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종자주권 확보와
생명산업 신성장동력을 위한
유전자원연구

글 ㅣ 김주희
급격한 기후변화와 재난·재해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유전자원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유전자원은 우리 식량의 근간이자 의약품 및 생명공학 산업의 기초재료로 그 무한한 고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유전자원이 곧 국력이라고 평가 받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광범위한 수집·보존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유전자원의 국가 주권화를 위한 연구 필요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우리에 삶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는 소리 없는 식량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매년 수만 종씩 사라지는 상황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식량기구(FAO) 등 국제기구들은 머지않아 식량전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선 생물종, 즉 식량자원이 필요하다. 생물종은 수명이 있지만 자손을 번식시켜 지속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생물종이 갖는 특성이 대를 물려 이어지는 현상을 유전이라고 하며, 특성이 서로 다른 생물종이나 동일 종 내 개체나 집단을 유전자원이라고 한다. 유전자원은 식량문제 해결을 비롯해 의약품 및 생명공학 산업의 기초재료로 그 무한한 고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 예로 198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개발된 신규 의약품 가운데 60%가 유전물질에서 비롯되었고,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 역시 중국과 베트남에서 향신료용으로 재배되는 스타아니스에서 추출한 것으로 식물 종자에서 만들어졌다.
유전자원
지난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는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의정서’가 전격적으로 채택되었는데, 앞으로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하며 유전자원의 이용으로 발생한 금전적, 비금전적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전자원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과 생물자원을 보유한 개발도상국이 계속 갈등을 빚어 온 데서 이루어진 국제협약이다.
이 나고야의정서는 우리나라에서 2018년부터 시행되며 생물유전자원의 다양성 확보와 안전보존, 그리고 자원의 국가 주권화를 위한 연구 확대가 필요해졌다. 우리나라는 국립생태원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를 중심으로 국내 생물 유전자원을 발굴·보존하고 자원 이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나고야의정서에 대비해 왔다.

앉은뱅이밀 등
우리 유전자원 반출의 아픈 역사

우리나라에는 유전자원 반출과 관련된 뼈아픈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인 녹색혁명의 주역인 밀 품종의 개발이다. 멕시코 국제맥류옥수수연구소의 볼로그 박사는 우리나라의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 품종을 이용하여 1940년대 초 육성한 반왜성 밀 품종을 멕시코와 아시아에 보급하여 이 지역의 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이는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소위 ‘녹색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볼로그 박사는 반 왜성 밀 품종을 육성하여 보급한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인류 역사상 인명을 가장 많이 구한 위인이 되었다.
유전자원
유전자원
이와 함께 지리산과 한라산의 대표 식물인 구상나무는 1904년 서양으로 반출되어 크리스마스트리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정향나무는 1947년 미국으로 반출되어 ‘미스킴라일락’으로 불리며 정원수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유전자원이 해외로 반출되면서 그 나라의 자원이 되고, 자칫하면 우리나라의 유전자원임에도 해외에 로얄티를 지불하고 수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전자원의 무단 반출을 막고 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와 함께 현재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종자 선진국들은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공학(NT) 기술을 접목해 고부가가치의 신물질을 개발하는 ‘3차 종자전쟁’을 진행 중이다. 우리가 보유한 유전자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상품을 창출하는 것이 유전자원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식물유전자원 보유수
세계 5위 등 연구 성과

우리나라는 농업유전자원센터와 가축유전자원센터를 설립·운영하여 유전자원 종합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유전자원의 특성정보 파악과 유용형질 발굴 및 활용, 국제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식량 주권의 근간을 이루는 식물유전자원은 1,599종 23만 7,043자원을 보존하고 있으며 영양체자원 1,488종 2만 6,088자원을 포함하면 3,087종 26만 3,131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나고야의정서 등 국제조약으로 유전자원 도입 및 활용 제한이 국제쟁점이 되고 있기에 국제적으로 자원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나라 토종인 야생종, 재래종 등 5만 4,839자원이 더욱 소중한 우리 유전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축유전자센터
그 결과, 우리나라 식물 유전자원 보유수는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앞으로도 매년 약 3천 건의 국내외 유망 유전자원을 확보해 국내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재래종·야생종·미확보 육성품종 등을 확보해 부가가치가 높은 약용작물이나 기능성 잡곡 자원 등 국내 고유 자원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가축유전자원센터의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멸종위기의 백한우를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적용하여 폐사된 백한우 씨수소 체세포의 핵을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하고 이를 대리모에 이식함으로써 백한우 복원에 성공한 바 있다. 복원에 성공한 이후 백한우의 멸실 방지를 위해 정액, 수정란 등 생식세포를 영구보존하고 있으며, 체내수정란 생산효율 향상을 통한 근친제어 축군 증식과 함께 유전특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서 전 세계 가축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개발한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우리나라 가축유전자원 15축종 123품종을 등록하는 성과를 얻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는 199개국 38축종 1만 5천여 품종이 등록된 수에 비하면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식량농업유전자원위원회(CGRFA)에서는 DAD-IS를 가축유전자원의 접근과 이익공유를 위한 국제적 정보 교환소로 활용한다고 결정했으며 현재 UN의 멸종위험 품종 관리 시스템으로도 활용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유전자원연구는 짧은 역사에 비해 많은 성과를 이루었으나 앞으로는 수요자가 원하는 자원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래 수요를 예측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후변화 등 글로벌 위기 속에서 유전자원 연구가 국가 종자주권 확보 및 생명산업 신성장동력의 핵심자원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가축유전자센터
가축유전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