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감자 신품종 개발
소비자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자
우리를 지키는 힘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임주성 박사

글 ㅣ 김주희사진 ㅣ 황성규
감자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엔 감자 두어 개를 쪄서 밥 대신 먹었고 때로는 적은 양의 쌀에 감자를 한 바가지 넣어서 밥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식사 대용이던 감자는 점차 반찬으로, 그리고 과자나 샐러드, 튀김과 같은 간식류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러한 감자의 활용에 따라 감자의 품종들도 다양하게 육성되기 마련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임주성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세계 1위의 씨감자
생산기술 보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임주성 박사
임주성 박사를 만난 건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였다. 이곳은 지난 1961년 ‘농사원 고령지시험장’으로 처음 개설되어 고랭지 작물의 신품종 육성, 고품질 다수확 생산기술, 친환경 농법 등 국내 고랭지 농업 관련 종합연구를 수행하는 농업연구기관이다. 특이하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해발 800m에 위치하고 있는 터라 분명 서울을 떠날 때는 완연한 봄 날씨였건만 이곳에 오니 아직 쌓여 있는 눈과 영하의 날씨를 만날 수 있었다.
“많이 춥죠? 강원도 평창은 다른 지역보다 평균 5~6℃ 가량 기온이 낮아요. 게다가 연구소가 해발 800m에 위치하다 보니 더욱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요. 감자를 육종하거나 농가에서 재배할 때는 씨감자를 사용하는데요. 씨감자는 바이러스나 곰팡이 병이 없는 깨끗한 감자여야 합니다. 낮은 기온에서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해충들의 월동이 어렵기 때문에 품질 좋은 씨감자를 생산하기가 좋아서 이곳에 연구소가 지어진 거죠. 대부분의 씨감자 밭들이 산악지대에 있어서 일반 감자밭과 거리두기도 편하고요.”
추운 날씨가 익숙한 듯 임주성 박사가 몸을 녹일 따뜻한 차를 건네며 씨감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누구나 감자를 즐겨 먹고 자주 접하지만 감자에 대해 잘 아는 이는 드물다. 감자를 재배하기 위해선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병이 없는 감자’를 심어야 하는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감자는 진정종자로 불리는 씨앗을 심으면 같은 열매에서 나온 씨앗임에도 불구하고 모양, 색깔 등이 제각각인 감자가 맺힙니다. 이 때문에 감자는 덩이줄기인 감자 자체를 심어서 재배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와 같은 병이 없는 씨감자를 사용해야 다수확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바이러스병에 걸린 씨감자를 심으면 수확량이 절반가량 적어지거든요.”
씨감자는 농가에 보급되기 전까지 실험실에서 병이 없는 식물체를 만드는 단계부터 시작하여 약 4~5년의 증식기간을 거친다. 연구소에서는 씨감자를 수경재배 방식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여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상토 소독, 병해 관리 등 애로사항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세계적으로 활용성이 큰 식물공장 시스템 등 다양한 방식의 씨감자 생산기술과 병해충 종합관리 체계 관련 연구를 선도하여 세계 1위의 씨감자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감자 신품종 개발로
해외 수출까지

식량이 부족했던 1950~70년대엔 감자가 주식이었다. 도시락에 밥 대신 감자 두어 개를 삶아 가져올 정도로 그 당시엔 감자가 곧 식량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감자 연구와 품종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 고령지농업연구소가 설립되었으니 우리나라의 감자 재배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농업 대국이라고 하는 네덜란드는 300~400년의 감자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감자 품종도 수천 가지에 달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6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역사에 비해선 굉장히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구소가 설립된 후 35종이 넘는 감자 품종을 육성하여 재배 및 가공현장에 보급하고 있으니까요.”
1980년대 초까지는 국내 적응성이 좋은 ‘수미’나 ‘대지’같은 해외 품종을 도입하여 보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1990년대 들어서면서는 인공교배를 통해 일반 식용 및 감자칩 가공에 적합한 우리 품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육성한 품종이 조숙성이면서 역병에 강한 ‘조풍’, 국내 최초 감자칩 품종인 ‘가원’, 2기작 식용 품종인 ‘추백’이다. 특히 ‘추백’은 국내에서 재배되는 품종 중 성숙하는 기간이 가장 빨라서 아직까지도 남부지역 겨울시설 재배지에서 각광 받고 있는 품종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임주성 박사
씨감자 종자
“2000년대에는 국내 감자칩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칩용 감자 품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때문에 설탕 성분이 적고 전분이 많은 ‘고운’, ‘새봉’ 등의 품종을 개발하여 감자칩 생산업체에 보급했죠. 설탕 성분이 많은 감자를 튀기면 색이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업체 측에선 선호하지 않거든요. 이렇듯 시대의 변화와 수요에 따라 감자 품종 개발도 달라집니다.”
현재는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컬러푸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빨간색 감자 ‘홍영’과 보라색 감자 ‘자영’을 개발했다. 이러한 컬러 감자들은 안토시아닌 함량이 많아 항염증, 항암에 효과가 있다. 덕분에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과 같은 기능성 생활용품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감자가 많이 수입되고 있는데요. 대부분 프렌치프라이에 사용되는 냉동감자입니다. 해외 품종이 냉동감자에 적합하기 때문에 업체들이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 부분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과제입니다. 냉동감자에 맞는 우리 품종을 개발하여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해외 품종이 들어오는 걸 방어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품종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데요. 중앙아시아, 베트남, 중국, 몽골 등의 기후와 토양에서 재배가 잘 되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감자 품종을 개발해 보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블랙금전수

아리랑 1호

골든볼

골든볼

골든에그

골든에그

그렇게 해외 수출을 겨냥해 개발된 감자 품종은 사막화 지역에서도 재배 적응력이 좋고 품질이 우수한 ‘아리랑 1호’, ‘아리랑 2호’이다. 또한 감자 모양이 긴 장타원형에 속이 진한 노란색인 ‘골든에그’, 프렌치프라이 등 가공에 알맞은 속이 하얀 ‘얼리프라이’를 육성해 국내외에서 현장재배와 가공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정간편식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요. 간편식 가공에 알맞은 ‘골든볼’ 품종을 개발해 올해 출원을 완료했습니다. ‘골든볼’은 갈아서 상온에 두어도 갈변 진행이 느려 식가공산업 분야에서 감자의 활용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맛과 면역력에 좋은
감자에 관심 가져야

감자는 면역력에 좋은 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비타민 함량이 높고 칼륨,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C 함량은 같은 크기의 사과에 비해 5~6배가 많아 유럽에서는 감자를 ‘땅 속의 사과’라고도 부른다. 특히 연구소에서는 감자껍질을 이용해 항염증 물질을 추출하여 특허출원까지 완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감자는 다양한 효능이 있지만 항염 효과가 있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등의 기능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특히 ‘홍영’, ‘자영’과 같은 컬러 감자는 일반 감자보다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 항염 효과가 더욱 높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성 물질들은 감자의 속보다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요. 따라서 홍영과 자영은 신선하게 생식으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믹서에 갈아서 마시거나 잘라서 생으로 먹으면 더욱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홍영과 자영을 시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수요가 적고, 그런 만큼 농가에서도 판로를 찾기 어려워 재배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홍영과 자영은 체험농장이나 텃밭재배 용도로 소규모 판매되고 있다.
감자
“대부분의 분들은 감자라고 하면 ‘다 같은 감자’ 라고 생각하시는데요, 품종에 따라서 맛과 용도, 가격, 효능이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도소매 상인들은 저장하기 편한 감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맛과 효능이 좋은 신품종 감자들이 잘 보급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가 감자에 대해 잘 알고 관심을 가진다면 그만큼 더 만족스런 감자요리들을 경험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신품종 감자들은 재배·가공되어 용도에 맞는 소비시장에 보급될 때 그 가치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 분들이 다양한 감자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 애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신품종 감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것은 우리의 식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에는 식량이 곧 국가 안보가 될 수 있다. 다양한 품종을 구비하는 것은 그 만큼 급변하는 미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구비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다양한 품종에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일이 곧 우리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