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차나무의 잎을 따뜻한 물에 넣어 우리고 마실 생각을 한 걸까. 이 최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당나라 때의 문인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에는 신농씨가 부엌에서 마실 물을 끓이다 땔감으로 사용했던 나무의 잎이 주전자 속으로 들어갔고, 마침 그 물을 마신 황제가 그것만을 마시기 고집하면서 성행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차를 마셨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추정할 뿐이다. 정사에 나타난 최초의 차 관련 기록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써 신라에서는 7세기 전반인 선덕여왕 재위 기간(632~647) 이전에 이미 차가 있었고, 흥덕왕 때에는 차를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다고 짐작한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칠불암에 이르는 산길 좌우에는 16km에 걸쳐 자생 차나무가 있었다. 조선 후기의 승려인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와 다도정신에 대해 서술한 『동다송(東茶頌)』에는 ‘지리산 화개동은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밭이 이보다 성한 곳은 없을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화개면 운수리는 2008년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차 시배지로 한국기록원에 등록되었다.
1200년 역사를 지닌 야생차의 고장 하동군 화개면은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밤낮의 기온차가 큰 기후와 환경으로 인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많은 차가 생산되었다. 무엇보다 재래종 차 재배의 위기였던 일제강점기에도 하동 차의 품종과 다례문화를 유지해 한국 차 문화의 역사와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