보니 수컷 네 마리에 암컷 여섯 마리가 되어 있었다. 거위의 비밀도 6개월이 지나서 풀렸다. “거위 쟤들은 둘 다 암컷이네.” 부부라고 데리고 왔더니 자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암탉이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수탉들이 매일 아침 싸움질을 시작했다. 머리털을 바짝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날아올라 공중 박치기를 하며 푸다닥거렸다. 서로 모이를 못 먹게 하려고 온 포도밭을 쫓고 쫓기는 전쟁터로 만들었다. 한 놈이 암탉 위에 올라타면 다른 놈들이 미친 듯이 날아와서 밀치고 또 올라타고 또 다른 놈이 올라탔다. 저마다 자기 암탉임을 증명하려 했다. 기세가 어찌나 옹골찬지 어떤 암탉들은 등과 머리털이 다 뽑혀 대머리로 돌아다녔다.
“우리 집 수탉 좀 잡아주세요.” 동네의 몇 분에게 요청했지만 다들 닭 잡아본지 너무 오래되어 못하겠다고 했다. 잡지 못해 먹지도 못하는 사이 수탉들은 나날이 늠름해졌다. “너무 아름답네. 하나같이 아름다워.” 모두들 수탉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 중에 적어도 둘은 잡아야 해. 가장 힘이 약한 저 두 마리부터 잡을 거야.” 나의 말에 남편은 그동안 못 먹고 왕따 당한 인생도 서러운데 가장 먼저 죽기까지 해야 하다니 불공평하다고 했다. “가장 쎈 놈 하나만 남아서 암탉을 보호하는 거야.” 이윽고 놀러온 친구들 중 하나가 수탉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두 마리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가 날쌔게 도망가버려 한 마리만 잡았다.
마당에 불을 피워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일은 내가 했다. 절대 못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진지하게 이 모든 일들을 차례대로 했다.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 동안 수많은 닭을 먹었지만 모두 다른 사람이 키우고 다른 사람이 잡은 것을 먹었다. 짐승을 키우고 잡고 요리하고,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면서 생명 하나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좀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찹쌀을 많이 넣고 푹 곤 닭을 모두 열 명과 함께 먹었다. 닭 잡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차던 친구들도 고기 살점과 부드러운 찹쌀 죽을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소리쳤다.
닭 몇 마리만 키워 보세요
모이만 축내고 암탉을 괴롭히는 수탉이 여전히 세 마리나 남아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포도가 익기 시작하면서였다. 목이 길어진 거위 둘이 포도를 따먹기 시작했다. 거위가 먹자 닭들도 따라 했다. 목이 짧으니 폴짝폴짝 뛰어올라 포도 따먹기를 시도했다. 포도밭 한쪽에 넓게 그물을 쳐서 못 나오게 했지만 어떻게 나왔는지 다들 나와서 돌아다녔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 가을에 뿌린 호밀도 귀신처럼 찾아내서 쪼아 먹었다. 거름으로 쓸 닭똥 걱정은 없어졌지만 이들은 한 무리의 도적떼처럼 돌아다니며 땅을 파고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버렸다.
겨울에 눈이 푹푹 쌓였을 때도 포도밭을 돌아다녔다. 무서울 게 없는 포도밭의 사냥꾼들이었다. 그런데 그 겨울에 거위 한 마리가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사라졌다. 다른 짐승들에게 습격당했다면 털이라도 흩어져 있었을 텐데 아무 흔적도 없었다. 동네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엉덩이 꼭 붙이고 다니던 자매를 잃은 쿠쿠는 이제 닭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어안이 벙벙하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봄이 되자 커다란 알을 낳고 그것을 품기 시작했다. 수컷 없이 낳은 알이니 무정란이고 새끼가 부화될 리도 없었다. 수소문해서 이번엔 진짜 수컷이라는 다짐을 받고 아기 수컷 거위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아기 거위 우는 소리에 닭들 무리에 있던 쿠쿠가 미친 듯이 내려왔다. 본능적으로 자기 종족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선뜻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 데면데면했다. 밤이 되어 우리에 어린 거위를 넣으니 쿠쿠가 미친 듯이 울고 아기 거위를 꽉꽉 물었다. 쿠쿠 우는 소리에 닭들도 푸닥거리며 난리를 쳤다. 새로운 식구가 오자 모두가 흥분했다. 아기 거위는 전학 온 아이처럼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똥이 필요해서 시작한 닭과 거위와 보낸 1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짐승을 키운다는 하나의 행위가 계란과 퇴비와 고기라는 몇 가지 득도 주지만 안 해도 되는 일거리를 만들어 고달파지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농사짓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권하곤 한다. “닭 몇 마리만 키워 보세요. 거위도 괜찮아요. 주의해야 할 것은 수탉이 많으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닭과 거위와 보낸 날들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 작은 짐승들 덕분에 밭일하는 것이 덜 힘들고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포도밭의 닭과 거위의 인생 올해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