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보리는 가난한 옛날을 상징하는 작물로 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나 쌀의 생산량 부족으로 인한 혼분식 장려운동 등이 그 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혼분식 장려 운동의 일환으로 학생들의 도시락에는 보리와 같은 잡곡이 일정 분량 들어가야 했다. 1980년대부터는 쌀 자급이 가능해지면서 혼분식 장려운동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쌀밥에 대한 욕구가 높았던 만큼 보리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맥주보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1974년 맥주 원맥의 국산화 정책과 맥주소비 증가로 인해 1975년도부터 맥주보리가 활발하게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울철이 따듯하고 강수량의 연중 분포가 균일해야 한다는 재배 조건으로 인해 제주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남부 해안지역으로 재배 적응지역이 국한되어 있다.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보리도 밥으로만 해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해 먹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다 보니 당뇨, 비만, 지질대사 이상과 같은 병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당지수가 낮고 대사증후군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보리가 이상적인 건강식품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콜레스테롤 합성을 저해하는 토코트리에놀 성분, 혈중 지질 수치를 낮추고 혈당 조절에도 도움을 주는 베타글루칸 등이 그 주역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보리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가 높지는 않다. 세계 최대의 보리수입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부분의 보리를 낙타나 양 등의 사료로 수입하고 있다. 2위 수입국인 중국도 맥주를 만들기 위해 수입을 하는 것이 대다수다. 그런 만큼 원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도록 가공된 보리 상품을 만드는 것이 수출에는 보다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찰보리빵, 보리국수, 보리차, 보리커피 등이 있다.
한편 건강에 신경을 쓰는 웰빙트렌드를 통해 보리 수출 길을 트는 경우도 있다. 가공되어 바로 마실 수 있는 RTD(Ready To Drink) 보리차, 알록달록한 색상과 기능성을 겸비한 색깔보리쌀 등이 그 예다. 특히 RTD 보리차 시장 규모는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기준으로 500억 원대로 늘어났다. 집에서 끓여먹는 대신 간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서도 국내산 보리를 사용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음료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보리음료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미 미국으로 15만 병이 수출된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색깔보리쌀의 경우는 이미 미국과 중국, 베트남 등으로 수출이 되었는데, 이 색깔보리들이 치매와 노화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3년만에 수출량이 40배 가까이 늘었다. 외국에서 볼 수 없는 색과 기능성을 지닌 것도 수출길을 든든하게 지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