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영의 『천일록』을 비롯한 그의 저술에 나타난 향촌사회에 대한 지방사적 시각과 사상적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8세기 말 대표적인 농업이론가의 한 사람이었던 우하영은, 『농가총람(農家總覽)』, 『전제(田制)』, 『부농정(附農政)』, 『수원유생우하영경륜』 등을 통하여 위기에 직면한 농민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부(國富)의 충실화를 기하려면 먼저 농업생산력의 증진이 필요하다고 보고, 무본의식(務本意識)의 고취와 강력한 권농정책을 역설한 바 있었다. 그는 이러한 권농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권농관제(勸農官制)의 활성화와 농관(農官) 운영절목의 제정·시행을 요청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향촌사회에서
일반화된 비생산적인
나농(懶農)과 유수(遊手)의 풍조를
국가적 차원에서 강력히 징치(懲治)하는
농촌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해이된 향촌사회의 결속과 재흥을 위한 대안의 하나로 풍속교화와 상부상조의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농촌의 자치조직으로서 향약(鄕約)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조선후기 수원지방의 향약으로 거의 유일한 우하영의 『향약설』은 근기지역 향촌사회의 실상과 농업진흥 문제와 결부되어 그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좋은 단서가 되어준다고 하겠다.
둘째, 농업정책·농업기술·농업경영을 포괄하는 『천일록』의 농업론은 경기지역, 그중에서도 수원을 중심으로 한 그 지역적 사정을 짙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17세기 말 이래 수원을 비롯한 경기지역의 경우, 이앙법의 수전농 적용이 일반화되면서 호부층(豪富層)의 토지겸병과 광작(廣作)의 확대로 인해 소농민의 분해현상을 향촌사회의 일대 위기로 파악, 특히 나농광작(懶農廣作) 현상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소농층의 토지이탈과 토지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나농풍조는 바로 대다수 소농민을 위협하고, 향촌사회는 물론 국가적으로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관점에서 정농사상(精農思想)에 입각한 집약적 소농경영론을 주장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상품화폐경제의 진전과 신도시 화성이 상업도시로 발전하던 시점에서 상업적 농업의 필요성을 적극 권장하기도 하였다. 즉, 그가『천일록』 도처에서 주곡(主穀) 중심에서 미나리, 무 등 도시근교의 채소농업을 권장한 것이라든지, 담배를 제외한 목면, 인삼, 생강, 닥나무, 대나무, 옻나무 등 특용작물의 유용성과 상품화를 주장한 것이 그 예이다. 이것도 발전하는 시대현실에 대한 전진적인 관점과 함께, 소농의 입장에서 농민경제의 안정을 목표로 삼았던 그의 농업론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