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변현단 대표는 감자 15종, 콩 30종을 밭에서 키우고 있다. 계절별로 심는 농작물이 다 다르지만 한가지 지켜지는 것이 있다면 꼭 혼작을 한다는 것이다. 고추 옆에는 들깨를 심고, 강낭콩 사이에는 토마토를 심는 식이다. 한가지 품종이 일사불란하게 밭을 채운 일반적인 농사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작은 밭 안에서도 옹기종기 제각기 다른 식물들이 터를 잡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고추에는 담배나방벌레가 많이 생기는데 그 옆에 참깨를 심으면 담배나방벌레가 접근을 할 수 없어요. 농서에는 없는 정보지만, 제가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나누었죠. 식물은 1년을 산다고 쳐도 벌레는 한살이 과정이 짧기 때문에 농약을 쳐도 그 농약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가진 벌레가 또 생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작물들끼리 혼작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해요. 한 번은 토마토와 두벌강낭콩을 같이 심어봤어요. 두벌강낭콩은 습기에 약해서 비가 오면 곰팡이가 잘 발생하거든요. 그런데 키가 큰 토마토가 비를 막아주니까 습기가 안 차면서 둘 다 잘 자더라더라고요.”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 방식도 토종으로 돌아갔다. 발효거름을 만들어 뿌리고, 밭작물 사이 사이는 비닐을 덮은 것이 아니라 풀을 덮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땅에 빗물이 스며들 수 있으면서도 퇴비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벌레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물론 이 작물들이 항상 다 잘 자라는 건 아니에요. 재미있는 것은 강화도가 원산지인 토종 콩은 그 일대에서만 재배가 잘 되지 전남이나 경남에서 심으면 잘 크지 못해요. 홍천의 청춘감자도 그런 경우인데요. 하지에 캐면 새파란 빛을 띠고 있어 청춘감자라고 부르는데, 곡성에서 길러보니 유난히 알이 작게 크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지역의 품종이라도 기후나 지역 적응을 통해 종자를 다양화시키는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이상기후변화가 점차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토종씨앗에 걸게 되는 기대도 점차 커지고 있다. 토종씨앗을 다양하게 심었을 때의 장점은 각각의 종자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후에 맞게 살아남는 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큰 비가 오거나 가뭄이 심하게 오더라도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토종 씨앗을 여러 군데에 보급하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는 해당 종자가 제대로 생육하지 못했더라도 다른 지역에서는 그 종자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 단순히 토종 종자를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농사법과 함께 보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에는 토종 종자의 중요성이 탁상공론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정부나 민간에서도 토종 종자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에서 유전자원의 중요성에 대해서 꾸준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