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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기 쉬운 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익숙함에 가려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원료를 다시 들여다보고,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는 기술을 더한다.
국립식량과학원 푸드테크소재과 이성현 농업연구관의 연구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출발한다.
최근 삼채와 양파껍질을 활용한 ‘세계 최초 고령친화식품 산업화 기술’로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그는 성과보다 먼저 ‘사람’을 이야기했다.
이번 연구는 삼채와 양파껍질을 활용해 혈당 조절과 면역 개선에 도움을 주는 고령친화식품을 산업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스마트팜과 업사이클링 기술을 접목해 생산 안정성은 높이고, 버려지던 부산물은 새로운 식품 소재로 전환했다. 연구 성과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장과 소비자의 일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성현 농업연구관은 이 성과를 개인의 역량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오랜 시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온 이들의 축적된 노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연구 10년 차에 휴직한 이후 다시 연구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동료 및 선후배 연구자들, 소속의 경계를 넘어 연구 공간을 나눠준 동료들, 조직개편이라는 낯선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에 집중해 준 연구실 식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연구자의 하루를 조용히 받쳐온 현장의 배려와 가족의 기다림 역시 그가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이성현 농업연구관이 떠올린 장면들은 특별한 순간이라기보다 소소한 일상의 기억에 가깝다. 매일 아침 연구소를 정리하고 청소해 주던 손길,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출입구를 미리 살펴 불편 없이 오갈 수 있게 해주던 배려, 늦은 시간까지 연구자들을 위해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 주던 이들까지. 그는 연구를 장거리 경주에 비유하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서 찾았다.
이성현 농업연구관이 삼채와 양파껍질에 주목하게 된 출발점은 현장에서 마주한 소박한 질문들이었다. 삼채는 기능성은 뛰어나지만 재배와 활용이 제한적이었고, 양파껍질은 매일 대량으로 버려지지만 유효 성분은 오히려 알맹이보다 풍부했다. 그는 이 차이에서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읽어냈다.
삼채 연구에서는 스마트팜 기술을 접목해 연중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뿌리 중심으로 소비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광 환경에 적합한 ‘잎’의 활용 가능성을 넓혔다. 양파껍질 연구 역시 기능성 검증에 그치지 않고, 원료 확보와 세척, 표준화 등 산업화에 필요한 조건을 하나씩 점검했다. 그가 하는 연구는 숫자와 데이터로 설명되지만, 그 끝에는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조금 더 건강해지길 바라는 진심이 놓여 있다. 이러한 노력은 ‘국민체감 사회문제해결 12선’에 선정되는 결실로도 이어졌다.
이성현 농업연구관은 연구 여정에 깊은 울림을 준 책으로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꼽았다. 작품 속 사람들은 평생 자신을 구원할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지만, 끝내 그 인물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이웃을 돌보던 마을 주민 어니스트가 어느새 큰 바위 얼굴을 닮아 있었다.
그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관계’에서 읽어냈다. 삶의 완성은 먼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 곁을 지키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속에 놓여 있다는 깨달음이다.
“제게 큰 바위 얼굴은 단 한 사람의 위인이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얼굴들 그 자체입니다.”
그가 말하는 ‘큰 바위 얼굴’은 거창한 상징이 아니라, 매일을 함께 나누는 존재들이다. 화려한 성공에 매몰되기보다 소중한 인연과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하루를 채워가는 방식이 결국 자신을 지탱해 온 힘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철학은 연구를 대하는 태도와도 궤를 같이한다. 좋은 연구 소재와 목적 역시 멀리서 찾지 않는다. 동료와 이웃,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살피며 그들의 갈증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 연구가 실현된다는 믿음이다.
그가 두 번째로 소개한 책은 『딸아, 너는 나의 보석이란다』(세리 로즈 세퍼드)이다. 이 책은 사람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중받고 따뜻하게 돌봄 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이성현 농업연구관은 책이 건네는 다정한 메시지 속에서 자신의 연구가 향해야 할 방향을 발견했다.
한때 그는 수술실과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꿈꿨으나, 이제는 식탁과 일상에 더 가까운 자리에서 사람을 돕는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병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아프기 전의 예방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자생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로 안전한 식품 소재를 개발해 몸의 기초를 다지는 일은 삶을 지키는 또 다른 방식이다.
『큰 바위 얼굴』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일러주었다면, 이 책은 그의 연구가 가닿아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그는 병이 깊어지기 전에 미리 건강을 살펴주고, 삶이 흔들리기 전에 곁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연구자로 남기를 소망한다. 단순히 생체 수치를 개선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보듬는 연구, 그것이 이성현 농업연구관이 방대한 데이터 너머 끝내 도달하고 싶은 최종 목적지다.
이성현 농업연구관은 고령자와 갱년기,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처럼 병명으로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지만 삶의 질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문제에 주목해 왔다. 이러한 건강 문제는 개인을 넘어 가족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먹거리를 통한 예방과 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음식이 몸을 거쳐 마음까지 닿는 만큼, 식품 연구에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신념도 확고다.
그는 향후 연구에서도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할 계획이다. 우리 농산물을 기반으로 삼을 것, 과학적으로 철저히 검증할 것, 그리고 국민의 삶 속으로 실제 스며들 수 있게 할 것이다. 연구가 논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차 한 잔, 음식 한 그릇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과 소비자를 잇는 세심한 과정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위대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나를 키우고 버티게 하는 것들에 감사하며 함께 쌓아온 시간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것, 대단한 것을 좇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장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에게 연구란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가장 성실한 과정이다. 작고 소박한 농산물과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건강하고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