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외로운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활동에 조금씩 ‘치유’라는 개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창한 계획이나 꿈이 있어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지역 어린이들과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이 지역에 불쌍한 아이들이 많다고 하셨어요.봉사활동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식을 만들어주시는데 아이들 영양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나이엔 바른 식생활을 확립하는 게 무척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콩국수나 잔치국수였다. 일반적으로 그 나이엔 피자나 치킨이 먹고 싶을 만도 하건만, 이 지역 아이들에게 이러한 음식은 생일 때나 한 번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당시에는 식습관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판단을 했어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먼저였죠. 그래서 1년 동안은 수제피자, 수제햄버거, 스파게티, 또띠아 등 다양한 음식을 먹였어요. 그렇게 1년을 보내니까 그때부터는 먹고 싶은 음식을 다양하게 말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채소정원’에서 오색무지개놀이를 통해 식생활 미각교육을 하고 있어요. 노란색, 빨간색, 흰색, 초록색, 검정·보라색 등 다섯 가지 컬러가 들어간 채소를 심고 수확해서 다양한 맛을 음미하고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어요. 제철 농산물에 대한 소중함과 균형 있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작은 텃밭으로 시작한 에버팜은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별히 알리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알음알음 에버팜을 알게 된 이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성인 장애 인들과의 만남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마땅히 어울릴 만한 공간이 없던 이들은 에버팜에 한 달에 두 번 모여 함께 소통하고 농업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 활동 중 하나가 1박 2일 김장캠프로, 장애인들이 함께 배추와 파를 심은 후 김장철에 수확해 김치를 담그고 수육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 별 거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일상에서 쉽게 경험해볼 수 없던 일들이다.
“치유에 정답은 없어요. 제가 기준을 둘 수는 없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들이 원하는 걸 잘 보고 듣고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제가 할 일이에요. 그분들이 만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것도 있네’, ‘괜찮네’라는 정도로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치유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