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26 Vol.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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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대신 흙을 권하다
마음 건강의 새로운
대안
‘치유농업’

초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우울과 불안의 확산 등으로 기존 의료·복지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치유농업은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회복을 돕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한편, 발달장애인과 치매 고위험군, 직무 스트레스 고위험군 등
대상별 맞춤형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며 현장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수인 ㆍ 도움 농촌자원과 임은성 농촌지도사





치닫는 불안을 멈춰 세우는 힘, 초록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우리 사회는 지금 복합적인 건강 위기에 직면했다. 2025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서며 공식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정신건강에도 선명한 적신호가 켜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5년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약 2,440만 건으로 5년 전보다 36.7% 급증했다. 세대별 지표를 살펴보면 위기의 양상은 더욱 뚜렷하다. 특히 소아·청소년층의 증가 폭이 눈에 띈다. 0~9세는 156.8%, 10~19세는 127.4% 늘었으며, 30대(74.7%)와 20대(55.9%)가 그 뒤를 이었다. 학업과 취업, 경제 활동, 대인관계 등 일상 전반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전 세대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년층은 경제적 결핍과 사회적 고립, 심리적 불안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60세 이상의 항우울제 처방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며, 최근 5년간 21.3% 증가했다. 높은 자살률과 빈곤율, 낮은 건강수명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다. 외로움과 무력감이 신체 질환과 맞물리며 노년의 삶을 깊게 파고들고 있다.

문제는 기존 의료 시스템만으로 이 거대한 수요를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농촌진흥청과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7.3%가 ‘치유농업이 정신건강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기대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과 교감하며 일상에서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치유농업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뿌리 내리고 있다.

치유농장 드림뜰힐링팜에서 어르신들이 나만의 화분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치유농업, 삶을 회복하는 또 하나의 방식

치유농업은 식물과 동물, 농촌 환경 등 다양한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인간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증진하는 활동이자 산업이다. 단순히 일회성 체험에 머물지 않고, 농작업과 자연 속 활동을 통해 참여자의 신체와 정서, 나아가 사회적 관계까지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 과정에서 치유농업은 개인의 건강 증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정신건강 개선과 신체 활동 증진으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농촌에는 새로운 소득원과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즉, ‘국민의 건강’과 ‘농업·농촌의 미래’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치유농업이 활용하는 자원 또한 폭넓다. 작물 재배와 수확 같은 농작업은 물론, 곤충과 동물을 돌보는 활동, 농촌 경관과 자연환경 체험, 음식과 문화 활동까지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다각적인 활동은 참여자의 감각을 일깨우고, 무너진 일상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핵심 매개가 된다.

대상 역시 특정 집단에 국한하지 않는다. 유아부터 노인까지 건강 관리를 돕는 ‘예방형’은 물론, 우울과 불안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나 중독·고립 상태에 놓인 이들을 위한 ‘특수 목적형’까지 폭넓게 포괄한다. 목적에 따라 세분화된 프로그램은 참여자의 상황에 맞춰 맞춤형으로 운영된다.

또한, 치유농업은 개별 농가를 기반으로 한 농장형을 시작으로 지역 공동체가 참여하는 ‘마을형’, 병원이나 복지기관과 연계한 ‘기관형’ 모델로 확장 중이다. 최근에는 보건·복지·재활 영역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전문적인 사회 서비스로서의 가능성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주관적 감상을 넘어 숫자로 증명하는 ‘치유의 과학’

최근 치유농업의 효과가 정밀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국립정신건강센터와 함께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경우 기존 약물 치료에 치유농업을 병행했을 때 음성 증상이 10% 더 감소했고, 우울 고위험군은 우울감이 30% 줄어들었다. 만성질환자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28% 감소했으며, 치매안심센터 어르신의 우울감은 무려 68.3% 낮아지는 등 전 세대와 질환을 아우르는 뚜렷한 개선 효과가 확인되었다.

특히 농촌진흥청이 1,400여 건의 연구를 분석해 마련한 ‘치유농업 표준 평가 기준’은 2025년 10월 국제학술지 『액타 사이콜로지카(Acta Psychologica)』에 게재되며 세계적인 공신력을 확보했다. 이제 치유농업은 주관적인 감상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국제 표준에 따라 측정하고 관리하는 엄연한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나아가 치유농업은 전문적인 ‘재활’ 도구로도 진화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023년 뇌졸중 후 편측마비(신체 한쪽 마비) 환자의 후유장애 완화를 위해 개발한 ‘재활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앉아서 물주기, 서서 수확하기, 호미로 고랑 만들기, 삽으로 흙 채우기 등 농업 동작 7종을 체계화하여 환자의 근력과 보행 속도를 높이고, 균형 및 운동 조절의 핵심인 ‘고유 수용성 감각’ 향상을 이끌어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산학협력지원사업을 통해 전국 4개 권역(충청·전라·경상·제주)의 요양병원 6곳과 치유농장 13곳에서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재활 치유농업’ 실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참여자의 근육 건강도는 28.9% 개선되었고, 신체 수행 기능은 25.6%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자발적으로 참여한 환자들에게서 더욱 유의미한 근육 향상이 관찰됐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쓰지 못할 줄 알았던 손발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자신감을 되찾았다.”라며 정서적 회복의 기쁨을 전했다.

시설 운영자와 치유농업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8%가 향후 프로그램 운영을 적극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역사회 연결과 농장 수익 증대 등을 주요 이점으로 꼽았다. 이번 실증은 노인, 아동, 만성질환자 중심이었던 기존 치유농업의 범위를 전문 재활 분야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재활 특화 프로그램의 보급은 현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치유농업의 전문성을 한 단계 높이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
그리고 그 안에서 맺어지는 따뜻한 관계가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국가가 관리하는 ‘치유 서비스’

치유농업은 이제 제도적 안착을 넘어 하나의 공적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2021년 3월 시행된 「치유농업법」은 농업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의 법적 기틀을 세웠고, 이어지는 5개년 종합계획은 정책적 지원의 폭을 넓히는 동력이 되었다. 최근 도입한 ‘우수 치유농업시설 인증제’는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담보하고 이용자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농촌진흥청은 시설 여건과 운영 역량을 면밀히 평가하고자 ▲시설·장비 등 운영 기반 ▲전문 인력 확보 ▲운영 체계의 적정성 ▲프로그램 구성 및 효과 검증 등 총 38개 항목을 점검했다. 특히 필수 요건 검토와 정량 평가를 엄격히 병행하여,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시설만을 선별해 신뢰도를 높였다.

그 결과 수도권 24개소, 충청권 22개소, 호남권 16개소 등 전국 권역에서 총 91개 시설이 최종 적합 판정을 받았다.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인증 시설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번 인증은 치유농업이 단순 체험을 넘어 보건·복지 서비스와 연계된 전문 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효과 측정,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을 국가가 관리하는 검증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표준화된 서비스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올해를 ‘치유농업 산업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1급 치유농업사 제도를 도입하고, 국가 차원의 확산 거점을 구축하는 것은 단순한 외연 확장을 넘어 자생적인 산업 생태계 조성을 의미한다. 이제 농업은 의료, 복지, 교육을 아우르는 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생산을 넘어 ‘돌봄’으로 확장된 농업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경제적·사회적 기회를 창출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농촌을 넘어 도시로 확장되는 치유

치유농업은 더 이상 농촌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곳곳에 치유농업센터가 들어서며 시민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스마트 온실과 도심 속 실내 치유 공간은 계절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을 호흡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치유농업은 공간의 제약을 넘어 도시민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대상의 경계 또한 빠르게 허물어지는 추세다. 노인과 장애인뿐만 아니라 학업에 지친 청년,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 등 마음의 돌봄이 필요한 모든 계층이 농업의 품을 찾는다. 특히 학교와 병원, 복지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프로그램은 일회성 체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적 돌봄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치유농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회복은 반드시 병원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 그리고 그 안에서 맺어지는 따뜻한 관계가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효율과 속도만을 쫓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느리지만 본질적인 회복의 가치에 주목해야 할 때다. 치유농업은 바로 그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Vol.249
2026년 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