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뽕나무를 키우고 누에를 치지 않았던 지역은 보기 드물지만 그중에서도 부안 유유동은 다소 특출한 데가 있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서는 누에치기를 하는 풍습이 중국의 잠총국과 같다고 언급되었다. 여기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나 ‘대동지지’ 등에 부안의 특산물로 뽕이 거론된 것도 유유동의 양잠 역사를 웅변해준다.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부안에는 뽕나무와 이를 먹이로 하는 양잠이 발달했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사방에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여 있어 뽕나무들이 잘 자라던 것이 자연스럽게 양잠농업으로 이어졌다. 양잠에 있어서는 온도와 환기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유유동의 지형도 큰 장점이었다. 산 높은 곳에서 불어오는 남동풍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산등성이에 한 번씩 걸러져 오면서 찬기가 덜해진 바람들이 사시사철 불어오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양잠농업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 마을 곳곳에 위치한 잠실이다. 지붕은 엉성하고 외벽도 오래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나름의 기능성이 있다. 두껍게 돌과 흙으로 쌓은 외벽이 온도를 유지해주고, 위아래로 뚫은 환기창은 습기를 조절해 어린누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양잠에 종사하며 가내수공식 양잠이 이어져 왔었지만 1970년대에는 51ha에 뽕나무밭을 일구며 잠업전업마을로 발전했다. 전국잠업증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80년 8월에는 전국양잠시범부락육성대회가 부안에서 개최되면서 현대에도 양잠의 전통을 이어왔다. 지금도 70호의 농가 중 30호가 누에를 길러 약용으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아예 누에에게 안방을 내주고 온도계와 벽시계를 걸어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고 때맞춰 밥을 주는 집도 여럿이라니 누에마을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누에가 농약이 묻은 뽕나무 잎을 먹을 수 없다 보니 마을 일대가 친환경 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을 일대에 뽕나무가 넓게 심어져 있는 만큼 그 근방의 농지에 농약을 뿌리면 자연스럽게 뽕잎을 먹는 누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친환경으로 키운 뽕잎과 오디 열매를 가공한 식품들, 그리고 누에를 가공해 만든 건강보조제 등이 유유동의 새로운 특산물이 되었다. 입는 양잠에서 먹는 양잠으로의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마을에서 식재한 뽕나무의 종류는 크게 오디 열매를 생산하기 위한 것, 누에를 키우기 위한 것, 그 외 뽕나무 부산물을 얻기 위한 것으로 나누어졌다. 그중 가장 폭넓게 키워낸 종류는 오디 열매를 얻기 위한 뽕나무 품종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누에를 통한 시장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한층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오디 열매와 그 가공품을 판매하는 식으로 마을의 업종이 전환된 것을 반영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