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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의 초원으로 여겨졌던 몽골 땅에서 한국 농업기술이 마침내 벼 수확에 성공했다.
40년 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도전이지만, 한국 농업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2014년 문을 연 KOPIA 몽골 센터는 종자 보급, 작물 재배 기술, 축산 생산성 향상 등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2025년, 몽골 역사상 처음으로 벼 수확에 성공하며 ‘K-농업기술’의 저력을 세계에 증명했다.
몽골에서 농사를 짓는 일은 쉽지 않다. 여름은 길어야 세 달, 밤낮의 기온 차는 크고 강한 바람이 초원을 휩쓴다. 여기에 알칼리성 토양까지 더해져 작물 재배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이 때문에 몽골 농업은 오랫동안 축산 중심 구조에 머물러 왔다. 농업 생산의 약 86%가 축산에 집중돼 있고, 곡물 생산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몽골 정부와 한국이 손을 잡았다.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 KOPIA(KOrea Partnership for Innovation of Agriculture)가 바로 그 중심이다. KOPIA 몽골 센터는 2013년 몽골 식량농업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2014년 수도 울란바토르에 문을 열었다. 센터는 몽골의 기후와 토양 조건을 고려한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며, 작물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 축산 기술, 농업 기계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몽골에서는 식생활이 변화하면서 쌀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몽골은 현재 쌀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2024년 쌀 수입량은 4만 9,536톤, 금액으로는 약 460억 원 규모다. 몽골 정부는 쌀 자급을 위해 1980년대부터 벼 재배를 시도해 왔으나, 낮은 기온, 짧은 생육기간, 알칼리성 토양이라는 자연환경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결국 몽골 정부는 식량 안보를 강화하고자 사막에서 벼 재배에 성공한 경험과 세계 최고 수준의 벼 재배 기술력을 갖춘 한국에 2023년 벼 재배 시험을 요청했다. KOPIA 몽골 센터는 즉시 현지 환경을 분석한 뒤, 이듬해 기후 적응성이 높은 품종 선발 시험을 마쳤다. 이어 2025년 1월 홉드도 볼강군에 3,500㎡ 규모의 벼 시험포장을 조성하며 ‘몽골 적응 벼 재배기술 개발사업’의 돛을 올렸다.
몽골의 벼 재배 환경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기온이 낮아 생육 가능 기간이 매우 짧은 데다, 토양의 수소이온농도(pH)가 높은 알칼리성 토양이라서 벼가 자라기에 부적합하다. 센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늦게 심고 빨리 수확할 수 있는 조생종 품종(진부올벼, 진부벼, 아세미 등 한국 품종 3종과 중국 품종 1종)을 엄선했다. 또한 혹독한 추위를 고려해 비닐하우스 육묘 기간을 40일로 늘려 튼튼한 모를 길러냈고, 기온이 충분히 오른 6월에 모내기를 진행했다. 알칼리성 토양에는 산성 비료를 투입해 벼 생육에 알맞은 약산성 내지 중성 토양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그 결과 2025년 9월, 마침내 ‘진부올벼’가 묵직한 낟알을 맺으며 몽골 역사상 최초의 벼 재배에 성공했다. 농촌진흥청이 1992년 육성한 진부올벼는 추위에 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아 한국의 고랭지에서도 재배하는 극조생종 품종이다. 시험 재배 결과 낟알이 충실히 여물어 수확 안정성을 입증했으며, 수량은 10a당 약 500kg 수준으로 추산됐다. 이는 몽골에서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벼 재배와 수확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번 시험 재배에서 수확된 벼는 대부분 종자용으로 보관됐다. 앞으로 재배 면적을 넓히고 몽골에 맞는 표준 재배기술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KOPIA 몽골 센터는 연구 결과를 정리한 『몽골 적응 벼 재배기술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기술 성공을 넘어 새로운 산업 기회를 만들고 있다. 몽골의 식량 자급을 향한 물꼬를 텄을 뿐만 아니라, 한국 농업의 전방위 산업이 해외로 뻗어 나가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몽골은 벼 재배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농자재와 비료 대부분을 한국에서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번 시험 과정에서도 한국산 농자재가 몽골의 거친 환경에서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며 현지 정부와 농가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었다. 앞으로 몽골에서 벼 재배가 본격화되면 저수지 조성과 관개수로 정비, 정미 시설 등 기반 인프라 구축은 물론 농기계, 비료, 종자와 같은 한국형 농업 투입재의 수출길이 넓게 열릴 전망이다. 잠발체렌 몽골 식량농업경공업부 차관은 이번 성과를 “몽골 농업사의 국가적 사건”으로 평가하며, 진부올벼의 안정적인 정착과 재배 규모 확대를 위해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KOPIA 몽골 센터의 협력은 벼에만 그치지 않는다. 몽골의 대표 곡물인 밀에서도 중요한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몽골은 약 120만ha 경지 중 약 40만ha에서 밀을 재배하는 주요 곡물 생산국이다. 그러나 2014년 이전까지 몽골 자체 개발 밀 품종의 보급률은 3% 미만에 불과했다. KOPIA 몽골 센터는 몽골 식물농업과학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다르항 144호’ 등 우량 밀 품종을 개발했다. 그 결과 몽골 개발 밀 품종의 보급률은 24%까지 상승했다. 기본종자-원종-보급종으로 이어지는 종자 생산 체계를 구축해 밀 생산 기반을 안정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기본종자 약 1,050톤, 원종 4,600톤, 보급종 3만 톤 이상을 생산해 종자 자급률 80%를 달성하고 생산성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몽골의 식량안보를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몽골 농업의 중심은 여전히 축산이다. 하지만 사료 부족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였다. 겨울마다 사료 부족으로 가축이 대량 폐사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KOPIA 몽골 센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부터 현재까지 몽골생명과학대학과 협력하여 ‘맞춤형 축산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전국 4개 지역 80개 농가를 대상으로 사료작물 종자 106톤을 생산·보급한 결과, 조사료 자급률은 16.7%에서 81.7%로 급상승했다. 또한, 몽골 환경에 적합한 발효사료 미생물 3종을 선발하고, 한국형 완전혼합발효사료(TMF) 4톤을 공급하여 질적 혁신을 병행했다.
그 결과, 고기 생산성은 17%, 우유 생산성은 31% 증가했으며, 참여 농가의 소득은 적게는 86%에서 많게는 162%까지 크게 늘었다. 사업의 영속성을 위해 발효사료연구센터와 400톤 규모의 종자 저장고를 신축하며 기술이 현지에 완전히 뿌리 내릴 토대도 마련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사업은 현재 4개 도, 10개 지역, 150개 농가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 체계로 확대되었다. 특히 농업기술 협력은 이제 산업 전반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축산 기술 보급과 발맞춰 한국 동물약품 기업들이 참여하는 수출 상담회가 열리는 등 기술 전수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몽골 초원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이제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KOPIA 몽골 센터가 거둔 성과는 단순히 특정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량 종자 개발부터 선진 재배 기술, 안정적인 사료 생산과 농기계 기계화에 이르기까지, 몽골 농업 전반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40년의 숙원을 푼 벼 재배 성공은 이러한 기술 협력이 맺은 가장 상징적인 결실이다. 이와 더불어 밀 종자 자급과 축산 기술 혁신은 몽골 농업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며 식량 안보의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있다.
척박한 초원의 땅에서 씨를 뿌린 한국의 농업 기술은 이제 몽골의 생산 현장을 바꾸고 식량 자급의 꿈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현지 환경에 녹아든 K-농업의 저력은 두 나라의 신뢰를 더욱 깊게 만들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상호 호혜적인 산업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초원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한국 농업의 혁신은 이제 몽골의 내일을 환하게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