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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여름철에 병을 앓곤 했다. 무더위에 시달려 야위고 지치는 상태를 면치 못하다, 첫가을에 무가 나온 뒤에야 위의 기능이 점차 되살아나며 병도 나았다. 그 때문에 나도 무나물이 보이면 송시열 생각이 나서 무나물부터 먼저 먹는다(英甫1)暑月善病. 蒸熱困惱, 未免瘦憊. 初秋蘿葍生後, 胃氣漸生, 病仍蘇差. 故余亦對蘿葍菜, 則輒思英甫而先喫).”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문집인 『동춘당집(同春堂集)』 속 한 대목이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둘 다 평생 동지로서, 근엄한 유학자였고 강골의 정치가로 조선 후기 성리학과 정치를 주도했다. 그 둘이 이렇게들 무를 좋아하고 무나물을 잘 먹었다. 예부터 한반도의 무에는 상하귀천이 없었다. 모든 이의 밥상에서 친구처럼 편안하고 반가운 먹을거리였다.
무는 한반도 곳곳에서 사철 난다. 한국인 누구나 한 해 내내 무를 먹을 수 있다. 5~6월에 씨뿌림하는 봄무, 7~8월에 씨뿌림하는 고랭지 여름무, 8~9월에 씨뿌림해 김장 무렵에 거두는 가을무, 11~12월에 씨뿌림해 월동하는 제주 겨울무가 계절과 계절을 잇는다.
무는 형제자매도 많다. 무 가운데 어린 무가 열무이고, 뿌리가 작고 무청이 긴 무가 총각무이다. 여느 총각무보다 뿌리가 굵고 끝이 뾰족하며 한여름에 거두는 총각무는 따로 초롱무(초록무)라고 한다. 단무지무2)는 8월 중순 이후 씨뿌림하여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한다. 김밥과 자장면을 떠올리면 단무지무 농업 또한 새삼스럽다.
계절을 이으며 무는 동치미, 무김치, 섞박지, 깍두기, 나박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무짠지, 무밥, 시래기밥, 무시루떡, 무부침개, 무만두, 무선3), 무구이, 무조림, 무찜, 무정과, 무나물, 무생채, 무장아찌, 무말랭이, 시래기, 무엿, 무조청, 무조청조림, 뭇국, 단무지 등으로 몸을 바꾸어 한국인의 부엌과 밥상을 수놓는다.
다시 소고기뭇국, 콩나물뭇국, 북어뭇국, 김치뭇국, 고등어무조림이며 온갖 국탕과 찌개와 매운탕과 찜을 떠올린다. 무 빼고 될 일이 아니다. 무가 없으면 맛도 없다. 진작부터 그랬다. 그래서 조선 시인 김려(金鑢, 1766~1821)는 무를 이렇게 노래했다.
“무는 사철 내내 먹기 좋아(蔓菁食四時)/채소류 가운데 으뜸이라(菜族爲宗祖).”4)
무를 가리키는 말과 그 표기 또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무’만 하더라도 한글이 쓰인 이래 ‘무’, ‘’, ‘무우’, ‘댓무’, ‘댄무우’, ‘단무우’ 등의 말이 남아 전해온다. 오늘날의 표준어와 표기는 ‘무’이다. 하지만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무우’, ‘무수’, ‘무시’, ‘무이’, ‘미우’, ‘무꾸’, ‘무끼’ 같은 말도 여전하다. 한문 기록 속에는 ‘노복(蘆菔)’, ‘노복(蘆萉)’, ‘내복(萊菔)’, ‘나복(籮蔔)’, ‘나복(蘿葍)’, ‘청근(菁根)’ 등으로 썼다. 여기 견주어 순무는 ‘무청(蕪菁)’, ‘만청(蔓菁)’ 등으로 썼다. 예컨대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는 ‘무’의 기본 어휘를 ‘나복(蘿葍)’으로 잡되 또 다른 말로 ‘채복(菜菔)’과 ‘노복(蘆菔)’을 덧붙였다. 한글로는 ‘무우’로 썼다. 그 내용도 재미나다. 『산림경제」는 중국 농업 고전을 인용해 무가 사철 채소임을 강조했다. 겨우내 먹기 좋다고도 했다. 나아가 조선의 무 농법은 이렇게 써 남겼다.
“2월에 움 속에 저장한 무를 꺼내 기름진 땅에 심었다가 5~6월이 오면 종자를 받는다 (二月, 取窖中所藏之根, 種於肥地, 至五六月收子).”5)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문집인 『동춘당집(同春堂集)』 속 한 대목이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둘 다 평생 동지로서, 근엄한 유학자였고 강골의 정치가로 조선 후기 성리학과 정치를 주도했다. 그 둘이 이렇게들 무를 좋아하고 무나물을 잘 먹었다. 예부터 한반도의 무에는 상하귀천이 없었다. 모든 이의 밥상에서 친구처럼 편안하고 반가운 먹을거리였다.
겨울을 이긴 건강한 무에서 무씨를 받는 모습이 생생하다. 저장과 종자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산갓김치(山芥沈菜)는 저민 무, 무순, 파의 흰 줄기(白蔥)와 함께 담그면 아린 맛을 줄이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또는 무를 이른 아침에 구워 먹으면 배가 고프지도 춥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큰 도막으로 구워 먹는 무구이나, 저민 무를 한 번 찐 다음 반죽을 입혀 지지는 무부침개가 오늘날에도 한반도 곳곳에서 또 미식가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다. 어디 구황에 그칠까. 불기 닿은 무는 멋진 별미가 되고도 남는다.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도 이어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는 무 음식과 그 조리법이 보다 상세하다. 예컨대 이 책의 「치선(治膳, 음식 만들기)」 꼭지에 묶인 ‘채소제품(菜蔬諸品, 여러 가지 채소 음식)’에는 다음과 같이 무를 주재료로 하는 음식 네 가지가 나온다.
넷 다 오늘날에도 먹고 있는 음식이고, 활용하면 보다 화려하게 또 매력적으로 연출할 여지가 있는 조리법을 품고 있다. 그 관능 표현 또한 그저 지나치기 아깝다. ‘나복황아저’를 읽어보면 이렇다.
“정월에 움에 저장한 무를 꺼내고, 무순은 싹둑 자르고 무와 파는 총총 채쳐 김치를 담가 먹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문득 봄기운이 솟게 한다(正月, 取土窖中所藏根, 剪下黃芽並飛削蘿葍根生蔥, 作淡菹食之, 令人頓生春意).”
읽다 보니 그야말로 문득 봄기운이 내게 온 듯하다. 한 항목 읽는 사이에 봄기운이 피어난다. 아득한 예부터 먹어온 무에 이런 내력이 담겨 있다. 무가 소화제라는 인식도, 흔하되 정말 맛난 먹을거리라는 감각도 문헌 곳곳에 당연히 있다. 있는데, 다시 볼 데가 더 있다. 말하자면 저 관능 표현부터, 오늘날 다시 새겨 다시 배울 만하다. 되살려 써먹을 만하다.
| 01 | ‘영보(英甫)’는 송시열의 자(字). 자는 성년을 지나 본이름 대신 쓰는 이름이다. |
| 02 | 무는 생김새에 따라 둥근무, 열무, 총각무, 단무지무 등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형태가 달라서 자연스레 저마다 다른 이름을 얻었지만 생물학 분류 체계 안에서는 모두 무에 속한다. 분류 체계로 보면 무, 순무는 십자화과(배추과)에 속하며 무의 학명은 ‘Raphanus sativus’, 순무는 ‘Brassica rapa subsp. rapa’이다. 무와 순무에 모두 ‘무’자가 붙지만 그 종과 속은 완전히 다르다. 배추는 ‘Brassica rapa subsp. pekinensis’로 순무와 동일한 종에 속하되 아종(subspecies) 관계를 이룬다. 재배 과정에서 인간이 특정 부위를 선별육종한 결과 배추와 순무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무, 순무와 함께 뿌리채소 동아리를 이루는 당근(홍당무)은 미나리과 당근속으로 학명은 ‘Daucus carota subsp. sativus’이다. 요약하면 무는 십자화과 무속, 순무는 십자화과 배추속, 배추는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무와 순무는 종이 다르다. 배추와 순무가 같은 종이다. |
| 03 | ‘선(膳)’은 채소에 소를 채운 찜 요리이다. ‘오이선’이 대표적이다. 호박, 가지, 배추, 무로도 한다. |
| 04 | 김려,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 원문의 어휘는 순무를 뜻하는 ‘만청(蔓菁)’으로 쓰였다. 하지만 시 전체와 이 시구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무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무와 순무를 둘러싼 분류 체계는 예전이나 오늘날에나 난삽하기 이를 데 없는 지식의 세계일 테다. |
| 05 | 여기 나오는 월령은 모두 음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