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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에도 암수가 있다’는 말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꽃의 구조에서 시작해 시금치와 아스파라거스,
연근까지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채소에도 미처 몰랐던 차이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채소의 암수를 이해하려면 먼저 꽃의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를 ‘양성화(자웅동화)’라고 하며, 이 경우 하나의 꽃 안에서 수분과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어 스스로 번식이 가능하다.
반면 암술과 수술이 서로 다른 꽃에 나뉘어 있는 경우를 ‘단성화’라고 한다. 단성화는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의 개체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 ‘자웅동주’, 그리고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개체에서 피는 ‘자웅이주’가 그것이다. 은행 나무는 대표적인 자웅이주 식물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채소 중에도 자웅동주와 자웅이주 식물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이, 호박, 수박 등은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따로 피지만, 한 개체 안에 함께 존재하는 자웅동주 식물이다. 농사나 원예에서 흔히 “암꽃이 달린다”, “수꽃이 먼저 핀다”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열매채소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암수 개체가 완전히 구분되는 자웅이주 채소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금치와 아스파라거스를 들 수 있다. 이들 식물은 암그루와 수그루가 분리되어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우리가 식용으로 이용하는 부위에 따라 그 차이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시금치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1~2년생 자웅이주 식물로, 암시금치와 수시금치가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시금치의 꽃이 피기 전 어린잎을 식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암수에 따른 차이를 일상에서 뚜렷하게 인식하기는 어렵다. 시금치는 떡잎이 나온 뒤 본잎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암수가 결정되며, 꽃이 피는 시기에 이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암그루에는 작은 꽃이 하나씩 달리는 반면, 수그루는 줄기 끝에 이삭처럼 여러 개의 꽃이 모여 핀다. 또한, 암그루에만 열매가 맺힌다. 따라서 우리가 시금치를 섭취할 때는 특별히 구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암수 개체를 함께 섭취하게 되는 셈이다.
아스파라거스 역시 시금치와 마찬가지로 암그루와 수그루가 분리된 자웅이주 식물이다. 암그루는 붉은 열매를 맺지만, 수그루는 열매를 형성하지 않는다. 특히 수그루는 암그루보다 더 많은 새순을 생산하는 특성이 있어, 재배 현장에서는 수그루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이나 소비 단계에서는 암아스파라거스와 수아스파라거스를 따로 구분하지 않으며, 우리가 먹을 때도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이처럼 자웅이주 채소는 생물학적으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식용 부위와 소비 방식에 따라 그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암수가 구분되는 채소 가운데, 시금치나 아스파라거스와 달리 소비자가 그 차이를 비교적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다. 바로 연근이다. 연근은 이름과 달리 연꽃의 ‘뿌리’가 아니라 물속에서 자라는 ‘지하줄기(근경)’에 해당한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소화 기능을 돕는 것은 물론, 해독 작용과 항산화 효과 등 다양한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식용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연근은 생김새에 따라 크게 수연근과 암연근으로 나뉜다. 가늘고 길쭉한 형태를 띠는 것이 수연근이고, 마디가 짧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통통한 모양을 가진 것이 암연근이다. 이러한 외형적 차이는 식감과 조리 적합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요리에 따라 알맞은 연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암연근은 조직이 비교적 연하고 수분이 많아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을 지닌다. 은은한 단맛도 느껴져 간장 조림이나 찜 요리처럼 양념이 잘 배어드는 조리에 특히 잘 어울린다. 반면 수연근은 섬유질이 치밀하고 단단해 씹을수록 아삭한 식감이 돋보인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튀김이나 전, 혹은 샐러드처럼 식감이 살아 있어야 하는 요리에 활용하면 더욱 좋은 맛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