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빈자리를
하고 싶은 일로 채우다

가치로움 최희경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된 가치로움은 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베이킹 수업을 통해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가치로움 최희경 대표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10년 전 논산으로 귀촌했다.
딸기농사, 카페 운영, 베이킹 수업 등 농촌에서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나씩 해오던 그녀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논산으로 귀촌,
호기심을 자극한 농촌생활

서울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이너와 브랜드 마케팅 기획자로 일하던 최희경 대표는 10년 전 논산으로 귀촌을 결정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특성, 그리고 호기심 많은 성격인 그녀는 30여년을 살아온 도시에서는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도시에서는 이미 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게 없었어요. 논산은 조용한 동네인데, 오히려 새로운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서울에 살 때는 먹고 즐기는 것밖에 없었지만, 여기서는 농작물이 주는 자극이 있었어요. 논과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들, 자연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 지역 안에서 교류하는 청년들까지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낯선 지역에서 생활하기가 힘들 법도 했지만 무인도에 떨어트려도 잘 살 것 같은 성격인 최희경 대표는 논산에 잘 적응해 나갔다. 논산 특산품인 딸기농사도 지어보고, 자연미술놀이학교를 꿈꾸며 미술치료도 배웠다. 농촌은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최희경 대표에게는 아니었다. 도시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고 즐겁게 움직였다.
“새로운 일들이 재미있었지만 아쉬운 건 평소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맛있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혼자 집에서 조금씩 만들어 먹었는데, 베이킹이 적성에 잘 맞았어요. 유명 파티시에들이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베이킹을 시작했죠.”
실력을 쌓은 최희경 대표는 ‘한스테이블’이라는 쿠킹 클래스를 열었다. 그녀가 만든 케이크나 쿠키 등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주위 청년농업인들에게 쌀이나 백향과, 토마토, 딸기 등으로 디저트를 개발해 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
“청년농업인들과 상생해야 하니 레시피 개발을 도왔어요. 그렇게 쿠킹 클래스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5년 정도 쿠킹 클래스를 하다 보니 한 번쯤 제 실력을 검증 받아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3년 전 디저트를 중심으로 한 카페 ‘파리씨(Par ici)’를 열었죠.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동생도 논산으로 내려와 함께 카페를 운영했어요.”
카페에서는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이용해 매일 15가지 정도의 디저트를 만들어 판매했다. 음료도 백향과, 딸기 등 제철 과일을 활용했다. 건강하게 재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바로 가져와 사용하니 신선하고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카페는 맛있는 디저트와 예쁜 공간으로 유명세를 타며 논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발달장애인 교육으로
사회적 기업을 꿈꾸다

올해 최희경 대표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교육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쿠킹 클래스와 카페 운영, 전국 농업기술센터 디저트 개발 교육 출강, 디자인 전공을 살린 농산물 패키지·BI 디자인 등 수많은 일을 병행해 왔지만, 이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쉽지만 올해부터 카페 운영을 중단했어요. 너무 바쁘다 보니 건강에 무리가 와서 내린 결정이었죠. 최근 ‘발달장애인 베이킹 전문인 양성교육’으로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가치로움’이라는 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쓰임의 중요성을 지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전국에 있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올만한 가치로운 곳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가치로움’은 베이킹 수업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의 발달을 돕고, 나아가 베이킹 전문가로 육성해 일자리까지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동안 다양한 일들을 해왔지만 최희경 대표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원에서 예술심리치료학을 전공하며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여러 노력이 더해져 ‘가치로움’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들은 발달이 느린 거지 발달이 안 된 게 아니에요. 어떤 수업은 강사가 베이킹을 거의 다 하고 발달장애인들은 포장이나 스티커만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요. 저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베이킹을 하면서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계속 교육이 예정되어 있다. 오랜 기간 고민하고 준비한 만큼 발달장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베이킹 전문인으로까지 성장하면, 그들이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디저트로 선물세트를 개발해 온라인으로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소득을 창출함으로써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농업·농촌 안에서
하고 싶은 일 해나갈 것

10년 전 논산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관심 있고 즐거운 일들을 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농업의 끈을 놓지 않을 계획이다.
“발달장애인 교육과정에도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창업이 들어있어요. 농산물, 농촌은 저와 끊이지 않는 인연인 것 같아요.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자극제입니다. 주위 청년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해 논산역에 크림도너츠 매장을 열 준비도 하고 있어요. 제철 농산물로 만드는 크림도너츠 12종과 스무디 음료를 판매하려고 합니다. 지역 농산물을 알리고 소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농업과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최희경 대표는 귀농이나 반농반X를 꿈꾼다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상했던 것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 결국 빚만 지거나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뭔가를 이룰 거야’, ‘한 획을 그을 거야’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엔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기도 했거든요. 의지는 생겼지만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농촌을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농촌의 부족한 면, 빈자리를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일로 채워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확실하게 계획을 세우고 목적을 갖고 온다면 농촌에서 내가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