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명품귀리사업단의 손주호 대표가 귀리 농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2004년이다.
그 전까지 우리 밀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판매도 수확량도 많이 더딘 차에 귀리 육종 성과발표에 우연히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귀리의 생육 조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귀리 육종 결과를 보면서 귀리 농사가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곡물에 비해 단백질과 불포화지방, 베타글루칸과 같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2002년 타임지가 슈퍼푸드로 선정한 유일한 곡물인 데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는 만큼 서양에서 많이 먹는 귀리가 보편화될 거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귀리의 재배법이나 특성을 잘 모르는 채 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봄에 파종하면 수확량이 적기 일쑤였고, 가을에 파종하면 추위와 장마철이 수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리는 숙기가 많이 늦는 편입니다. 가을 파종은 10월~11월에 해서 다음해 6월 하순에 수확하거든요. 그런데 겨울이 너무 추우면 동사할 수 있고 장마를 만나면 습기를 흡수해서 이삭에 달린 채로 발아해버려요. 4년 전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파종한 귀리 중에 70%가 동사한 적도 있어요. 반면 봄에 파종하면 같은 면적에 씨를 뿌려도 수확량이 10% 정도 적습니다. 5월~6월에 이상고온이 오면 수확량이 가을 파종의 60%까지도 떨어져요. 이때가 이삭이 나오는 시기인데, 고온이 오면 성장이 멈춰서 알맹이가 충실하게 여물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는 귀리의 중요한 영양물질인 아베난쓰라마이드의 영향도 있었다. 아베난쓰라마이드는 현재 보고된 바로는 곡물 중에는 귀리에만 포함된 성분이다. 수분을 접하면 이를 잘 흡수해 촉촉함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어 보습 화장품에도 많이 쓰이는 성분이다. 이로 인해 수확 직전에 장마가 오면 수분을 흡수하면서 그대로 이삭이 발아하게 되는 것이다. 손주호 대표는 이렇게 몇 년간 실패를 하면서도 귀리 농사를 유지해나가며 그 나름대로의 재배법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쌀귀리와 겉귀리의 파종 시기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겉귀리는 껍질이 겹겹이 있어 겨울 추위를 견디는 힘이 커 가을 파종에 쓰고, 쌀귀리는 속껍질이 없어 추위가 가셨을 때 파종하는 식이다. 주변 농가들도 손주호 대표를 따라 귀리 농사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읍명품귀리사업단에 합류한 농가가 62농가에 이른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물이면 농가들도 처음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재배법도 모르고 수익이 보장될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소비처를 어느 정도 확보해야 농가들의 재배 확대도 가능하죠. 우리 사업단 같은 경우에는 가공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연합하면서 다양한 소비처를 확보한 상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