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이촌향도의 좌판과
함께 떠올리기

글 ㅣ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의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오빠는 심술쟁이야, 머/난 몰라 난 몰라 내 반찬 다 빼앗아 먹는 건 난 몰라/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고/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오빠는 깍쟁이야.”
1938년 박향림(1921~1946)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온 뒤, 이제는 한류바람을 타고 해외에서도 불리는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의 1절이다. 풍각쟁이는 ‘떠돌이 싸구려 음악가’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허랑방탕 제멋대로인 사람을 가리킨다. 회사에서는 지각대장이요 집에서는 누이동생을 못살게 구는 오빠는, 오이지나 콩나물에 견줄 수 없는 떡볶이를 혼자서 해치우는 얌체이기도 하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은 ‘떡볶이가 불고기급이야?’ 하며 놀라실 테다. 그랬다. 떡볶이는 태어난 이래 1950년대까지는 최고급 요리였고, 때로는 불고기보다 더한 호화와 사치를 뽐내는 음식이었다. 정말 그랬는지 옛 음식 조리서 속에 남은 떡볶이 조리법을 살펴보자.
“전복과 해삼을 물러지게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가래떡을 한 치(약 3cm) 기장으로 썰어 넣고 녹말과 후춧가루·기름·석이 등 여러 가지에 간장물을 풀어 냄비에 볶는다.”
19세기 조리서 <규곤요람(閨壼要覽)>(연세대본) 속 떡볶이 모습이 이렇다. 본문에는 ‘볶을 때 너무 되게 볶지 말고 자연스럽게’ 양념의 물기가 줄어들도록 볶아야 한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아울러 떡볶이는 잔치와 술상에 어울린다는 주석도 붙어 있다. 또 다른 19세기 조리서 <주식방문(酒食方文)>[노가재공본(老稼齋公本)]의 조리법은 이렇다.
“(전략) 돼지고기·미나리·숙주·소고기를 담가 붉은 물을 없앤 후 가늘게 두드려 양념해 자잘하게 익혀 펴서 내고 장국을 맛나게 끓여 양념과 떡을 한데 넣어 볶아낸다. 도라지·박오가리·표고도 넣고 석이와 표고는 달걀에 부쳐 가늘게 썰어 얹는다.”
보신 대로다. 오늘날에도 귀한 재료인 전복·해삼·석이·도라지·박오가리·표고로 맛과 멋을 더한다. 녹말로 농도를 맞추는가 하면 지단 장식이 오르기도 한다. 장의 풍미, 고기와 고깃국물의 풍미가 흰떡에 배도록 공력을 다해 조리듯 볶고, 볶듯 졸인다. 고추장? 고춧가루 양념? 껴들지 않는다. 이 방식은 식민지 시기에도 이어졌다. 돼지고기·소고기·표고·석이·황화채(원추리나물) 또는 수육·양고들개(양 가운데 천엽 쪽 부위)·등심·잣가루·잣을 들인 떡볶이 조리법도 전해온다. 이런 떡볶이는 1970년대까지 가사과 교과서 속에서, 또 극소수 서울 가정에서 이어졌다. 그러다 1950년대 말을 지나면서 우리가 아는, 누구에게나 만만한 붉은 국물 뒤집어쓴 떡볶이가 등장한다.
해방과 전쟁을 지나는 동안 한국 서민대중의 식료품 목록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무엇보다 원조 밀가루가 흰떡의 세계를 바꾸었다. 이전에 떡은, 오로지 밥 해 먹기에도 부족한 쌀로 가루를 내 치고 빚었다. 한데 한국인은 원조 밀가루를 가지고 기어코 ‘밀떡’을 뽑아냈다. ‘쌀떡’에 견주어 한참 값싼 밀떡에, 최소한의 간을 한 국물,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내는 고춧가루 또는 이른바 고춧가루 ‘다대기’ 또는 ‘가짜(유사) 고추장’이 서로 손을 잡더니 전에 없던 새로운 떡볶이 세계가 열렸다. 고춧가루에 바탕한 붉은 국물에 쌀떡이나 밀떡을 띄우고, 값싼 공장제 조미료며 어묵 따위를 더해 뭉근한 불에서 익힌 ‘길거리음식’ 떡볶이는 날로 자라났다.
거꾸로 간장 양념을 쓴 일품요리 갈래의 떡볶이는 자취조차 희미해진다. 길거리로 나온 떡볶이는 코흘리개, 청년학생,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마운 간식 또는 한 끼가 되었다. 그 시절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팔던 이들은? ‘신당동 떡볶이’로 유명한 마복림(1920~2011)의 일생이 대변하듯, 살기 위해 도시로 향한 농민의 딸, 농촌 출신 여성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길거리 좌판에서 서민대중을 위한 떡볶이의 조리와 판매를 도맡았다. 이제는 프랜차이즈 업체에게 거의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이촌향도의 좌판이야말로 현대 떡볶이의 못자리였다.
떡볶이는 격변의 한국사와 함께 흐르고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떡볶이는 서울 부자의 잔칫상과 술상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온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극심한 경쟁에 돌입했다. 춘장(짜장) 또한 현대 떡볶이의 역사와 함께한 부재료이다. 인스턴트 카레 가루도 금세 뒤따랐다. 멸치 육수 또한 전에 없던 방식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크림·치즈·건토마토·토마토 퓨레·토마토 페이스트·토마토케첩·온갖 향신재의 이합집산이 정신없이 이어지고 있다. 짜장떡볶이, 카레떡볶이, 치즈떡볶이, 로제크림떡볶이, 국물떡볶이, 마라떡볶이 뒤에는 또 무엇이 뒤따를까? 떡볶이에 김밥이나 튀김이나 순대 외에 또 어떤 음식이 껴들어 ‘김떡순’과 같은 정식(定食)을 이룰까? 지켜볼 일이다. 떡볶이는 현재진행형에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음식이니까.
이때 아쉬운 데가 있다. 떡볶이의 바탕에는 누가 뭐래도 ‘떡’이 있다. 그러니 이제, 떡의 제 물성과 떡볶이 조리의 맥락 속에서 보다 맛나고 매력적인 떡이 나왔으면 한다. 못잖게 밀떡에서도 토종밀을 재발견할 길 또한 찾고 싶다. 토종밀의 기분 좋은 구수한 풍미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한편 떡볶이 국물의 질감과 물성에 어울리는 조청, 생강청 개발의 여지는 없을까. 개성 있는 물성을 만들면서 풍미를 북돋운다면 생강전분, 밤전분도 마침맞다. 이런 전분은 떡과 국물 양쪽에 다 쓸모가 있을 테다. 크림과 치즈에 맛을 들인 한국인에게 ‘떡볶이용’을 내건 한국 낙농 제품은 언제 나올까. 학교급식에서도 ‘마라’가 대단하던데, 그렇다면 초피에서 방아까지, 전통적인 향신재를 잘 쓴 떡볶이는 불가능할까.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둔, 보다 맛있게 맵고 예쁘게 붉은 떡볶이용 고추 품종 육성과 가공의 미래는 지금 기획되고 있는가 등등⋯⋯. 떡볶이의 연대기를 더듬는 동안 생각은 훨훨 난다. 정처 없는 생각이라도 진심을 담아 본다. 연재 시작이다. 독자 여러분,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겠다. 인사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