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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관광이 하루 둘러보고 돌아오는 당일 여행에서 며칠간 머물며 일과 휴식을 함께 누리는 체류형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원격근무형 농촌공간조성 시범사업을 통해 농촌을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체류형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농촌관광의 새로운 흐름과 현장 사례를 살펴본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머무느냐’의 시대다. 팬데믹은 사람들에게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재택 근무와 원격 회의가 일상이 되면서 ‘일은 꼭 도시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약해졌고, 자연 속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려는 수요가 빠르게 커졌다. 붐비는 명소 대신 한적한 농촌을 찾고, 하루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신 며칠씩 머물며 쉬는 체류형 여행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도시의 피로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농촌이 새로운 회복의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실시한 ‘2024 농촌관광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국민의 농촌관광 경험률은 43.8%로 나타났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35.2%)보다 8.6%나 높아진 수치다. 더 주목할 지점은 당일형 농촌관광이 2022년 평균 1.9회에서 2024년 1.3회로 감소한 반면, 숙박형 관광은 같은 기간 0.5회에서 0.7회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농촌을 ‘잠깐 들르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는 공간’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관광 패턴의 변화가 아니다. 체류 시간의 증가는 곧 지역 내 소비 증가와 연결된다. 실제 숙박형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은 17만 5,944원으로 당일형(7만 9,693원)의 두 배를 넘었다. 먹거리, 숙박, 교통, 지역 특산물 소비가 함께 늘어나면서 농촌관광은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농촌을 찾는 이유다. 방문 동기의 절반 이상인 54.0%가 ‘일상 탈출과 휴식·치유’를 꼽았다. 유흥이나 단순 체험보다 ‘쉼’이 압도적 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이는 현대인의 피로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끊임없는 디지털 소음, 장시간 노동, 도시의 밀집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조용한 자연과 느린 시간을 회복 수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농촌은 더 이상 생산 중심의 공간이 아니다. 도시가 제공하지 못하는 정신적 안정과 여유를 제공하는 회복의 공간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관광 활동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농촌지역 맛집 방문(47.1%), 농촌 체험활동(31.1%), 농·특산물 직거래(28.4%), 둘레길 걷기(24.0%) 등이 대표 활동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풍경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음식과 생활 방식을 직접 경험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동행 형태 역시 변했다. 가족·친지와 함께 방문한 비율은 증가했고, 친구·연인 중심 여행은 감소했다. 농촌관광이 개인 소비형 여행에서 가족 단위 체류형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농촌은 이제 잠시 쉬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의 균형을 되찾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관광 흐름으로 보지 않았다. 농촌 공간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농촌진흥청은 2024년부터 ‘원격근무형 농촌공간조성기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농촌에서도 업무와 휴식이 가능하도록 숙박 공간, 업무 공간, 체험·치유 프로그램을 함께 갖추는 사업이다. 코로나19 이후 확대된 비대면·저밀도 관광 수요에 대응해 도시민이 농촌에서도 일과 휴식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농촌을 단순 체험 공간이 아니라 원격근무와 장기 체류가 가능한 생활형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이 사업의 핵심은 기존 농촌관광과 결이 다르다. 기존 농촌체험마을이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짧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면, 워케이션 사업은 개인과 소규모 가족 단위 방문객이 장기간 머물며 농촌의 생활 리듬을 경험하도록 설계됐다. 단순한 관광 콘텐츠 공급이 아니라 머무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4년 첫 시범사업에서는 강원 횡성·동해, 충북 옥천, 충남 부여, 전북 정읍, 전남 완도, 경북 포항 등 전국 7개 사업장이 선정됐다. 마을당 7,000만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됐으며, 국비와 지방비를 절반씩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각 지역은 저마다의 농촌 자원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워케이션 모델을 구축했다.
강원 동해 만우체험마을은 기존 체험장을 가족형·치유형 공간으로 전환했고, 충남 부여 부여기와마을은 농촌 체험과 치유 프로그램을 원격근무 환경과 결합했다. 전북 정읍 황토현권역영농조합법인은 역사 체험과 지역 먹거리를 연결한 체류형 모델을 구축했고, 충북 옥천 향수뜰농촌체험휴양마을은 교통 이점과 자연경관을 앞세워 도시민 친화형 워케이션을 표방하고 있다.
장기 숙박이 가능한 워케이션 공간을 조성한 강원 횡성 산채마을은 가장 대표적인 체류형 모델로 평가받는다.
2025년 시범사업에는 강원 홍천·양양, 충북 옥천, 충남 서산, 전북 남원, 전남 나주 등 6개 사업장이 추가 선정되며 워케이션 거점이 확대됐다. 2024년과 마찬가지로 마을당 7,000만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농촌진흥청은 단순 예산 지원에 그치지 않고 담당 공무원 대상 현장 설명회, 사업 참여자 대상 워크숍, 중간 평가회를 잇달아 열며 현장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운영 모델을 구체화해 나갔다.
워케이션 이용자들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원 홍천 태극마을 영농조합법인은 쾌적한 업무 공간과 치유 쉼터를 결합해 참여자 만족도 100%를 기록했으며, 음식, 숙박, 자연경관, 체험 프로그램 전 항목에서 고른 호평을 받았다.
강원 양양 수동골마을은 바다와 계곡, 솔밭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숙박, 식당, 체험, 힐링 공간을 통합 운영하며, 농촌에서 일과 휴식을 함께 누리는 ‘농(農)케이션’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충북 옥천 시골살이농촌체험휴양마을은 사업 전 70%이던 이용 만족도가 사업 후 85%로 올랐다. 방문객 수는 줄었지만 개인별 체류 시간은 오히려 늘었는데, 이는 양적 확대보다 공간의 질적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충남 서산 초록꿈틀마을은 기존 시설을 소규모 워케이션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외부 휴식 공간을 개선한 후 주말 가동률 90%를 기록했다. 전북 남원 솔바람마을은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을 분리하고 홈페이지를 정비해 방문객 유치 기반을 다졌다. 전남 나주 에코왕곡체험휴양마을은 족욕 체험 등 힐링 콘텐츠와 가족 단위 프로그램을 결합하며 농촌 공간의 다기능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사례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관광 활성화가 아니다. 농촌이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 쉬는 공간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 농촌 정책이 생산성과 소득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관계와 체류,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촌 워케이션 사업은 농촌이 처한 구조적 위기와 정면으로 맞닿아 있다. 농촌 인구 비중은 1970년 57.8%에서 현재 18.8%까지 감소했고, 고령화율은 31.5%에 달한다. 인구감소지역은 전국 89곳에 이른다. 생산 중심의 기존 농촌 모델만으로는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이 주목하는 것은 ‘관계인구’다. 관계인구란 이주하지는 않지만 지역을 반복적으로 방문하고 소비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2024년 농촌관광 참여자의 32.3%가 농촌지역 관계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농촌과 지속적인 연결을 이어간다. 농촌이 일회성 방문지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연결되는 생활 공간으로 바뀌고 있음이 분명하다.
워케이션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현재 농촌 워케이션의 인지도는 29.6%이며, 실제 이용 경험은 0.7%에 불과하다. 그러나 향후 이용 의향은 17.5%에 달하고, 특히 20대의 관심이 높게 나타났다. 인지도와 이용 경험 사이의 간극이 잠재 수요를 가늠케 한다. 물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안정적인 디지털 인프라, 표준화된 숙박·업무 환경, 주민과 방문객 사이의 지속 가능한 관계 형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농촌은 이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삶과 일, 휴식이 공존하는 생활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농촌 워케이션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도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머물고, 일하고, 지역과 관계 맺는 경험은 앞으로 농촌관광의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