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26 Vol.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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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Next > 인터뷰

농업과학이
설계한 보리,
명인이 완성하다
혈당 관리의 새로운 곡물 ‘베타헬스’

최근 ‘저당’과 ‘혈당 관리’가 전 세대를 관통하는 건강 화두로 부상하면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곡물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혈당 조절을 돕는 베타글루칸 함량을 극대화하고, 농가의 재배 안정성까지 획기적으로 강화한 기능성 보리 신품종 ‘베타헬스’를 선보였다.
이 품종을 육성한 국립식량과학원 맥류작물과 박진천 농업연구사와 전남 함평에서 자연순환 농법으로 베타헬스를 일궈내고 있는 오가닉팜 오관수 대표를 만나 기능성 보리가 그려갈 우리 농업의 내일을 들여다봤다.

박수인 ㆍ 사진 김정호





기능성과 재배 안정성을 모두 갖춘 보리 ‘베타헬스’

보리는 한때 우리 민족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보릿고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보리는 점차 식탁의 변두리로 밀려났고, 젊은 세대에게는 가끔 별미로 먹는 잡곡 정도로 인식돼 왔다. 그러다가 최근 혈당 관리와 건강한 식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리가 지닌 기능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핵심 성분이 바로 ‘베타글루칸’이다. 식이섬유의 일종인 베타글루칸은 식후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막아주고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보리의 이러한 장점에 주목해 기능성 품종 개발에 매진해 왔다. 그 연구의 결실로 탄생한 품종이 바로 ‘베타헬스’다. 기존의 고함량 베타글루칸 품종인 ‘베타원’의 강점을 계승하면서도 농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재배 안정성을 대폭 보완했다. 기존 기능성 보리는 영양학적 가치는 뛰어났으나,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익는 시기가 늦어 농가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기에는 까다로운 측면이 있었다.

박진천 농업연구사 “베타원은 기능성 면에서 훌륭한 품종이 었지만,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수확 시기가 늦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농가 재배 확대에 한계가 있었죠. 베타헬스는 이러한 재배 안정성을 크게 개선하면서 기능성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품종입니다.”

베타헬스의 베타글루칸 함량은 14.2%로, 일반 보리(4~6%)의 두 배 이상이자 베타원보다도 약 2% 높은 수치다. 빠르게 소화되는 급소화성 전분 함량(41%)은 낮다. 반대로 체내 소화 효소에 분해되지 않는 난소화성(저항) 전분 함량(55.7%)은 높다. 쌀(19.7%)·밀(24.2%)과 비교하면 식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를 예방하는 데 유리한 구조다. 여기에 수확량도 10a당 511kg으로 일반 보리와 큰 차이가 없다. 베타원이 10a당 413kg대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연구실을 넘어 들판으로, 현장에서 증명된 가능성

새로운 품종의 가치는 연구실 데이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농가에서 안정적으로 재배되고, 생산성과 시장성까지 확인될 때 비로소 그 잠재력은 현실이 된다. 전남 함평의 오가닉팜은 베타헬스 실증 재배가 처음 시작된 농가다. 베타헬스가 추위에 다소 약한 품종인 만큼, 기후가 온화하고 대단위 보리 재배 기반이 갖춰진 함평이 첫 실증지로 낙점된 것이다.

오관수 대표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베타글루칸 함량이 월등한 신품종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단번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이미 아이쿱생협과 끈끈한 계약재배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건강 기능성을 갖춘 신품종 도입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특히 혈당 관리에 특화된 보리라는 점이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오관수 대표는 1978년부터 흙을 일궈온 베테랑 농업인이다. 1993년 오리농법을 도입하며 친환경 농업의 첫발을 뗐고, 2008년에는 나비골월송친환경영농법인을 설립해 지역 친환경 농업의 체계화를 이끌었다. 2022년 ‘전라남도 유기농 명인 제30호’로 선정될 만큼 그는 유기농업에 깊은 진심을 쏟아왔다. 농사 경험이 풍부한 명인에게도 새로운 품종으로 전환하는 일은 매번 공을 들여야 하는 신중한 결정이다. 하지만 오관수 대표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건강한 먹거리를 향한 신념을 이정표 삼아, ‘베타헬스’라는 새로운 도전에 다시 한번 몸을 실었다.

2024년 실증 재배로 현장 적응성을 확인한 오가닉팜은 이듬해 재배 규모를 대폭 늘렸다. 현재 함평과 무안 일대 약 50ha 면적에서 보리를 재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4.5ha를 베타헬스 단지로 조성했다. 전체 재배 면적의 대부분을 신품종으로 전환한 셈인데, 베타헬스를 향한 농가의 굳건한 신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고기능성 품종이면서도 일반 보리에 뒤지지 않는 수량성은 베타헬스의 독보적인 강점이다. 대개 기능성을 강화하면 수량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베타헬스는 일반 품종 수준의 수량을 확보해 이러한 우려를 씻어냈다. 농가가 수익성에 대한 부담 없이 재배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가닉팜 오관수 대표와 부인 서금숙 씨, 가업을 잇는 아들 오경진(왼쪽)씨가 직접 수확한 베타헬스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땅의 힘을 키우는 농사, 유기농이 만든 신뢰

오가닉팜의 베타헬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경축순환농법을 바탕으로 한 유기농 재배다. 오관수 대표는 직접 기른 한우의 우분에 고초균을 뿌리고 미네랄이 풍부한 심층수를 더해 친환경 숙성 퇴비를 만든다.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땅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방식이다.

오관수 대표 “유기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심입니다. 땅이 건강해야 그 대지 위에서 자란 농산물도 건강합니다. 저희는 논에서 얻은 볏짚을 소에게 먹이고, 그 소가 남긴 분뇨를 발효시켜 다시 논으로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땅을 살려야 소비자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진짜 먹거리가 나옵니다.”

그에게 유기농은 단순한 재배 방식의 선택이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건강해지는 ‘윤리적 생산’과 ‘윤리적 소비’의 실천이다. 토양을 살리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과정까지 포함한 농사 방식이며, 그 결실은 결국 소비자의 건강으로 돌아온다. 관행 농법보다 품이 훨씬 많이 들지만, 오관수 대표는 이 수고로움이야말로 우리 농업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 믿는다.

이러한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은 베타헬스가 지향하는 고기능성 가치와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혈당 조절’이라는 과학적 근거와 ‘유기농’이라는 윤리적 신뢰의 결합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보리쌀을 넘어, 기능성 곡물 시장을 열다

현재 베타헬스는 도정한 보리쌀 형태로 아이쿱생협 자연드림 매장과 온라인몰, 오가닉팜 자체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다. 아직 품종명이 대중에게 생소한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기능성에 매료된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반 보리 특유의 거친 느낌 없이 식감이 부드러운 데다, 밥을 지으면 나타나는 은은한 노란빛이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더해준다는 평가다.

박진천 농업연구사 “베타헬스가 단순히 기존 보리를 대신하는 것을 넘어, 젊은 층도 즐겨 찾는 건강하고 친숙한 곡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혈당 관리나 건강식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베타헬스의 시장성은 충분합니다. 혼반용(잡곡밥용) 잡곡에 머물지 않고 즉석밥, 시리얼, 건강 간편식 등 다양한 가공식품의 원료로 활용된다면 기능성 곡물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현장에서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오관수 대표의 아들 오경진 씨가 후계농으로 합류하며 온라인 마케팅과 홍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오가닉팜은 단순히 원물을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젊은 세대의 취향을 고려한 곡물칩이나 시리얼 등 다양한 가공식품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베타헬스의 공급망 또한 전남과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함평을 기점으로 제주, 진도, 신안 등 주요 거점의 재배지를 확보하며 안정적인 물량 공급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에는 재배 면적을 더욱 넓혀 촘촘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계획이다.

보리의 귀환, 식탁의 중심으로

오관수 대표는 평생 흙을 지켜온 농업인의 책임감으로, 박진천 농업연구사는 혁신적인 품종을 현장에 안착시키려는 연구자의 사명감으로 베타헬스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발아한 종자가 농부의 손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여정의 이면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이들의 견고한 연대가 자리한다.

이제는 건강을 고려한 소비가 일상이 되었고, 곡물 하나를 선택 할 때도 기능성과 생산 과정을 꼼꼼히 살피는 시대다.

베타헬스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보리가 다시 우리 식탁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기능성 곡물의 진정한 미래는 실험실을 넘어 현장의 대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함평의 들판에서는 보리의 화려한 귀환이 조금씩 현실로 영글어가고 있다.




Vol.248
2026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