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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관계를 잇는 대표적인 매개체였다.
그러나 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관행과 만남의 방식들이 점차 힘을 잃으며, 견고했던 공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거나 의식적으로 줄이려는 선택은 이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주류 소비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회식이나 모임에서 무알코올 음료를 고르는 일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술을 ‘못 마셔서’가 아니라, 정신의 명료함과 다음 날의 컨디션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잔을 내려놓는다.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술잔을 비우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 상태와 기분을 기준으로 ‘마시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는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었다.
실제로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4년 410만5천kl에서 2023년 361만9kl로 약 11.8% 감소했다. 이러한 흐름은 건강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대의 고위험 음주율은 2018년 15.9%에서 2024년 9.9%로 크게 낮아졌다. 고위험 음주는 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 7잔 이상, 여성 5잔 이상이면서 주 2회 이상 마시는 경우를 말한다.
그 결과 회식은 짧아지고, 잔은 가벼워졌다.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마셨는가’가 아니라 ‘내일이 무너지지 않는가’다. 술이 관계의 필수 조건이던 시대는 저물고,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세대가 술잔을 치운 자리에 채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숙면과 집중력, 정신적 안정 같은 컨디션을 핵심 자산으로 여기는 웰니스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음주는 즐거움 이전에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인식된다. 술에 쓰던 시간과 비용을 운동이나 취미, 학습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판단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일상에 들어온 변화도 이 흐름을 가속했다. 술자리를 대신해 OTT 콘텐츠를 즐기거나 러닝을 하고, 각자의 취미 생활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술이 사교의 전제였던 문화에서 벗어나, 맨정신으로도 충분히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만남의 방식과 시간표도 달라지고 있다. 아침에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낮에는 음악이나 취미를 함께 즐기며, 술 대신 다른 매개체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러한 흐름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바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다.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의식적으로 술을 선택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취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소버(sober)와 ‘호기심’을 뜻하는 큐리어스(curious)의 합성어로, 불필요한 음주를 줄이고 술 없이도 관계를 맺는 방식을 탐색하는 태도다. 이 개념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루비 워링턴이 2018년 출간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를 통해 대중화됐다. 소버 큐리어스는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일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사교의 문법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취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는 흐름은 시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알코올은 알코올 함량이 0.00%인 제품을, 논알코올은 극미량의 알코올을 포함하거나 무알코올 제품까지 포괄하는 개념을 가리킨다. 국내 무알코올·논알코올 시장은 최근 5년 사이 약 10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던 논알코올 음료가 이제는 선택의 전면으로 나온 것이다. 전 세계 70~80종의 논알코올 음료를 한데 모은 전용 편집숍이 등장할 만큼, 독립된 취향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주종 선호도 또한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도수가 높은 소주 대신 저도수 주류와 탄산수를 섞어 가볍게 즐기는 ‘하이볼’의 음용률이 급증했다. 또 술을 완전히 끊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술과 논알코올 음료를 섞어 마시는 ‘지브라 스트라이핑(Zebra Striping)’ 방식 또한 새로운 음주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논알코올 음료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의 대안’이 아니라, 술을 마실 수 있어도 스스로 선택하는 ‘취향’이 됐다. 이에 따라 시장의 무게 중심도 이동 중이다. ‘얼마나 더 취하게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더 건강한 즐거움을 제안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