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모시와 함께
물들여가는 농촌체험

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 대표

글 ㅣ 김희정사진 ㅣ 최성훈
덥고 습기 가득한 여름에 유독 잘 만들어지는 옷감이 있다.
잠자리 날개처럼 반투명한 모시천은 여름철에 짜고 바느질을 해야 한층 태가 사는 옷감이다.
날씨가 건조해질수록 모시 섬유가 뚝뚝 끊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서천 한산모시는 습기가 많은 날씨로 인해 모시 올을 한층 가늘게 뽑을 수 있어 한산모시라는 명품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런 모시천을 직조부터 염색, 디자인까지 하는 여성 대표가 있다. 서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예순 대표다.

손이 유독 빠른 여자의
조금 달랐던 시작

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 대표
박예순 대표가 어렸던 시절에 서천 여자들은 본인이 짠 모시를 혼수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박예순 대표가 모시 일에 손을 댄 것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남들은 모시풀을 째고 베틀에 걸어 모시를 짤 때 그녀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미싱사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세에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미싱사로 일한 지 5년여, 결혼을 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선을 보고 동향 사람과 결혼한 후에야 그녀는 모시 짜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나서야 작은 어머니가 쓰던 베틀에 실을 걸어서 모시 짜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시아버지 소원이 재봉틀을 잘 다루는 며느리, 모시 잘 짜는 며느리를 들이는 것이 소원이셨는데 부담이 되니까 배우는 것도 비밀로 하고 짜고 있었죠. 근 28일 만에 한 필을 다 짰는데, 다 완성하기 전날인가 전전날인가에 시아버지께 모시 짜는 것을 딱 들켰지 뭡니까. 그래도 그렇게 한 필 다 짜고 나니 두 번째 필은 손에 익어서 8일 만에 짜냈죠.”
그렇게 짜냈던 모시는 유독 시장에서도 높은 값을 쳐서 받았다. 북과 바디집을 힘차게 쳐가며 촘촘하게 짜낸 보람이 있어서일까, 시댁에서도 모시 짜기를 지원해주면서 하루에 16시간을 모시 짜는데 보내며 하루 한 필씩을 짜내곤 했다. 농사일 등 바쁜 나날 속에서도 모시를 짤 수 있었던 데에는 시어머니의 도움도 컸다. 육아와 요리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예순이란 이름은 모시 짜는 사람으로 나날이 유명해졌다. 친정아버지가 풍으로 고생하시며 친정의 가세가 기울 때도 모시 짜기는 그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원천이 되었다. 50살이 넘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천연염색을 배우러 서천에서 평택을 오갈 때도, 방통대에서 의상학과로 대학을 졸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꾸준히 모시 짜기와 배움,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 잡은 기회들이 박예순 대표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었다.
한산모시

꾸준히 모시 짜기와 배움,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 잡은 기회들이
박예순 대표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었다.

올올이 물들이는
천연염색의 세계로 스며들다

아름답고 화사한 옷을 짓는데 염색은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다. 서천에도 모시 짜기 기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모시 직조에서부터 염색까지 해내는 사람은 지역 내에서도 박예순 대표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2001년부터는 천연염색을 해볼 수 있는 체험학습교육장을 열어 본격적으로 규방공예를 비롯해 천연염색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원래는 모시 50필을 마지막으로 짜서 아이들 혼수로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교육을 받으러 서천군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던 차에 신백섭 소장님이 체험학습교육장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망설이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대답했죠. 그 다음해에 예산을 지원해주셔서 천연염색체험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짠다고 생각했던 모시 50필도 고스란히 천연염색에 쓰이게 되었죠. 물들인 염료도 다양해요. 보리수나무나 양파껍질, 치자, 홍화, 소목 등 자연의 색이 오롯이 담기게 되었죠.”
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 대표
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 대표
당시 망설임 없이 천연염색체험장을 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동안 쌓인 경험과 자신감 덕분이었다. 염료시범사업을 제안받아 쪽과 홍화 등의 염료식물을 키워낸 것을 비롯해 평택 천연염색연구회에서 염색교육을 받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방송통신대학 수업에서도 교수 대신 염색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을 쌓다보니 염색체험도 어렵잖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단체 체험은 거의 끊기다시피 했지만 계절별로 다른 체험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미리 예약만 한다면 가족단위 체험도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그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물들을 이용해 천연염색을 하다 보니 계절별로 들이게 되는 색깔도 달라지곤 한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생쪽을 이용해 맑은 하늘색을, 땡감으로 짙은 갈색을 물들일 수 있는 계절이다.
“화학염색을 하면 선명한 색이 쉽고 빠르게 나오죠. 그렇지만 거기서 나오는 물은 제대로 정화하지 않으면 주변을 다 오염시키고 말아요. 제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도 위쪽에 있는데, 물 흘러가는 방향을 따져보면 마을 아래쪽에 있는 논과 밭이 다 영향을 받거든요. 내가 생활하는 반경 안에서는 오염물질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고 싶다는 마음이 천연염색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어요.”
2019년에는 체험교육농장으로 한층 터를 넓혔다. 교육농장을 찾는 체험객들이 감자 캐기 체험을 할 수 있게끔 3,305㎡(약 1,000평)가 넘는 밭에 감자를 심기도 했다. 농사에 전념하는 남편이 생산한 고춧가루, 찹쌀 등을 직거래로 팔기도 한다. 농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과 한국의 멋을 체험하는 것이 함께 가야 한다는 박예순 대표의 신념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산모시의
내일을 그릴 수 있는
지원 절실해

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 대표
모시짜기를 해온 지 어언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박예순 대표의 꿈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전통문화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후계자가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마을기업이자 교육농장으로 지정받은 전통문화 체험소인 한다공방도 이끌어왔지만,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봤다.
“한다공방은 지금도 새롭게 들어올 사람이 있다면 진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요. 다만 영농조합법인이다 보니 본인이 농사에 종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요. 사실 젊은 사람들이 시골로 온다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조언에도 귀를 여는 사람이라면 귀농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요.”
한산모시를 살리는 데도 직조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박예순 대표의 의견이다. 모시풀을 재배해 속껍질로 태모시를 만들고 이로 속껍질을 쪼개서 섬유를 얇게 뽑아내는 과정은 노인들의 노동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실로 삼아 날틀에 걸고 도투마리에 매어내는 것부터 모시를 짜내는 것까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줄어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모시 짜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경제적 여건을 생각한다면 쉽게 권할 수 없는 일이다.
“제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누덕누덕하게라도 모시를 짜냈더라고요. 그런 딸에게도 모시를 하라고 시키지는 못했어요.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는 게 아니면 남에게 시키지는 못할 일이라 그래요.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라도 이 기술을 배우고, 대학교에서 우리 때와는 다른 미의식과 배움을 경험한다면 또 다른 가치를 불어넣은 모시 만들기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모시학교를 세우는 게 제 꿈인데, 아직 요원하네요. 딱 65세까지 사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걸 못 이뤄서 목표수명을 70세로 늘렸어요. 그런데 누구는 75세는 되어야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이전부터 쭉 이어왔던 컴퓨터 공부와 정보화농업인연구회 활동 덕분에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참 많이 늘어났다. 박예순 대표의 활동이 알려진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으니 공부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제 그녀의 남은 꿈은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산모시를 통해 정착의 기회를 마련하고 다음 세대에 전통을 비춰주는 빛으로 남는 것이다.
두메산골물듬이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후암길79번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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