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하게
깨끗하게
글 ㅣ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의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설날 흰떡, 그 조촐함과 깨끗함
“깨강정 콩강정에/곶감 대추 생률이라/주준(酒樽, 술동이)에 술 들으니/돌 틈의 샘 소리/앞뒤 집 타병성(打餠聲, 떡 치는 소리)은/예도 나고 제도 난다”
- 정학유(丁學游, 1786~1855),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2월령’에서
“먹을거리 이것저것 진작에 준비해야 하느니(飮食諸品須預備)/쌀 몇 말은 떡이요 몇 말은 술이라( 餌酒米幾斗)/콩 삶아 두부요 메밀로는 만두 해야지(煮菽爲乳蕎饅頭)/장에 가 명태사고 계1) 부어 고기 장만(明魚場買肉契取)/깨강정·콩강정·곶감·대추·밤(荏豆羌 棗栗)/유밀과에 초간장까지 없는 게 없구나(油蜜醬醋靡不有)”
- 김형수(金逈洙, 19세기),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12월’에서
연말과 연시는 한 몸이다. 태양이 동지점을 통과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은 북반구에서 한 해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 곧 동지(冬至)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동짓날을 한 해의 실제 시작으로 여겼다. 천체의 운행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더구나 이때부터 농한기도 시작이다.
머슴도 소작인도 자작농도 지주도, 지역의 공동체와 조직도 중앙의 행정부도 이즈음까지는 어떻게든 결산을 마치려 애썼다.
이윽고 책력상의 1월 1일, 회계연도상의 시작점인 설날이 온다. 설날을 지나 대보름까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모두 푹 쉬려 했다.
이때를 별미 없이 지낼 수는 없다. 살림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디흰 떡 얼마쯤은 치고 뽑아야 한다.
그래야 떡국도 끓일 테다. ‘책만 읽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글쟁이 이덕무(李德懋, 1741~1793)도 설날 하면 흰떡이 제일 좋았다.
“새해의 시작에 흰떡을 쳐 만들어 썰어 떡국을 끓인다. 겨울에 추웠다 따듯했다 하는 날씨 변덕에도 상하지 않고 오래갈 뿐 아니라 그 조촐함과 깨끗함이 더욱 좋다.”2)
시작이라면, 시작은 조촐하고[凈] 깨끗함[潔]이 마땅하리라. 그런가운데 사람은 어떻게든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이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마음이자 행동이겠다.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단정함
새해 첫 상을 차리면서는 흰떡만 달랑 놓지는 않는다. 흰떡과 떡국은 기본이고 만두를 곁들이기도 했다.
여기에 밤·대추·곶감 등도 차리고 식혜와 수정과도 놓는다. 김치도 새로 했다.
나박김치쯤은 새로 담가 명절 분위기를 북돋았다. 떡국 상차림에 오르는 새 김치니까 보다 얌전하고 예뻐야 할 테다.
새 나박김치는 고춧가루로 물을 내 예쁜 분홍빛 물이 은은히 돌게 했다.
사치나 낭비가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형편껏 더 차리기도 했다.
차림이 조금 더 불어나도 떡국은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약식, 떡볶이3), 편육 등을 함께 낸다.
육전과 생선전도 곁들인다. 과일은 날것과 함께 숙과(熟果)4)를 아울러 낸다. 본격적인 과자인 약과·강정·다식 등도 곁들인다. 식혜와 수정과도 빠뜨릴 수 없다.
이런 상차림은 전체적으로 간과 양념이 세지 않다. 각각의 음식이 충분히 돋보이도록 갈래별로 한 접시씩 배선했으니, 이런 차림에서는 역시 새 나박김치 또는 장김치가 제격이다.
장김치는 배추와 무를 주재료로 하고, 소금이나 젓갈이 아니라 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물김치이다.
장김치는 채친 파·미나리·갓·석이·표고·마늘·생강에, 얇게 저민 밤과 배 따위가 어울려 우아함을 뽐낸다.
겨우내 준비할 수만 있다면 나박김치든 장김치든, 김치 한 가지라도 새로 장만해 상차림의 격을 높였다.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단정함을 생각했다. 이는 또한 다만 김장으로 다가 아닌 김치 문화의 한 장면이다.
1) 경제적인 부조, 공동구매, 친목 등을 위해 알음알이를 따라 모여 만드는 조직.
2) 자신의 시, <첨세병(添歲餠, 나이 먹게 하는 흰떡)>에 부친 말이다.
3) <그린매거진> 2023년 6월호, ‘떡볶이, 이촌향도의 좌판과 함께 떠올리기’ 참조. 당시의 떡볶이는 소고기, 고급 해산물 등과 어울린 일품 볶음요리였다.
4) 과일, 생강 등을 꿀이나 조청에 버무린 과자. 또는 건과나 과실을 익혀 다시 과실 모양을 잡은 과자.
자연스러운 격조
상차림의 마침표는 달콤한 음료이다.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은 예순다섯 생애의 설날 수정과를 돌아보며 이렇게 읊었다.
“달기는 꿀 같고 진하기는 우유 같은(甘似蜜房濃似酥)/봄 소반에 새로 낸 온통 새하얀 분으로 덮인 달디단 곶감으로 만든 수정과(春盤初進白醍醐)/해마다 새해에 한 잔씩은 했으니(曆數新年年一飮)/예순다섯 잔은 마셔 없앤 셈(飮來六十五杯無).”
한 상의 완성도에서 음료 한 잔 있고 없고가 참 다르다. 격식 있는 상차림은 제대로 만든 음료로 마침표를 찍게 마련이다.
정성껏 맛과 멋을 낸 상차림과 먹기 좋은 한 접시의 배선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은 서울경기 지역의 세시풍속을 그린 <세시풍요(歲時風謠)>에서 “떡국, 꿩고기, 달콤한 강정과 약과(湯餠雉膏甘飣果)는/금방 차려 내도 또 다시 꿀꺽(霎時供具亦堪嘗)”이라고 읊었지만 차리는 쪽에서도 한 접시씩 간결하게 차리고, 먹는 쪽에서도 한 입씩 말끔하게 먹어치우는 것이다.
이래야 차리는 쪽과 먹는 쪽 모두 예의를 차릴 수 있다.
가짓수만 많을 뿐 계통도 조리도 없는 상차림, 먹는 동안 차림새가 엉망이 되는 수밖에 없는 상차림을 굳이 떠올리며 문헌을 편다.
돈으로 다 될 것 같지만 격조는 갖는 게 아니다. 갖는다고 하면 돈 내고 사서, 훔쳐서, 빼앗아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격조는 생기는[生] 것이다. 한 사람과 공동체의 마음과 일상에 생기는 것이다.
일상의 매듭이 되는 연말은 또 다른 매듭인 연시에 이어진다.
마무리도 시작도, 마무리와 시작에 함께하는 한 상도 부디 조촐하고 깨끗하기를 희망한다. 자연스러운 격조와 함께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