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밭을 가꾸며 누에를 기르다부안군 유유마을

글 ㅣ 김그린참고자료 ㅣ 농촌진흥청 농업기술포털 농사로(www.nongsaro.go.kr)
옷감을 만들 재료가 흔하지 않던 시절, 양잠은 환영받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합성섬유가 대중화되며 양잠농업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 속에서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부안군 유유마을 사람들은 양잠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누에에 관해서라면 그야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유유마을이다.

선비들이 노닐던 마을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유유마을은 변산반도를 감싸는 국도 제30호선과 지방도 제736호선이 만나는 마포교차로 인근 유유저수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유유마을에 닿는다. 유유마을은 약 54세대, 100여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전국 최대 누에 생산지로 손꼽힌다. 약 30년 이상의 양잠영농 경력을 가진 양잠농가들이 누에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그만큼 누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유유마을은 유유동(遊儒洞)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놀 유(遊)’ 자에 ‘선비 유(儒)’ 자를 쓴다. 부안군의 갑남산에서 수도를 하던 노승이 있었는데, 그가 유유동으로 거처를 옮기자 수많은 선비들이 노승을 따라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선비들은 빼어난 경치에 반해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고, 이후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하여 유유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선비들이 반할 만큼 유유마을의 풍경은 아름답다. 소박한 전경이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만나보지 못할 경치다. 내변산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는 형국이다. 또한 마을 북쪽에 유유제라 불리는 저수지가 있는데, 멀리 산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한 저수지의 모습이 담대하다. 바람 없는 날 바라보는 저수지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유유마을의 양잠은 고려시대부터 1,000년 가까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안을 ‘잠총국’으로 비유한 이규보의 시가 적혀 있고,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펴낸 <대동지지>에는 부안 토산품을 뽕이라고 기록한다. 현재 유유마을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되는 산뽕나무 군락지가 두 곳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양잠장려정책으로 보급됐던 산뽕나무들이다. 국가 주도하에 근대적 양잠이 이루어졌다는 근거다.

누에에 관한 모든 것

한때 유유마을 사람들은 위기를 맞았다. 외국산 생사가 저가로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새마을 사업 시기에도 양잠농업이 장려되었고 1980년에는 전국 양잠 시범마을로 선정되는 쾌거도 이루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중국산 생사가, 1990년대에는 베트남산, 캄보디아산 생사가 저가로 수입되면서 우리나라의 양잠농업은 위기를 맞았다. 시대 변화에 양잠농업을 포기하는 농가도 많았다.
하지만 부안군과 유유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2003년에 농촌진흥청과 대한잠사회에서 유유동 양잠마을을 대한민국 3대 청정 지역으로 지정했다. 누에는 뽕잎이 조금만 오염돼도 바로 죽을 정도로 농약과는 상극이다. 그러니 뽕나무를 가꾸는 일은 오직 친환경으로만 할 수 있다. 유유마을을 청정 지역이라 일컫는 건 당연한 일일 터다. 2004년부터 부안 누에타운을 조성했으며, 2006년에는 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부안누에특구’로 지정되었다. 부안 누에타운에는 부안참뽕연구소, 잠사곤충시험장, 누에곤충과학관 등 시설이 갖추어졌다.
또한 마을 주민들과 부안군, 전북도는 함께 힘을 모아 누에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섬유생산에 국한하지 않고 누에에 관한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누에를 위생적으로 건조해 누에가루와 누에 환 등 기능성 건강식품을 만들고, 누에 체험, 오디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매년 5월 말과 6월 초에는 ‘유유참뽕축제’를 개최하여 마을의 누에문화를 널리 알렸다. 참뽕 마실길을 걷고 오디로 잼을 만들며 유유마을 풍경을 찍은 사진전도 개최했다. 유유마을의 우수한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열고, 뽕나무 터널에서 보물을 찾는 등 유유마을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만들어졌다.

양잠 역사는 현재진행형

축제 때는 두 가지 제를 올리기도 했다. 하나는 누에의 영혼을 달래는 잠령제이고, 다른 하나는 풍년 양잠농업을 기원하는 풍잠제이다. 마을 사람들은 누에로 생업을 이어가게 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잠령제를 올리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양잠농업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풍잠제를 치렀다. 누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갖는 특별한 정성이 담긴 제례다.
유유마을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건 전통 토석 잠실이다. 큰 돌과 작은 돌로 돌담을 쌓고, 흙으로 벽을 지어 사각형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서해안의 해풍을 직접 받는 산골지역이며, 돌이 많은 밭이 대부분이라 돌과 흙을 이용해 토담집 형태의 잠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두터운 외벽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환기창은 습도를 조절하여 누에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양잠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양잠농업에 평생을 바치며 살아온 사람들. 부안군 유유마을에는 우리나라 양잠농업에 역사가 살아 있으며, 현재진행형 변화 또한 공존한다. 전통을 지키되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현명함이 유유마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부안군 유유마을
위치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유유마을

여행 더하기 : 국가중요농업유산
양잠농업의 과거와 현재를 묻다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유유동 전통양잠농업’은 지난 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8호로 지정됐다.
뽕나무 재배에서 전통방식의 누에 사육까지,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양잠농업을 이어온 마을로 평가받았다.
유유마을은 전체 80%인 40가구가 양잠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주민들이 뜻을 모아 양잠농업을 발전시켜왔다.

토지 취약함을 양잠농업으로 극복

유유마을의 농지는 특별하다. 농지 대부분이 물 빠짐이 심한 자갈 토양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산자락을 개간해 감자나 고구마와 같은 구황 작물 위주의 밭농사를 짓거나, 뽕나무 밭을 조성해 1년에 두 번 수확하는 양잠농업을 해왔다. 자갈이 많은 토지의 취약함을 양잠농업으로 극복해온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40만m2 규모 뽕밭을 가꾸고, 해마다 5,000만 마리 누에를 생산해냈다.
유유마을에는 100년 이상 된 산뽕나무 군락지가 두 곳 남아 있다. 특히 잠두봉 내 산뽕나무 군락지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힌다. 군락지 나무는 조선총독부 양잠 장려 정책으로 보급된 산뽕나무로 확인되었다. 오디 생산 뽕나무, 누에치기 뽕나무 등이 즐비하여 오디와 누에를 생산해내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전통적 잠실, 즉 누에 키우는 곳이 존재한다. 양잠농업이 소멸해가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전통 잠실을 자체적으로 보전·관리해왔다. 전통 잠실의 토담 벽면을 보면 그동안 어떻게 보수·개량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볏짚이나 갈대 등을 활용한 초가 형태에서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되었으며, 돌과 흙을 재료로 한 토벽 중 일부는 시멘트로 보수된 흔적도 있다.

친환경 농법으로 자연과 더불어

전통적인 양잠농업은 야생 산뽕나무를 활용하거나 산과 밭의 경계 부근에 식재된 산뽕나무를 이용해서 누에를 사육하는 방식이었다. 산뽕나무 군락지를 보면 유유마을이 전통방식 양잠농업을 이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산뽕나무를 최대한 활용하여 누에를 사육해왔다고 한다.
유유마을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소하천을 중심으로 수목들이 자연스럽게 자생하는 모습이다. 산뽕나무와 꾸지뽕나무 군락지 주변으로는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한다. 멧돼지, 고라니, 꿩 등이 그것이다.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뽕나무를 가꾸기에 사람에게도, 동물들에게도 좋은 땅이다. 뽕나무, 누에, 누에고치를 활용하여 사계절 소득을 창출하고, 전통방식 양잠을 지속적으로 전승해가는 사람들. 유유마을에는 양잠농업의 과거와 현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