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 이동우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농업이 싫었지만 농업에서 위로 받은 후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치유를 전하고 싶다는 스테이지 파머스룸 이동우 대표.
사라지고 있는 농촌을 재해석한 다양한 콘텐츠와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
농업을 새롭게 풀어가고 있는 이동우 대표를 만났다.
상주 삼백(三白)을 재해석하다
경북 상주 중덕저수지 자연생태공원 가까이 자리한 스테이지 파머스룸. 이곳은 현대적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층건물과 중덕저수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책길, 폐사당할 위기에 처했던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골동물생츄어리 등 다양한 공간이 조화롭게 조성되어 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은 농장이라는 무대(stage)에서 머물고(Stay) 싶은 땅(地)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오래 머물고 싶은 농촌,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은 지난 2019년, 상주 4-H에서 활동하던 청년농업인 다섯 명이 뜻을 모아 시작한 농촌체험농장이다. 예산 120억 원이 들어간 22만4,400㎡ 규모의 중덕저수지 자연생태공원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은 농촌 콘텐츠를 통해 관광객들을 유입시킴으로써 중덕저수지 자연생태공원과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6,000만 원을 들여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15일 만에 코로나19가 터졌어요. 결국 2020년에 폐업을 했는데, 이대로 그만두기엔 아쉬운 게 너무 많았습니다. 다행히 ‘경상북도 청년농업인 기반구축사업’에 선정되면서 다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이 적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했다. 여기서 이동우 대표는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주변 자원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상주는 삼백(三白)이라고 해서 쌀, 곶감(감), 명주(누에)가 특산물입니다. 사람들이 스테이지 파머스룸에 와서 상주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도로확장 공사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잘려진 감나무와 마을에서 집을 새로 지으면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고재(古材) 등을 저렴하게 사왔죠. 방치되었던 자원들을 다듬어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의 메인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삼백갤러리’ 천장에는 잘 말린 벼가 빼곡하게 걸려 있고, 한편에는 감나무가 세워져 있다. 나무테이블과 그 위를 덮은 명주식탁보, 이동우 대표가 하나씩 모은 도자기 그릇 등은 단아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블루베리 수확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운영
스테이지 파머스룸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백갤러리’에서는 블루베리, 딸기, 샤인머스캣 등 제철과일로 케이크와 철판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할 수 있다. ‘한 뼘 농장 입양실’이라고 이름 붙인 외부공간에서는 계절에 맞는 묘목을 아름다운 토기에 담아 볼 수 있는 가드닝 체험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여름엔 제가 재배하는 블루베리 수확 체험과 베이킹 체험이 가능합니다. 요즘엔 사과나 딸기를 품종별로 즐기지만, 블루베리는 아직 품종이 다양하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농가에서 주로 기르는 블루베리 품종은 3~4개에 불과하거든요. 블루베리도 좋아하는 품종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듀크, 엘리자베스, 에코타, 스파르탄, 핑크레모네이드 등 30여 종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좋아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귀여운 동물친구들도 있다. 나이가 들거나 개체 수 조절 등 이유로 폐사당할 위기에 처했던 경주마와 양, 토끼, 염소 등이 ‘시골동물생츄어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다. 필요를 다하면 쉽게 버려지던 동물들은 스테이지 파머스룸에서 원래 수명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운영과 동물과의 교감,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자연 공간 등이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연간 4,000명 정도가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찾고 있다. 재방문율과 외국인 방문율도 높다.
“사실 상주라는 지역이 도시 접근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관광지도 아니에요. 그래서 상주에 사람들이 올만한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가치를 재해석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만으로 찾아오는 곳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으로 치유 받은 경험
전하고 싶어
이동우 대표는 스테이지 파머스룸이 사람들에게 치유 공간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여기엔 이동우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동우 대표는 초등·중학생 때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시신경을 다쳐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다.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상주로 귀농하셨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는 절대 농업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그런데 농업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도피처처럼 시작한 농업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긍정적인 작용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제가 잘 하는 게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했는데, 학업성적도 오르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시간과 애정을 쏟으면 그에 보답하듯 건강하게 자라는 농작물들은 이동우 대표에게 희망을 줬다. 농업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만큼 자신처럼 힘든 아이들, 그리고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2019년에 학교폭력을 당한 초등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저는 지금 많이 회복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아픔을 겪는 친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현재 경상북도상주교육지원청 위센터와 함께 상주 지역 청소년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관련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심리상담사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경상북도농업기술원 ‘농촌치유카페 조성사업’에 선정돼 카페 오픈을 앞두고 있다. 제철농산물로 만드는 음료를 마시면서 농촌 관련 콘텐츠를 활용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동우 대표는 농장 미니어처로 자신만의 농장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미니어처를 만지면서 감각을 자극하고, 농장설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은 공간 하나하나가 농촌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게 아니라 농작물 수확이나 소농기구 운전 등을 통해 농촌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농업과 관련된 작은 부분이지만 이를 경험하고 성공하는 과정은 분명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에서의 휴식과 치유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언제나 스테이지 파머스룸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겠습니다.”
스테이지 파머스룸
주소 | |
경상북도 상주시 초산3길 22-4 |
전화 | |
010-3751-94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