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경에서
가치 살아요
가치살자 박현희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다양한 이유와 꿈을 갖고 문경에 자리 잡은 청년들.
이들이 지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완충역할을 해주고자 만들어진 것이 가치살자협동조합이다.
청년들이 북적이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가치살자 박현희 대표를 찾아가봤다.
문경으로 유턴... 청년 지원 단체 필요성 깨달아
가치살자 박현희 대표는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인 문경을 떠났다.
대학을 다니거나 취업을 하려면 수도권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경기도 수원에 자리를 잡은 후 지역 사회, 지역 청년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을 했다.
미술 전공을 살려 개인전도 열고 신문에 만평도 실으며 누구보다 바쁜 20대 초 중반을 보냈다.
“한창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는데, 함께 활동하던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삶 속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결혼, 출산, 돈 벌어야 한다 등 여러 이유로요. 저 혼자 활동해도 되지만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졌어요.
몸도 아프고 월세도 밀리고요. 그런데 단체회장 오빠가 힘들면 엄마한테 돈 좀 빌려 라고 쉽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바로 단체를 그만두었어요.”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모든 활동을 그만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때가 2017년 여름이었다.
“마침 고향인 문경에 천금량 선생님이라고 제가 오랫동안 미술을 배운 분이 계셨어요.
제가 미대를 다니게 한 분이기도 했죠. 문경에 터줏대감처럼 계시면서 다양한 미술 관련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저한테 문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바로 수원 집을 정리하고 문경으로 내려왔죠.”
당시 지역에서 청년 창업지원을 받으려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전공을 살려 지역 기념품과 일러스트를 만들고, 지역 스토리를 담은 보드게임과 컬러링북을 계획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창업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해보려던 차에 시련이 닥쳤다.
“청년에게 창업 지원금을 준다는 걸 안 좋게 보는 분들이 계셨어요. 모함도 당하고 민원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목포 청년마을에 2주 정도 머물게 되었어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조성된 마을인데,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걸 보면서 문경에서도 청년을 위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경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의 실험실
문경으로 돌아온 박현희 대표는 고민을 거듭했다. 문경에서 자신이 힘들었던 건 무엇인지, 왜 문경에 왔는지, 청년들이 원하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도 수원에서 정착에 실패한 사람이고, 문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온 청년이었어요.
왜 청년들이 문경을 떠나고 싶어 하고, 반면 왜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 돝아왔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지 고민했습니다.”
고향이 문경인 또래 친구들은 문경에서 산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에게 문경에서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님이 계셔서 얹혀사는 게 아닌, 자립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었다.
문경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활동하는 청년사업가들과 함께 문경청년협의체를 만들어 문경에서 삶을 일굴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20년, 가치살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달빛탐사대’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달빛탐사대는 문경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 내 취향을 살려 지속 가능한 삶을 개척하길 원하는 청년들을 위한 프로젝트에요.
팜, 푸드, 컬쳐, 라이프 등 카테고리에서 로컬 콘텐츠 기획, 농산물 라이브 커머스, 공예 공방 창업, 클래스 운영, 팝업스토어 등을 하고 싶은 청년들을 예비탐사대원으로 모집해요.”
선발과정을 거쳐 예비탐사대원이 된 청년들에게는 문경에서 지낼 수 있는 주거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프로젝트 실험비용을 지원하는데, 청년들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듣거나 재료를 구입하고 공간을 대여할 수도 있다.
“2022년에는 프로젝트 실험비용으로 200만 원을, 올해는 300만 원을 지원했어요.
이 비용은 프로젝트 기간 내에 소진해야 하고, 자신이 문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해요.
문경에서 정착하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라고 할 수 있죠.”
달빛탐사대를 통해 문경에 정착한 청년들도 많다.
구움과자와 케이크를 판매하는 ‘하리과자점’, 인도음식을 판매하는 '봄베이스낵바', 샐러드 전문점 ‘오 그린 샐러드’가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실험비용은 레시피를 배우거나 집기를 구입하고 공간을 임대하는 초기비용에 쓰였다. 이곳들은 문경의 맛집으로 자리를 잡아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다.
표고축제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다
가치살자협동조합을 통해 문화콘텐츠들도 풍성해졌다. 달빛탐사대를 통해 문경에 정착한 국악밴드 ‘노래가 야금야금’, ‘프롬310’ 등과 함께 짚단음악회를 성공리에 열었다. 저예산으로 짚단을 쌓아서 만든 무대에서 한 공연은 앞으로 문경에서도 충분히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경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국악밴드들, 예술가들이 많이 오셨어요.
문경에서 거주하면서 다양한 클래스를 열고 공연도 하고 있지요. 11월 11~12일에는 ‘만백성에 표고하노니’라는 축제를 열어요. K조선 청년 파머스 마켓이라고 할까요. 조선시대 장터로의 시간여행을 콘셉트로 한 표고버섯 축제로, 표고버섯을 포함한 다양한 농산물을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지역 청년농업인이 재배한 표고버섯을 활용해 표고버섯 시식, 표고버섯 배지로 문경새재 성벽쌓기 놀이, 청정표고송 댄스 챌린지, 표서방을 찾아라 등 재미있는 놀이가 가득하다. 떡메치기 체험과 전통놀이 체험, 선비옷 입어보기, 국악 밴드들의 전통 공연, 풍악놀이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행사들도 준비되어 있다.
“문경에 스마트팜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하려고 귀농한 A급 농부 이현호라는 청년이 있어요. 2020년에 달빛탐사대로 처음 문경을 찾았는데, 귀농으로 이어진 거죠.
표고를 잘 재배해도 유통이 어려워서 과감하게 표고축제를 열기로 했어요.
이현호 청년농업인이 알고 있는 다른 지역 청년농업인들도 참여하고, 저희가 올해 6개월 동안 문경시청 관광과 사업으로 운영한 주막프로그램에서 만난 재능있는 청년들도 합류해서 재미있는 축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농업은 많은 시간이 지나야 결과가 나오는 일이기 때문에 달빛탐사대로 짧은 경험을 하기엔 적합하진 않지만, 표고버섯 축제처럼 지역 농산물을 알릴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게 박현희 대표의 바람이다. 이러한 일들이 모여 지역을 살리고, 농업ㆍ농촌을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청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3년 정도 지나니 지역에서도 잘 하고 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세요.
저희가 하는 활동들이 지역에 자극이 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라요. 가치살자협동조합은 계속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이 힘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쾌한 문경으로 한 번 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