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6 Vol.251

July 2026 Vol.251
그린 Next > 인터뷰

1765삽교, 농촌
워케이션의 시간을
새로 쓰다

천천히 머물수록
보이는 농촌의
일상과 회복의 감각

일하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1765삽교는 그 물음에 꾸밈없이 답한다.
농촌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내어주는 이 공간에서 도시의 속도에 지친 이들이 발견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라 오래 잊고 살았던 자신만의 쉼이라고.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김슬기 사무장을 만났다.

최해진 ㆍ 사진 이준우 ㆍ 추천 및 검토 기술지원과 박동진 농업연구관, 농촌환경안전과 김경희 농업연구관

김슬기 1765삽교 사무장

농촌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

어느 오후, 한 방문객이 단풍나무 아래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시킨 일도, 정해진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그저 색이 고운 단풍잎을 하나씩 주워 담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낙엽이 천천히 흔들렸고, 그 역시 그 속도에 맞춰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농촌 복합문화공간 ‘1765삽교’를 운영하는 김슬기 사무장은 그 장면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희가 준비한 어떤 체험보다 그런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아요. 농촌을 관광지처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잠시라도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거든요.”

도시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농촌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계절과 날씨, 해가 뜨고 지는 순서에 맞춰 하루가 이어진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자리한 1765삽교는 짧게 소비하고 떠나는 여행 대신 오래 머물며 잊고 지내던 삶의 감각을 되찾아 보라고 권한다. 무엇을 체험했느냐보다 어떻게 머물렀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곳. 이곳에서 농촌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1765삽교의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농어촌건설운동을 계기로 삽교1리 중장년 주민 17가구가 뜻을 모아 영농조합법인 ‘산채마을’을 설립했다. 당시 주민들은 산나물 재배와 판매를 중심으로 도시민 대상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봄이면 산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토마토를 따고, 가을이면 수확 체험이 이어졌다. 한때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로 이름을 알릴 만큼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마을의 시간을 단번에 멈춰 세웠다. 방문객이 끊기고 체험이 사라졌다. 북적이던 공간에 2년의 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산채마을은 멈추는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더 많은 체험객을 모으는 것이 답일까. 농촌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도시 사람들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농촌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공간이 지금의 1765삽교다. ‘1765삽교’라는 이름은 조선 영조 시기인 1765년, 이 마을에 은거했던 안석경 선생의 호 ‘삽교’에서 가져왔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마을에 오래 이어져 온 시간과 자연의 가치를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그저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농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기도 했다.

오래 머물수록 보이는 농촌의 풍경

1765삽교가 주목한 것은 체험보다 머무름이었다. 짧은 일정 안에 프로그램을 채워 넣기보다, 며칠간 천천히 체류하며 농촌의 시간을 경험해 보길 바랐다.

“농촌체험마을을 오래 운영하면서 늘 아쉬웠던 게 있었어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시야도 넓어지거든요. 그래야 계절에 따라 산의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 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해요.”

김슬기 사무장의 말처럼 계절의 변화도, 흙의 냄새도, 농촌 사람들의 삶도 하루 이틀 사이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농촌의 매력은 화려한 장면보다 반복되는 일상의 결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마침 횡성군농업기술센터의 체류형 원격근무 조성 시범사업 공모가 났다. 김 사무장이 고민하던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사업 선정 이후 지원을 받아 숙소와 업무 공간이 마련되면서, 1765삽교는 본격적인 농촌 워케이션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곳은 일반적인 공유 오피스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카페와 숙소, 텃밭과 산책로, 계곡과 목장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져 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업무 화면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푸른 하늘이다. 자연을 풍경 삼아 일하다 보면, 일과 쉼의 경계가 조금씩 느슨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워케이션 참가자 대부분이 전용 오피스보다 카페 공간을 더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굳이 농촌까지 와서 다시 사무실 같은 분위기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일반 공유 오피스처럼 꾸몄어요. 그런데 이용자분들이 카페를 훨씬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서는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사무장은 이후 딱딱한 책걸상 대신 빈백과 이불을 들여놓으며 공간의 분위기를 다시 바꿨다. 효율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긴장을 조금 풀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1765삽교의 워케이션 공간은 일반 공유 오피스처럼 업무 효율만을 앞세우기보다, 농촌의 풍경 속에서 집중과 휴식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카페 공간에서는 노트북 작업이 가능하고, 숙소와 텃밭, 산책로가 가까이 이어져 있어 일하는 중간중간 짧은 산책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농촌의 방식

1765삽교에는 화려한 체험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대신 비어 있는 시간이 남겨져 있다. 누군가는 목장에서 닭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해 저녁을 준비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을 천천히 걷거나 겨울 숲에서 토끼와 노루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1765삽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공간에 가깝다.

지난해 가을 조성된 작은 목장에도 그런 운영 철학이 담겨 있다. 목장에는 토종닭과 실키닭 50여 마리가 방목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참가자들은 주변의 풀을 뜯어 닭에게 건네며 자연스럽게 동물과 교감한다. 함께 키우던 메추리들은 어느 날 하나둘 울타리 밖 숲으로 사라졌다. 김 사무장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모습 자체가 목장의 매력”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내년에는 목장 규모를 조금 더 넓히고 염소와 오리도 새 식구로 들일 예정이다. 이곳에서 동물은 단순한 체험 요소가 아니다. 농촌의 일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존재에 가깝다.

워케이션이 자리 잡으면서 마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던 워케이션 운영이 점차 주민들의 일상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역 농산물이 조식 식탁에 오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주민들의 시선이었다. 외부 방문객들이 마을의 자연환경과 농산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며 주민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필요한 것을 스스로 길러내기

농촌은 더 많은 인프라와 더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선 속에서, 농촌이 본래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은 종종 낡은 것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1765삽교를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느린 리듬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농촌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농촌다운 삶을 함께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해요. 농촌은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먹을 것을 기르고 나누는 삶의 방식이 이어지는 공간이거든요. 농촌 워케이션이 그런 만남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1765삽교가 내세우는 ‘원써클 자연농장’에도 그러한 농촌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농장에서 나온 잡초와 파과는 목장 동물의 먹이가 되고, 다시 퇴비가 되어 밭으로 돌아간다. 카페와 숙소 곳곳에 놓인 소품 역시 버려진 팔레트를 재활용해 직접 만든 것이다. 김슬기 사무장은 이를 거창한 친환경 실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래 농촌에 존재하던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농촌은 원래 자급자족과 순환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공간이었어요. 필요한 것을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었어요. 오랜 농촌의 지혜를 현대적 방식으로 다시 실천하려는 거예요. 외부 자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농장과 목장, 마을에 존재하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낭비하지 않으려는 거죠.”

삶의 리듬을 회복하다

숙소 뒤편 비닐하우스 네 동에는 방울토마토와 상추, 고추, 바질, 가지, 쑥갓이 자란다.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머무는 동안 직접 채소를 수확해 식탁에 올린다. 카페 브런치 메뉴이자 숙박객에게 조식으로 제공되는 샐러드와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채소도 이곳에서 기른 것이다. 샐러드 소스로 사용하는 호박 식초 역시 농장에서 수확한 호박으로 직접 담근다.

브런치 메뉴는 가능한 한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든다. 햄 가공품은 인근 설성목장에서 들여오고 떡은 지역 방앗간에서 받아온다. 메뉴판에는 재료의 원산지가 하나하나 적혀 있다. 누가 어떤 재료를 길렀고,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음식을 생산 과정과 분리한 채 소비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밭과 식탁 사이의 거리가 매우 짧다.

“방문객들은 농촌에서 식재료가 길러지고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세요. 지역 농산물을 바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만족도가 높아요.”

이곳의 식사는 단순히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1765삽교에서 보내는 느린 하루가 오래 잊고 있던 삶의 속도를 조용히 되돌려 놓는다.




Vol.251
2026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