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지켜왔던 것이 어떤 지역으로 출장을 갈 때는 그 지역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지역의 백반 맛을 보아도 강진 달마지 마을의 밥맛은 뭔가 달랐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 맛이 떠오르는 깊은 맛이었다. 그 맛의 원천은 마을 전체가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었다. 상추, 부추, 깻잎, 백태 등 20가지 가량의 종자들이 오랜 시간 농부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제게는 토종 종자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곧 농민 여성들이 일궈온 문화유산을 이어나가는 것과도 같아요.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통일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농가에서 심는 건 농가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준 씨앗이었거든요. 농사 자체가 여성에 의해 발견되고 발명되었다는 것도 학계의 정설이고요. 그런 점에서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마을 단위로 있다는 점은 제게는 큰 발견이었어요.”
이 토종 종자들로 농사를 짓는 것이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김정희 상임이사는 2010년 가배울을 조직하고 2013년부터 토종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매달 제철 토종 농산물을 보내는 꾸러미 사업, 가공품 개발비를 후원받아 가공품으로 돌려주는 토종농사 문화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토종의 맛을 소비자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달마지 마을이 고령화되면서 토종 종자들이 멸실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달마지 마을의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농사를 지으시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종류를 줄여가세요. 젊었을 때는 밭에서 20가지 종자를 돌려가며 농사를 지었다면 80대에는 한두 가지만을 마당에서 기르는 텃밭 농사만 하시는 식이죠. 그 종자를 미리 갈무리해놓고 물려주지 않으면 토종 종자 자체가 할머님들이 돌아가시면서 그대로 잊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눈길을 돌려서 전국에서 토종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찾은 거예요. 지금은 전국에서 다양한 토종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생겨나서 가배울에서도 토종 농산물 판매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