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 역사를 지닌 야생차의 고장
하동 전통 차농업

글 ㅣ 소효령자료 ㅣ 농촌진흥청
번화가의 두 집 걸러 한 집이 카페라고 할 정도로 현대인들의 차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현재는 커피를 가장 많이 즐기지만,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이 차 전문 브랜드를 런칭할 만큼 차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녹차를 즐겨 마셨다.
차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은 아니다.
차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0℃ 이상으로 온난하고 연평균 강수량이 1,500mm 이상인 다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차 재배지는 온난한 남쪽 지역에 분포돼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경남 하동군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

차
언제부터 차나무의 잎을 따뜻한 물에 넣어 우리고 마실 생각을 한 걸까. 이 최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당나라 때의 문인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에는 신농씨가 부엌에서 마실 물을 끓이다 땔감으로 사용했던 나무의 잎이 주전자 속으로 들어갔고, 마침 그 물을 마신 황제가 그것만을 마시기 고집하면서 성행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차를 마셨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추정할 뿐이다. 정사에 나타난 최초의 차 관련 기록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써 신라에서는 7세기 전반인 선덕여왕 재위 기간(632~647) 이전에 이미 차가 있었고, 흥덕왕 때에는 차를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다고 짐작한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칠불암에 이르는 산길 좌우에는 16km에 걸쳐 자생 차나무가 있었다. 조선 후기의 승려인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와 다도정신에 대해 서술한 『동다송(東茶頌)』에는 ‘지리산 화개동은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밭이 이보다 성한 곳은 없을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화개면 운수리는 2008년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차 시배지로 한국기록원에 등록되었다.
1200년 역사를 지닌 야생차의 고장 하동군 화개면은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밤낮의 기온차가 큰 기후와 환경으로 인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많은 차가 생산되었다. 무엇보다 재래종 차 재배의 위기였던 일제강점기에도 하동 차의 품종과 다례문화를 유지해 한국 차 문화의 역사와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차 한 잔을 우리기까지의 정성

하동녹차는 찻잎 따기-덖기-비비기-건조-끝 덖기-선별·포장의 과정을 거쳐 만든다. 찻잎은 보통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까지 따며,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분류한다. 찻잎은 새순이 돋아나는 여린 잎 한두 마디를 따는데 밤이슬을 흠뻑 머금은 오전에 따는 것이 최고요, 한낮에 따는 것은 그 다음이며, 흐린 날씨나 비가 올 때는 따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따온 잎은 멍석에 깔아놓고 큰 잎, 묵은 잎, 줄기, 부스러기를 가려 낸 다음 솥이 잘 달구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양을 넣고 빠르게 덖는다. 일본식 녹차와의 차이가 바로 이 ‘덖음’에 있다. 일본식 녹차는 찻잎을 증기로 익히기 때문에 녹색이 뚜렷해지는 반면 우리의 덖음차는 연호박색을 띤다. 찻잎을 덖으면 맛이 구수하고 향기가 좋아질뿐만 아니라 찻잎의 수분을 제거해 부패하거나 변질되는 것을 방지한다. 자연히 차의 성분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운반과 보관이 편리해진다.
잘 덖은 찻잎은 열기를 없애고 차의 성분이 배어들도록 멍석에서 비빈다. 이 작업은 찻잎 표면의 막을 제거하고 상처를 내 차가 물과 섞일 때 차의 성분이 쉽게 우러나게 한다. 덖기와 비비기를 수차례 반복한 다음에는 찻잎을 건조시키고 마지막으로 낮은 온도에서 충분히 덖어 마무리한다. 덖기가 잘 이루어지면 차의 빛깔과 향기가 아름답고 오묘하며 싱그러운 맛이 난다.
하동녹차는 다른 지역의 녹차보다 성분과 맛, 품질 등이 우수하다. 특히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덖음’ 기술이 뛰어나다. 이를 활용해 고급 녹차를 생산함으로써 보급형 녹차를 생산하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 고급 녹차의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녹차
녹차밭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차로 자리매김하다

녹차
야생 다원에서 생산되는 하동녹차는 차 재배에 유리한 기후 조건과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를 통한 세계적 명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동녹차연구소, 차문화센터, 녹차체험관, 녹차 산업 전담 부서(지역특화산업기획단)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는 지역 축제이자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해 하동을 세계적인 녹차 산업의 중심지로 부각시켰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이며 차 문화의 기원지로서의 하동을 알리고 관광객들에게 녹차와 관련된 정보와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찻잎 따기, 덖음과 같은 녹차 생산 과정을 관광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녹차체험마을을 조성하는 등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녹차 생산은 하동군 농가의 주 소득원이기도 하다. 2008년 기준으로 농가 2,100호(전국 대비 약 45%), 재배 면적 1,048ha(전국 대비 약 23%), 생산량 2,230톤, 소득원은 261억 원을 기록했다. 하동 주민들은 하동녹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식재에서 재배까지 친환경 유기농법을 고집한다. 차 수확이 끝난 후 생긴 가지 치기 등으로 생긴 부산물을 차밭에 그대로 두는 것 또한 잡초를 막고 친환경적인 퇴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밭을 보전하기 위해 가축을 기르지 않아 화개면 일대에는 가축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다른 작물에도 농약을 치지 않는 등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하동군 또한 생산비를 낮추는 채엽 장비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관수 시설, 잡초 방제 부직포, 모노레일 설치를 지원했다. 어린 잎에서 완전한 차로 거듭나기까지 안정성을 확보하고 품질 좋은 녹차를 생산하기 위해 하동녹차연구소, 농산물품질관리원과 협약을 맺고 모든 재배지의 유해 물질 안정성 검사를 진행해 불검출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녹차 참숭어, 녹차 냉면, 녹차 소주 등 녹차를 이용한 먹을거리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차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하동의 노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