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26 Vol.246

February 2026 Vol.246

그린 Life > 살아보는 농촌

경상북도 구미시의 지도를 펼쳐 가장 북쪽 끝으로 손가락을 옮기면 나타나는 곳, 무을면.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 덕분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숲의 색과 바람의 결이 가장 먼저 변하는 고요한 마을에 5년 전,
활기찬 기운을 품은 젊은 부부가 찾아들었다.
캠핑을 좋아해 자연 속을 누비던 ‘행진부부’가 낡은 시골집을 고쳐가며 뿌리를 내린 무을면의 사계절은 도시의 시간보다 훨씬 진하고 깊게 흐른다.

박수인 ㆍ 사진제공 행진부부

텐트 너머로 동경하던 숲이 앞마당이 되기까지

행진부부에게 자연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주말마다 텐트와 장비를 챙겨 자연 속으로 떠나던 두 사람은 막연하게나마 ‘나이 들면 조용한 시골에서 살자’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중 5년 전, 어머니와 합가를 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파트보다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이 컸던 어머니의 마음과 부부의 추진력이 만나 귀촌은 급물살을 탔다.

직장이 구미 시내에 있었기에 부부는 출퇴근이 가능한 ‘1시간 거리’라는 현실적인 기준을 세웠다. 김천, 고령, 상주, 성주까지 인근 시골 마을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공인중개사의 블로그에서 마주한 사진 한 장이 부부의 마음을 붙들었다. 구미 북쪽 끝 무을면에 위치한 정겨운 시골집. 부부는 홀린 듯 “바로 이 집이다”라고 외쳤고, 이튿날 집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겁내거나 주저하기보다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이 더 컸던, 행진부부다운 선택이었다.

남편이 구워준 스테이크는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 완벽!

속도에 쫓기던 삶에서 밀도를 채우는 삶으로

도시의 삶이 ‘속도’에 맞춰져 있다면, 무을면의 삶은 ‘밀도’에 집중한다. 아내의 시간은 주로 텃밭에서 흐른다.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에게 손바닥만 한 텃밭은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고추, 가지, 쌈 채소는 기본이고 감자와 마늘, 쪽파, 그리고 향긋한 바질까지 직접 키워 식탁에 올린다. 냉이가 고개를 내미는 이른 봄이면 바구니와 호미 하나를 들고 들판을 누비는 것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즐거움이다.

남편은 집안의 해결사로 거듭났다. 아파트 살 때는 몰랐던 ‘내 집 고치기’의 재미에 푹 빠졌다. 낡은 문을 수리하고,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뚝딱거리며 만드는 시간은 남편에게 가장 몰입도 높은 놀이가 되었다. 도시였다면 퇴근 후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곳에서는 가족과 함께 요리하고 계절마다 바뀌는 시골길을 산책하며 온전한 여유를 누린다. 배달 음식이 오지 않는 불편함은 오히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하루의 속도가 느려지자, 관계의 깊이도 달라졌다. 귀촌한 이후 부부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유일한 의지처가 되었다. 도시에서는 타인의 눈치를 보고 다른 집과 우리 집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조급해했다면, 이곳에서는 오로지 ‘우리’의 리듬에 집중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시간이 쌓이면서 삶의 밀도는 자연스럽게 관계의 깊이로 이어졌다.

아파트 살 땐 몰랐던
내 집 고치기의 매력에 푹 빠진 남편

비오는 날 우비 하나씩 챙겨 입고서
마늘종을 뽑은 행진부부

낭만이라는 포장지를 벗긴 후 마주하는 치열한 현실

물론 시골 생활이 매 순간 달콤한 것은 아니다. 귀촌은 ‘감성’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아주 치열한 ‘현실’이 드러난다. 관리비만 내면 웬만한 건 해결되는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모든 것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갈라진 콘크리트를 메우고, 벗겨진 페인트를 다시 칠하며, 예기치 못한 누수와 싸워야 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어느 정도 ‘셀프 보수’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시골집은 그저 돈 드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더 큰 복병은 여름의 불청객, 벌레들이다. 방충망 안쪽까지 날파리가 가득 들어차는 광경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벌레와의 전쟁을 겪으며 부부는 깨달았다. 시골살이란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불편함까지 껴안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을 공동텃밭에서 여름, 가을 내내 먹을 채소들을 돌보는 중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사랑방이 된 부부의 집

마을의 유일한 40대 부부였던 이들에게 처음부터 따뜻한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년도 못 넘기고 나갈 것”이라는 어르신들의 뼈 있는 농담은 이들이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었다. 하지만 극 ‘E’ 성향의 부부는 주저앉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쳐드리고, 일손이 필요한 곳에 먼저 달려가 손을 보탰다.

진심은 통했다. 이제는 어머니와 동갑내기인 이웃 이모님, 그리고 뒷집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맛있는 요리를 하면 서로 나누고,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문을 두드린다. 어느덧 부부의 집은 동네 어르신들이 오가며 커피 한 잔을 나누는 따뜻한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무리하지 않아서 오래 간다 행진부부의 지속 가능한 귀촌

행진부부는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늘 현실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귀촌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직장을 내려놓는 희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지 않더라도 시골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두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에서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시골이나 조용한 주택을 선택하는 방식도 삶의 안정성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기반을 단번에 바꾸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농촌으로 한 발씩 다가가는 접근이야말로, 지치지 않고 시골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또한 귀촌 생활은 개인의 생활 방식과 성향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잦은 모임, 외식과 배달 음식, 편리한 문화생활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시골 생활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가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대신, 스스로 하루를 채울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곳이 농촌이기 때문이다. 손이 가는 일을 귀찮아 하거나, 느린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성향이라면 조금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시골살이는 때로 외로울 만큼 사람이 적고 조용한 생활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농촌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기 힘든 깊은 만족을 선물한다.

“귀촌은 막연한 로망이 아니라,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 현실적인 삶이에요. 하지만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아갈 줄 안다면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충만한 삶을 만날 수 있죠.”느리지만 확실하게, 행진부부는 오늘도 무을면의 흙길 위에서 자신들만의 속도로 행복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귀촌은 때로 외로울 만큼 사람이 적고 조용한 생활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농촌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기 힘든 깊은 만족을 선물한다.




Vol.246
2026년 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