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쌀로 식량안보와
쌀 수급균형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정지웅 연구관

글 ㅣ 김주희사진 ㅣ 전예영
식생활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 쌀 소비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쌀은 꾸준히 생산되면서 수급불균형이 심화되고 쌀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가루쌀을 이용해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쌀 수급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루쌀을 개발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정지웅 연구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쌀 수급불균형을 해결할
품종 개발 필요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정지웅 연구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정지웅 연구관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2000년 529만 톤에서 지난해 388만 톤으로 26.7% 줄었으며, 같은 기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93.9kg에서 56.9kg으로 39.4% 감소했다. 쌀 생산량과 1인당 쌀 소비량 모두 줄어들었지만, 생산량보다 소비량 감소가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쌀을 밥으로 이용해 왔지만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쌀 소비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쌀을 섭취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가루쌀을 개발하던 당시 참고했던 것이 바로 밀이었습니다. 쌀도 밀처럼 건식제분으로 쉽게 가루를 내어 빵, 면, 떡 등 가공식품으로 만든다면 쌀 소비를 늘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햇반 등 간편식 시장을 중심으로는 가공분야 쌀 소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보다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먼저 기존 쌀가루의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쌀가루는 멥쌀로 만들어지는데, 단단해 바로 빻기가 어려워 물에 불린 후 건조·분쇄하는 습식제분을 해야 했다.
“쌀을 그냥 빻아도 되지만 딱딱해서 에너지가 많이 들고, 충격을 받아 가루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이를 보완하려면 습식제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밀보다 2배 이상의 비용과 노동력이 들지요. 쌀을 바로 빻아 건식제분할 수 있는 쌀가루 전용 품종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쌀가루 전용 품종 개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에선 필요성에 대한 의문 섞인 말을 건넸다. 하지만 정지웅 연구관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꾸준히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2년, 세계 최초로 가루 전용 쌀 품종인 ‘수원542호’ 개발에 성공했다. ‘수원542호’는 남일벼에서 작은 힘으로 쉽게 빻을 수 있는 분질배유를 지닌 돌연변이 유전자를 탐색해 육종한 품종이다.
“‘수원524호’를 개발했지만 재배안정성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병에 강하고 수발아 발생이 낮으며 타 작물과 돌려짓기를 할 수 있는 가루쌀을 개발했습니다. 가루쌀은 높은 재배안정성뿐만 아니라 소규모 업체가 보유한 다양한 제분기로도 쉽게 쌀가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쓰는 가루쌀

가루쌀은 밀처럼 전분 구조가 둥글고 성글게 배열되어 있어 건식제분이 가능해 제분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그동안 습식제분으로 쌀가루 1톤을 만들기 위해선 물 5톤을 사용해야 했지만, 건식제분을 하면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친환경적이다.
이러한 가루쌀의 특징은 쌀 공급과잉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정부는 가루쌀의 안정적인 원료 제공을 위해 기존 가루쌀 재배 농가, 농촌진흥청과 도농업기술원의 시험포장을 활용해 가루쌀 재배면적을 지난해 25ha의 4배 수준인 100ha로 확대했다. 또한 2027년까지 가루쌀 20만 톤을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4만2,000ha 수준의 일반 벼 재배면적을 가루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쌀 공급과잉은 밥쌀 문제입니다. 쌀 소비가 줄면 벼를 재배하는 논을 줄여야 하는데, 논은 엄청난 인프라입니다.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수로도 잘 구축된 논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한번 축소하면 복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밥쌀 생산을 줄이면서 논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죠.”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논을 축소하여 쌀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미래에 우리 식량주권을 지키는 데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벼 재배를 쌀가루 전용 품종인 가루쌀로 전환한다면 논은 그대로 유지하되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루쌀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정지웅 연구관

가루쌀이 우리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식량안보를 지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가루쌀 연구 지속할 것

앞으로 가루쌀이 안정적으로 보급되기 위해선 농가와 가공업체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에 정지웅 연구관은 가루쌀을 의도적으로 이모작이 가능하도록 육성했다. 밀을 수확한 후 바로 가루쌀을 이앙할 수 있도록 설계해 농가에서 새로운 소득창출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재배한 가루쌀을 팔 곳이 있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민·관협의체를 통해 가루쌀을 재배한 농가에서도 이점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신경을 쓴 것이 생산자와 가공업체의 연계였는데요. 2019년부터 재배농가와 가공업체가 함께하는 ‘리빙랩’을 운영하여 가루쌀 생산과 쌀 가공식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제품으로 개발한 쌀빵과 쌀맥주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현재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가루쌀의 고급화, 차별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쌀로 가공식품을 만든다고 하면 묵은쌀, 수입쌀을 쓴다는 인식이 있었다. 쌀가루는 습식제분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저렴한 묵은쌀을 쓸 수밖에 없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루쌀은 햅쌀을 사용함으로써 품질이 뛰어난 가공식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농가와 가공업체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버려주셨으면 합니다. 농가에서는 가루쌀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잘 발현되도록 재배매뉴얼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공에서도 가루쌀에 맞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가루쌀도 쌀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있었다면 개발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존의 쌀과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정지웅 연구관은 가루쌀의 수량성과 재배안정성을 높이고, 기능성을 더하거나 글루텐을 대체할 수 있는 단백질 소재를 찾는 등의 연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가루쌀 품종인 ‘바로미2’가 국가정책 시행의 핵심동력으로 선택되었다는 점은 연구자로서 영광이고 그만큼 책임감도 큽니다. 가루쌀이 우리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식량안보를 지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배되고 있는 가루쌀
재배되고 있는 가루쌀
가루쌀 시험포장
가루쌀 시험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