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우리 화훼의 전성기였다. 생산액 1조 원을 돌파했고, 가파른 성장세는 화훼의 밝은 내일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우리 화훼는 거짓말처럼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잘나가던 화훼산업이 갑자기 왜, 쇠락한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권오근 연구관에게 물었다. 권오근 연구관은 개화생리학자로서 신품종 개발과 신화훼 연구 등 화훼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해온 전문가이다.
그는 화훼문화의 발전을 보기 위해서는 유럽의 화훼산업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일찍부터 화훼문화가 발달하면서 화훼산업이 함께 성장했어요.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유럽에는 대형 식물원과 정원을 만드는 게 유행처럼 퍼졌죠. 이 시기 유럽 사람들에게 꽃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생활의 일부였어요.” 유럽에서 꽃은 사교생활을 영위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품종 개발도 개인들이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주거 형태도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어서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선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왔다. 가드닝은 아직도 변함없이 유럽인들이 즐기는 취미활동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 통일벼가 개발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이자 식량 주도 농업정책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말 그대로 우리는 살 만해졌다. “국민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도 급속도로 변했어요. 이때 우리 화훼도 많은 발전이 있었죠.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어요. IMF나 미국발 금융위기 등 화훼문화가 확산하려고 하면 언제나 성장을 막는 암초를 만났죠. 이때 생긴 소비 둔화는 화훼를 사치재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화훼를 멀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죠. 이와 함께 우리의 주거문화도 화훼산업 발전에 저해요소 중 하나입니다. 화훼문화가 발달하려면 정원을 가꾸고 하는 단독주택 주거문화가 발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파트 문화가 주거문화로 자리를 잡았어요. 아파트에서 화훼를 즐기기에는 공간의 제약이 많아요. 그나마 베란다가 화훼를 즐기기 좋은데 이마저도 실내 공간을 넓히는 베란다 확장 때문에 화분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 거죠.”
주요 수출국인 일본과 중국의 정세 또한 국내 화훼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우리 화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으로 화훼산업 성장에 크게 이바지한 국가이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의 경기둔화로 일본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콜롬비아, 케냐 등 화훼 신흥국의 저가 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부패 척결 기조 아래 관료들 사이에 고급 화훼를 선물로 주고받던 관행이 금지되면서, 선물용 고급 화훼인 심비디움을 공급하던 수출 길도 막히게 되었다.
국내 내수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청탁금지법이나 조화 산업의 발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화훼시장에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는 화훼산업에 더 큰 고민을 안겼다. “졸업식 때나 행사, 승진, 개업 선물로 화환이나 화분을 사서 선물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꽃을 선물하는 문화는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죠. 특히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꽃 소비문화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난 화분이 웬만한 관공서, 기업체 정문을 통과하지 못해요. 관공서나 업체 등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우려해서 꽃 선물을 받는 것을 직원들 보호 차원에서 원천 차단해 버린 거죠. 올해 같은 경우는 코로나19 때문에 졸업식 자체를 아예 안 하니까 졸업 시즌에는 팔천 원 가까이 하던 장미 한 단 값이 지금 3천 원 정도 합니다. 이처럼 화훼산업은 예측 불가능한 외적인 환경에 아주 민감한 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