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 시드르에
땅에서 온
그대로의 맛을 담다

작은 알자스 신이현·
도미니크 에어케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알자스는 프랑스 최북단에 있는 와인 산지다. 햇빛이 잘 들고 건조해 포도가 완전히 무르익어
매우 섬세한 아로마를 가진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북 충주에도 ‘작은 알자스’가 있다.
이곳에서는 소설가 신이현 작가와 그의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가 직접 농사지은 사과와
지역에서 난 포도로 내추럴 와인 시드르(apple wine, cider)와 로제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충주에서 이룬 농부의 꿈

우리나라 최초 자연온천인 수안보를 지나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탁 트인 자연 속에 ‘작은 알자스’가 자리하고 있다. 여유롭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알자스’는 신이현 작가와 도미니크 에어케 씨 부부가 지난 2017년 충주로 귀농하면서 꾸린 양조장이다.
“남편은 와인의 고장으로 유명한 프랑스 알자스 출신이에요. 어릴 적부터 포도밭에서 일손을 도왔고, 친척들도 작은 양조장을 운영하며 와인을 생산했다고 해요. 시어머니도 포도밭을 갖고 계셨지요. 남편은 20년 넘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도미니크 씨는 언제나 농부로 살고 싶어 했다. 프로그래머로 잦은 야근에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신이현 작가는 더 늦기 전에 원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프랑스로 떠났고, 도미니크 씨는 프랑스 농업학교에 편입해 농부가 되기 위한 준비들을 했다. 졸업 후엔 알자스에 있는 양조장에서 1년 동안 양조기술을 배우며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갔다.
신이현 작가에게도 알자스는 많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었다. 아름다움 풍광과 여유로운 분위기, 따뜻한 햇살, 맛있는 음식까지. 신이현 작가는 알자스에서 머물며 ‘알자스의 맛’이라는 책을 펴냈고, 농부로서, 양조장 주인으로서 정착할 공간이 알자스와 같은 곳이었으면 했다.
“처음엔 프랑스에서 양조장을 열려고 했지만, 여러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정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포도와인을 만드는 곳은 많았는데, 사과로 만드는 시드르는 별로 없었어요. 시드르를 주력해서 만들기로 하고 사과와 포도 농사가 모두 잘 되는 지역을 찾아다녔죠. 땅과 기후 특징을 보기 위해 정말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그중 충주가 저희가 찾던 곳이었어요.”

내추럴 방식으로 만든 시드르

충주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양조장을 만들었다. 양조장 이름은 ‘작은 알자스’로, 와인 브랜드는 도미니크 씨의 애칭인 ‘레돔’을 붙여 ‘레돔시드르’로 지었다.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이 유명한 알자스 스타일로 시드르를 생산하고 싶었습니다. 시드르는 포도와인과는 완전히 맛이 달라요. 사과를 완전 자연발효하는데, 알코올 도수가 6도밖에 되지 않죠. 시드르는 산뜻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입니다.”
포도는 와인을 위해 태어난 과일이라고 할 정도로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에 비해 사과를 재료로 하는 시드르는 만드는 과정이 10배 정도 어렵다. 작은 알자스에서는 늦가을 직접 재배해 수확한 사과를 착즙해 내추럴 방식으로 발효한다. 내추럴 방식이란 효모나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과일 껍질에 붙은 자연 효모를 이용해서 발효하는 것을 말한다. 온도가 낮은 겨울 동안 천천히 발효와 여과를 거듭한 후 병입하는데, 병에 들어간 뒤 다시 2차 발효가 되면서 생성된 천연발효 가스가 바로 스파클링이 된다.
“내추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맛있게 하기 위해 인위적인 맛을 첨가하기 보단 땅에서 온 그대로를 표현하는 게 좋아요. 우리가 시중에서 구입해서 맛보는 시드르는 진짜 사과의 단맛, 산미, 향이 아니에요. 저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을 위해 노력도 하지만, 땅에서 오는 성질과 맛을 최대한 잘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레돔시드르는 해마다 맛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농사지은 사과의 맛이 해마다 조금씩 다르고, 천연효모가 사과나무와 땅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맛있게 만들기 위한 레시피가 있다기 보단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땅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합니다. 땅을 키우고, 그 안에 있는 미생물도 같이 키우는 것이죠. 수안보의 땅과 기후 특징을 잘 드러내는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를 키워 수안보 떼루아(Terroir, 자연환경으로 인한 와인의 독특한 향미)를 잘 표현하는 게 저희의 꿈입니다.”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도미니크 씨의 첫 번째 꿈은 좋은 농부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 꿈은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드는 양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자연농법을 고집하고,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먼저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와인은 농사에서 오기 때문에 함께 밭을 먼저 둘러봐요. 저희는 다양한 품종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일반적인 부사가 아닌 신품종도 많이 심거든요. 품종들이 도태되면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니 소비자들만 손해예요. 그래서 왜 다양한 품종을 심는지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게 되지요.”
사과밭, 포도밭, 그리고 그 앞에 자라고 있는 100여 종의 식물들을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한 후에는 양조장으로 돌아온다. 양조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돌아본 후엔 와인을 4가지 정도 테이스팅한다. 신이현 작가가 직접 만든 알자스식 먹거리와 와인을 함께 즐기는 시간은 한없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셰프를 초빙해 지역 제철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시드르와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시드르는 무겁고 독한 술이 아니라 가볍고 산뜻해요.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서 안정화한 뒤 마시면 부드러운 풍미를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해산물, 파스타, 과일 등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죠. 누구라도 가볍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시드르로 조금은 무거운 우리의 인생까지 내추럴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