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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명 중 하나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를 버텨온 작은 생명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미래 식량의 대표주자로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어쩌면 그 질긴 생명력 때문인지 모른다.
김선영 연구사는 그 작은 생명들의 가능성과 강인함을 연구하며,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미래 식량의 기준을 하나씩 증명해가고 있다.
식용곤충은 흔히 ‘미래 식량’으로 불린다. 하지만 인류가 곤충을 먹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다. 선사시대부터 곤충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아시아와 아메리카 문명에서도 식용곤충 문화가 이어져 왔다. 이후 농경과 목축 문화가 자리 잡으며 서구권을 중심으로 곤충은 ‘식량’보다 ‘해충’의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최근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문제가 커지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식용곤충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갖춘 완전단백질이다. 불포화지방산과 철분, 아연 등 미네랄이 풍부하며, 장 건강 개선에 도움을 주는 키틴 성분과 항산화·항비만 등의 기능성까지 갖추며 미래형 기능성 식품 소재로도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의학과에서 생리학을 전공한 김선영 연구사가 산업곤충 연구에 뛰어든 것도 바로 이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오며 그녀를 더 깊이 사로잡은 것은 곤충의 생명력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거저리 같은’이란 말을 듣는다면 저는 그 말이 꼭 욕처럼 들리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살아남아 다시 움직이고, 끝내 버텨내는 힘이 있거든요.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연구사의 연구 태도 역시 곤충의 생명력과 강인함을 닮아 있다.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다시 실험하고, 막히면 다른 길을 찾고, 실패를 반복하며 결국 답을 찾아간다. 특히 곤충 식품 안전성 연구는 아직 정답이 충분히 쌓여 있지 않은 분야이기에 버티고 견디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메뚜기나 번데기처럼 오랜 식경험이 있는 곤충은 비교적 심사 과정이 짧지만, 풀무치나 아메리카왕거저리 같은 새로운 식용곤충은 처음부터 영양성과 안전성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 과정은 지도 없는 땅에 하나씩 길을 내는 일과 같았다.
그 시기 김 연구사 곁에 오래 머문 책이 바로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이었다.
“식용곤충을 새로운 식품 원료로 등록하기 위해 엄격한 안전성 심사를 거쳐야 했어요. 새로운 소재이다 보니 검증의 강도가 정말 높았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는데, 그때 동료의 추천으로 『회복탄력성』을 읽게 됐어요.”
책은 반복되는 보완과 지연을 실패가 아닌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위한 과정으로 바라보게 했다. 연구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는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더 단단한 연구를 위한 축적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녀가 유난히 애정을 갖는 연구는 ‘풀무치’ 식품원료 등록 과정이다. 풀무치는 사육 기술 면에서는 메뚜기와 닮은 점이 있었지만, 식품원료로 인정받는 과정은 전혀 달랐다. 메뚜기는 오랜 식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식품공전에 등재된 사례가 있었지만, 풀무치는 국내에서 참고할 만한 선례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영양성과 안전성을 하나하나 증명해야 했다. 성분 분석과 위해성 평가는 마쳤지만 심사는 쉽지 않았다. 보완 요구가 다섯 차례 이어지며 심사 기간만 9개월 가까이 걸렸다.
승인을 기다리던 농가들의 기대도 컸다. 사육 표준화 기술을 이전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농가들, 그리고 연구를 믿고 버텨온 현장의 시선은 연구자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그녀를 붙들어준 문장은 『회복탄력성』 속 한 구절이었다.
“역경을 대하는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회복탄력성의 핵심이다.”
김 연구사는 보완자료가 다시 돌아오거나 추가 설명을 요구받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이 과정을 통과하면, 우리 K-곤충의 안전성은 그만큼 더 철저하게 증명되는 거다.”
실제로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이후 그녀가 풀무치 독성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한 해외 논문은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관련 안전성 검토 문헌에도 인용됐다. 국내에서 시작한 연구가 국제 무대에서도 안전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김 연구사에게 그 순간은 길고 고단했던 시간이 결국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김선영 연구사가 반복되는 보완과 실험을 견디는 이유는 결국 하나, 바로 ‘안전성 확보’다. 아무리 영양성과 환경적 가치가 뛰어나도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면 산업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식용곤충의 사육과 가공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엄격하다. 국내 식용곤충은 실내 사육을 원칙으로 하며, 먹이원과 제품의 유해물질을 철저히 관리한다. 가공 전에는 절식을 통해 장을 비우는 과정도 거치는 등 안전성 확보를 위한 관리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시행착오 속에서 뜻밖의 성과도 나왔다.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 연구 당시 높은 지방 함량 때문에 독성시험용 분말 제조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한 탈지 공정이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단백질 농도는 높아지고 항산화 효능도 최대 3.6배 증가한 것이다. 실패를 해결하려던 과정이 새로운 기능성 가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실패가 꼭 실패로 끝나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날의 발견은 말 그대로 ‘유레카!’였습니다.”
안전성이 ‘먹어도 되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라면, 표준화는 ‘어디서 생산해도 같은 품질과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식용곤충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안전성 입증을 넘어 사육, 먹이원, 건조, 가공까지 전 과정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김 연구사의 다음 연구가 표준화로 향하는 이유다. 현재 그녀는 곤충 먹이원 표준화와 사육 기술 고도화, 수출 인증 기반 구축을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먹이원 표준화 연구는 식용곤충 산업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다.
“서울에서 산 과자와 제주에서 산 과자의 맛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식용곤충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하더라도 일정한 품질과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해요.”
김 연구사는 발육과 영양 효율이 좋고 안전성이 확보된 먹이원을 선발하고, 이를 실제 사육 현장에서 검증해 나가고자 한다.
그다음 목표는 검증된 먹이원을 전국 농가에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사육 기술과 품질의 표준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권역별 곤충사료 전용 공장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을 농림축산식품부에 건의하는 것이 그녀가 그리는 방향이다. 연구실에서 확인한 가능성이 농가 현장에서 재현되고, 지역마다 일정한 품질의 식용곤충이 생산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녀가 꿈꾸는 미래는 식용곤충이 단순한 대체식품을 넘어 고령친화식품, 환자식, 기능성 소재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안전성’이 있다.
작고 낯선 생명체의 가능성을 믿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기준을 하나씩 세워가는 일. 김선영 연구사는 오늘도 묵묵하고 끈질기게 미래 식량의 길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