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녹색혁명을 꿈꾸다
우리 가루쌀

글 ㅣ 편집부 자료 ㅣ 농촌진흥청
우리나라는 1970년대 통일벼 육성·보급으로 쌀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로 쌀 공급 과잉 문제 해결과 식량안보를 지키는 일이다.
언뜻 보면 극과 극의 문제 같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수 방법이 있다.
바로 쌀가루 전용 품종으로 개발된 가루쌀의 활용이다.

전쟁·기후변화로
식량위기 직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촉발된 전쟁이 전 세계를 식량위기에 빠지게 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기후변화로 세계 수십 여 나라, 수백만 명을 빈곤과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 보면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현상이다. 지난 2008년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가치 하락, 국제 곡물가격 급등, 물가상승 등이 겹치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용어로 진화한 개념이다. 이때 사용되었던 ‘퍼펙트 스톰’이 2022년 현재,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닥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실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식료품 수출을 금지한 국가는 14개국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전 세계 곡물 수출량 중 밀 8.5%, 옥수수 13.6%, 해바라기유 42.6%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세계 1위 밀 수출국으로 세계 수출량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두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곡물수출이 막히며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도, 카자흐스탄, 코소보, 세르비아는 밀 수출을 금지했고, 인도네시아는 팜유 등 식용유 수출을 막았다. 이밖에도 아르헨티나, 알제리, 이집트, 이란, 세르비아, 튀니지, 쿠웨이트 등이 채소, 과일, 곡물, 식물유 등의 수출을 통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지키는 일은 전 세계가 풀어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중 하나가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분질미 품종의 가루쌀이다.

건식제분 가능한 가루쌀 개발

쌀의 주성분은 전분으로, 일반 쌀의 경우엔 전분 구조가 밀착되어 있어 알맹이가 무척 단단하다. 그래서 기존에는 쌀로 가루를 만들기 위해선 1~2시간 물에 불린 후 빻는 습식제분이 필수였다. 이 과정에서 전분이 손상되어 품질이 낮아지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쌀을 불릴 때는 쌀의 양보다 다섯 배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습식제분 후 버려지는 폐수는 환경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루쌀은 밀처럼 전분이 성글게 배열되어 있어 큰 힘을 가하지 않아도 쉽게 부서진다. 이러한 물성 덕분에 물에 불려 쌀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밀처럼 바로 빻아서 가루로 만드는 건식제분이 가능한 것이다. 자연히 전분손상이 적어 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비용과 환경적인 면에서도 많은 이점이 있는 품종이다.
그동안 가공업체에서는 습식제분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동력에 대한 부담으로 쌀가루를 이용한 제품 개발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가루쌀을 이용한다면 공정과정에서의 비용과 노동력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이 향상된 고품질의 쌀 가공식품을 생산할 수 있다. 실제 가루쌀로 가공업체에서 생산한 쌀빵, 라이스칩, 쌀 카스텔라, 쌀맥주 등을 먹어본 소비자들은 기존의 쌀가루나 밀가루보다 맛이 더 뛰어나거나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가루쌀로 만든 쌀빵
가루쌀로 만든 쌀빵

논 인프라는 그대로,
쌀 공급 과잉은 해결

가루쌀로 만든 가공식품의 종류가 다양화되고 소비층이 확대된다면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쌀 공급 과잉으로 인해 해마다 쌀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농업인들의 생활 보장을 위해 쌀이 일정 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쌀을 구입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시장격리와 재고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배되는 쌀의 규모를 줄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현재의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잘 정비된 논을 없애고 쌀 생산을 줄이면 미래에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 사라진 논을 재조성하고 쌀을 생산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쌀을 가루쌀로 대체해 재배한다면 잘 조성된 논의 인프라를 유지하면서 쌀의 공급 과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밀의 수요를 일부 대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안정적으로 가루쌀을 생산할 수 있는 공급체계를 마련하고, 가공업체가 가루쌀을 활용하여 소비 가능한 제품을 개발·생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에 지난 6월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가루쌀을 이용한 가공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 가루쌀 재배 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식품·제분업계에 시료 제공, 연구개발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도 이에 발맞춰 가루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배법을 확립하고, 다수성 가루쌀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장기유통을 위한 산패억제와 가루쌀 반죽의 부품성 개선을 위한 유용 유전자들을 탐색·활용하는 등 가루쌀의 상품성 강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식량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신의 선물’이라고 불리는 가루쌀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