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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참외를 두고 “쪼개면 금빛 씨가 흩어지고(刳分金子散)/ 길쭉길쭉 썰면 그 속살이 꿀처럼 달콤해(條折蜜肌濃)”라고 읊었다. 이응희는 참외에 앞서 수박을 노래하며 “삼키면 달기가 꿀과 같아(呑來甘似蜜)/ 답답한 가슴 씻어 내리고도 남겠네(嬴得滌煩胸)”라고 했다. 그러고는 참외의 품격이 수박의 품격과 같다고 했다.1) 200년쯤 뒤의 사람 이재의(李載毅, 1772∼1839)는 『감과절구(甘瓜絶句)』에서 ‘참외에 부친 절구’라는 제목의 시를 이렇게 읊었다.
“아침에 따 한낮을 지나며 꼭지가 마를 판이라(朝摘經晡蔕欲乾)/ 막 샘에 씻어 내니 찬 기운 서린다(新泉洗出露凝寒)/ 소반 가득 올려 두니 푸른 옥인 듯 청신하여(盈盤碧玉淸如許)/ 답답한 이 가슴 이 열기를 씻겠네(掃却煩胷熱氣干)”
또한 고려 사람 이규보(1169~1241)는 선물 받은 참외 앞에서 “속은 많고 씨는 적고 엿처럼 달구나(多瓤少瓣味如飴)”2) 하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강직하기로 유명한 이색(李穡, 1328~1396)도 선물로 들어온 참외에다 “푸른 옥 같은 참외(碧玉甘瓜)”3)라는 상찬을 남겼다. 예부터 참외는 사람을 기쁘게 했다. 소담하고 푸근하고 주고받을 만한 선물 노릇까지 했다.
참외. 학명은 Cucumis melo L.이다. 또 다른 학명은 Cucumis melo var. makuwa Makino이다. 영어 이름은 오리엔탈 멜론(Oriental melon) 또는 코리안 멜론(Korean melon)이다. 그 기원지는 어디일까? 이설이 구구하다. 아득한 인도 또는 중국 대륙 어디에선가 참외 재배종의 먼먼 조상이 나타났고, 그 가운데 한 갈래는 유럽 쪽으로 가서 멜론으로, 한 갈래는 중국 대륙 이동으로 가서 참외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참외는 20세기로 건너와서도 한반도의 인기 작물이었다. 일본인이 조선 견문기인 『조선만화(朝鮮漫畵)』4)의 한 대목을 보자.
“조선인이 연중 가장 즐겨 먹고 무섭게 먹어대는 것은 참외이다. … 길을 걸으면서도 먹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먹는다. 참외는 시중 어디서나 판다. 조선인은 여름에 참외로 살아가는 것이다.”
참외. 덩굴식물 가운데 으뜸 작물이었다. 그래서 ‘참’ 자가 붙었고, 한자로 쓰자니 진과(眞瓜)였다. 달다는 뜻으로는 감과(甘瓜), 첨과(甛瓜), 첨과(甜苽)라고 했다. ‘푸른 옥(碧玉)’에 견준 묘사는 무엇일까? 이제는 참외하면 노랑이지만, 한때는 말도 못하게 다양했다. 1920년대만 해도 겉이 얼룩덜룩한 개구리참외, 노란 꾀꼬리참외, 검은 먹통참외, 속 빨간 감참외, 더 빨간 별자감참외, 몸통 긴 술통참외, 배꼽 나온 배꼽참외, 몸통 둥근 수박참외가 여름철 시장을 수놓았다. 들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노란 쥐방울참외(쥐똥참외)가 자랐다. ‘왜사과’로 불린 일본산 신품종도 그때 이미 유통을 시작했다.5)
당연히 참외는 옛 책에 자주 등장한다. 전순의(全循義)6)의 『산가요록(山家要錄)』은 채소 가운데 참외·수박·동아· 박·토란· 아욱·가지·순무·무·갓·생강·마늘·파·염교·부추·버섯7)·상추·근대·미나리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싣고 있다. 이때 참외가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더구나 참외를 한자로 그냥 ‘과(瓜)’, 한 글자로 썼다. 참외를 덩굴식물의 대표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씨앗도 가려 받았다. 이 책은 참외 씨를 받겠다면 뿌리에서 가까운 덩굴에서도 가장 먼저 달린 열매를 따, 그 열매 가운데에서도 한가운데 자리한 씨앗만 가려 받으라고 했다. 또는 정말 맛있는 참외를 맛보았다면, 그 씨를 발라, 겨에 섞어 볕에 말린 다음, 키에 까불려 깨끗이 간수하도록 했다.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속 ‘치포(治圃, 밭농사)’ 항목은 참외의 한자어 표제어를 ‘첨과(甜苽)’로 잡고 논의를 시작한다. 파종할 때는 소금물에 종자를 씻도록 했다. 참외는 이미 옛날부터 종자소독을 당부할 만한 작물이었다. 당시의 “참외에는 종류가 많은데 껍질과 과육이 청록색인 종, 혹은 금박 찍은 무늬가 있는 종, 혹은 개구리 무늬가 있는 종, 크기가 작은 것 등이 좋은 품종(甜苽多類, 而以皮肉青綠, 或有金章, 或有蛙文, 軆少者為佳品)”으로 예시되었다. 파종 뒤, 모종을 내는 시기는 입하(立夏, 양력 5월 5일경) 3~4일 전으로 기록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만학지(晩學志)’에 ‘라류(蓏類, 초본식물의 열매 항목)’를 설정하고, 그 첫 작물로 참외를 다루었다. 이 책은 참외의 한자어를 ‘첨과(甛瓜)’로 잡았다. 그 내용은 여기서 다 다룰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그저 품종만 살펴보면, 먼저 『증보산림경제』의 이본을 인용하여 청색 또는 백색 또는 황색
줄무늬의 세 가지 품종을 기록했다. 서유구의 견문으로는 능금과 비슷한 모양의 ‘사과과(沙果瓜)’ 및 흰 능금처럼 겉과 속이 모두 흰 ‘백단과(白檀瓜)’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제 노랑 말고 다른 빛깔의 참외를 떠올릴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변화는 한순간에 왔다. 1957년 일본 품종 ‘은천(銀泉, ギンセン)’이 도입되었다. 노랑 바탕에 흰줄이 가 있고, 재래종에 견주어 수확 시기가 빠른 데다 당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노지 재배용 품종이었다.
1970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은천참외의 상업 재배를 시작했다. 이윽고 1975년 중앙종묘가 시설원예에 유리한 ‘신은천’을 내놓았고, 1985년 흥농종묘가 ‘금싸라기은천’을 선보였다. 금싸라기은천은 시설원예 및 유통의 적합성과 당도와 아삭한 식감 등에서 한걸음 더 나간 종자였다. 금싸라기은천은 현대 한국 참외밭의 거의 모든 품종의 뿌리이기도 하다. 예컨대 2003년 농우바이오가 내놓은 오복꿀참외 또한 그 뿌리는 금싸라기은천이다. 참사랑꿀, 부자꿀, 꿀사랑, 스마트꿀 등 ‘꿀’ 동아리는 다시 오복꿀참외의 뒤를 이어갔다.
한국이 참외에서 이렇게 치고나가는 동안 일본은 멜론에 집중하느라 참외를 잃어버렸다. 이제 예쁜 타원형에, 쨍한 노랑이 감도는 고품질 참외는 온 지구를 통틀어 그냥 한국산이 제일이다. 영어명 코리안 멜론은 어느새 오리엔탈 멜론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현대 참외의 노랑 물결은 하우스에 덮이면서는 그 경관을 백색 물결로 한 번 더 바꾸었다. 4~5월경 모종을 심어 7월 이후 거두는 한여름 참외의 경관은 거의 없다. 오늘날 참외는 11~1월쯤 모종을 심어, 해를 넘겨 시설에서 2월부터 수확에 들어간다. ‘백색혁명’의 사례를 찾는다면 한반도의 참외 시설원예를 보라고 말하겠다. 이는 요컨대 면면한 한반도 참외
연대기와 참외 농사의 감수성을 아우른 농업인과 국가가 함께 이룬 업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해오던 참외의 생물다양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은천도 시설원예도 없던 시절의 자료를 펼쳐놓고, 개구리참외, 감참외, 열골참외, 깐치참외, 먹참외, 청참외 등의 이름만이라도 되새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 앞에서 옛 품종이 참외의 내일을 여는 기획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 01 | 『옥담시집(玉潭詩集)』, ‘옥담사집(玉潭私集)’의 ‘만물편(萬物篇)’, ‘소채류(蔬菜類)’ 참조 |
| 02 |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제14권 참조 |
| 03 |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4권 참조 |
| 04 | 우스다 잔운(薄田斬雲) 글, 도리고에 세이키(鳥越靜岐) 그림, 일한서방(日韓書房), 1908년 |
| 05 | 『별건곤(別乾坤)』, 1928년 제14호, ‘참외로맨스’ |
| 06 | 나고 죽은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 세종~세조대에 걸쳐 중앙에서 의관으로 일했다. |
| 07 | 전근대의 지식 체계에서는 버섯이 채소, 나물 동아리에 들어가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