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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화려한 마천루로 기억되는 부산이지만, 그 풍경 너머에는 오랜 세월 땅을 일궈온 농촌의 시간이 흐른다.
여기 도심에서 점점 잊혀가는 흙의 소중함을 되살리기 위해 앞장서 온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도시농업박람회를 열어 부산 농업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농업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증명해 온 유미복 소장이다.
유미복 소장이 농업 현장에 발을 들인 지도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본래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는 그는 농업과는 거리가 먼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선친의 간곡한 권유는 유 소장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1990년 생활지도사 공채 1기에 합격하며, 그는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라 농촌진흥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부산’에서 농업 분야 일을 이어간다는 건 유 소장에게 무척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부산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공직자로서 청춘을 바쳐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첫 발령지였던 양산에서의 근무를 뒤로하고, 1995년 기장군이 부산시로 편입되던 해 그는 부산광역시 농업기술센터와 운명처럼 만났다. 이후 3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던 그는 이제 누구보다 부산 농업을 깊이 꿰뚫고 있는 베테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1990년대 농촌 현장은 남성들의 전유물과 같았기에, 장화를 신고 들녘을 누비는 여성 지도자의 등장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결혼이나 출산이 곧 퇴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렇게 얻어낸 ‘부산 여성 지소장 1호’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처음이라는 상징성을 넘어, 후배들을 위해 낯선 길을 닦아온 책임감의 증거이기도 하다.
부산은 알고 보면 숨은 ‘농업 강소도시’다. 특히 어느 지역보다 젊고 역동적이다.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는 일반적인 농촌과 달리, 이곳은 토마토를 중심으로 부모님의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특히 낙동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토양에서 자란 ‘대저 토마토’는 특유의 짭짤한 맛과 단단한 식감으로 국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다. 해마다 단일 품목으로 거두는 압도적인 매출액은 부산 농업이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기회의 땅임을 증명하고 있다. 유 소장은 부산 농업이 지닌 이 특별함을 시민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도시농업박람회’다.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 한 푼 없던 열악한 환경에서 농업인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열었던 소박한 2005년 ‘부산봄나물축제’가 그 시초였다.
“당시 시청 뒤 등대광장에 쑥과 봄나물, 꽃 같은 부산 농특산물을 한가득 싣고 나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직거래장터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라 손님이 오지 않을까 봐 밤잠을 설치기도 했죠. 하지만 예상과 달리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직원들과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싱싱한 흙냄새를 피워보겠다는 작은 실험은 지난 22년간 꾸준히 내실을 다지며 상징적인 행사로 성장해 왔다. 6회부터는 전시와 체험을 더한 ‘부산녹색생활박람회’로 거듭나며 행사의 격을 높였다. 특히 2011년에는 「도시농업법」 시행에 맞춰 국가적 지원을 이끌어내며 규모를 대폭 확장한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덕분에 오늘날 부산 도시농업박람회는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1순위 행사로 우뚝 섰다. 2년 전부터는 14만 평에 달하는 대저생태공원 유채꽃 단지로 무대를 옮겨, 치유와 경관이 어우러진 부산만의 싱그러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해마다 직원들과 함께 박람회 준비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유채꽃을 직접 심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편히 쉬어갈 잔디까지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깔았어요. 이른 봄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 있으면, 농업이 도시민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결국 박람회는 농업을 단순히 전시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도시민의 일상에 농업을 스며들게 하고 자연을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농업의 진짜 매력이죠.”
박람회를 통해 시민의 일상에 농업을 스며들게 했다면, 이제 그의 시선은 농업을 지켜온 사람들, 농부의 마음으로 향한다. 비만 오면 물이 새는 열악한 환경을 견뎌온 농민들에게 부산 농업의 자부심을 되찾아 줄 신청사를 마련해 주는 일은 유 소장이 공직 인생을 걸고 완수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었다.
“사실 대도시 부산에서 농업 관련 예산을 우선적으로 따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저는 서류 뭉치를 들고 관청을 설득하는 대신, 현장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새로 지어달라’는 하소연이 아니었어요.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농업 서비스를 제공할 거점이 왜 지금 꼭 필요한지 정면으로 설득하는 정공법을 택한 거예요. 그 진심 어린 목소리가 결국 굳게 닫혀 있던 예산의 문을 열었습니다.”
간절한 진심은 결국 통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확보한 설계비는 신청사 건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렇게 지어진 신청사는 이제 농업인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농업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됐다. 씨앗의 발아 과정을 지켜보고 현미경으로 생명의 신비를 관찰하는 홍보관부터 미래 농업을 엿볼 수 있는 스마트팜, 식물종합병원과 교육장까지. 농업의 어제와 내일을 아우르는 이 터전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농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탄탄한 기반 위에서 부산 농업은 이제 ‘치유’라는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다. 2024년 전국 최초로 시행된 치유농업 지역서비스 역시 안정적인 거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소장은 정성껏 일궈낸 이 터전이 농민에게는 자긍심을, 시민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부산 농업의 다음 백년을 이끄는 뿌리가 되기를 꿈꾼다.
부산 농업의 수많은 ‘최초’를 일궈낸 유 소장은 이제 올해 6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가 소장으로 물러났던 부산에서 딸 역시 소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게 됐으니, 이보다 더 운명적인 마침표가 있을까. 긴 여정의 끝에서 그는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떠올린다. 보물을 찾아 세상을 떠돌던 소년이 결국 처음 시작했던 자리에서 보물을 찾아냈듯, 유 소장에게도 가장 빛나는 보물은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 30년간 묵묵히 지켜온 현장 그 자체가 그에겐 보물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농촌지도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현장에서 농업인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 자체가 참 즐거웠어요. 돌이켜보면 모든 시도에서 결실을 본 건 아니지만, 쓰라린 실패든 벅찬 성공이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만든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다만 이제는 ‘농업’이라는 옷을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며 또 다른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현장에서 보물을 찾은 연금술사는 이제 캔버스 위에서 또 다른 기적을 꿈꾼다. “부산 농업이라는 거대한 화폭을 채우느라 달려온 시간을 지나, 이제는 오롯이 나를 찾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라는 유미복 소장. 비록 정든 일터는 떠나지만, 그가 일궈낸 부산 농업의 터전 곳곳에는 그의 진심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붓을 든 개척자, 유 소장의 두 번째 소설은 이제 막 첫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