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26 Vol.248

April 2026 Vol.248
그린 Poeple > 셀럽의 식탁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모든 당신이 기적이다

부검실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차갑지만, 그 끝에서 다시 뜨거워지는 건 삶이다.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말하는 삶의 소중함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함께 숨 쉬며 ‘같이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다.
한 끼를 챙기며 내 곁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는 일.
그의 식탁은 오늘도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장유정 ㆍ 사진 김정호

이호 법의학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단골손님, 그는 다름 아닌 법의학자 이호 교수다. 수많은 의문사 앞에서 매일 죽음을 마주하지만, 그의 시선은 끝내 생(生)으로 돌아온다. 본과 시절 또래 대학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법의학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그는 죽음의 경위를 의학적으로 밝혀 기록하는 일을 이어왔다. 진지하고 깊은 고뇌가 깔린 자리에서도 이호 교수에게는 특유의 아재개그와 웃음이 남는다. 죽음은 그에게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이자, 같은 비극을 줄이기 위한 치열한 수업 현장이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유족과 사회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이호 교수는 죽은 이를 대신해 말하고, 남은 이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의사, 법의학자다.

Q.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즘 교수님의 일상은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나요?

안녕하세요. 법의학자 이호입니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법의학 강의도 하고, 전라북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없다보니 도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맡아 부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통 오전에는 부검을 하고, 오후에는 감정서를 쓰고 수업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Q. 법의학자란 어떤 직업인지, 또 ‘법의학자’라는 길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요?

법의학은 말 그대로 법정에서 필요한 의학, 즉 법과 맞닿아 있는 의학적 문제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저는 시신을 통해 사인을 진단하고, 죽음의 경위를 의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하는 법의 병리학자입니다.
제가 법의학자가 된 계기는 조금 오래된 사건 하나에서 시작됐습니다. 본과 1학년이던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조선대 故 이철규 학생이 실종됐다가 한참 뒤 발견된 일이 있었어요.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 추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정황은 고문치사 유기처럼 보였음에도, 부검 소견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의문사를 풀어내는 일도 의사의 역할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의학을 하면, 억울한 죽음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죽음을 막는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Q. 교수님은 법의학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다” 라고 표현하셨어요. 이 일을 하며 ‘삶이 더 소중해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매일 저녁, 말 그대로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잠이 들잖아요. 내일도 눈을 뜰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잠드는 거고, 내일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잠들기 어려울 겁니다. 실제로 잠자다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이런 경우를 자연사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저는 매일 익사나 추락사 같은 비자연사를 봅니다. 부검의 대상이 되는 죽음들은 어떻게 보면 자기의 삶을 다 채우지 못한 죽음들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비자연적인 죽음에는 공통점과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사회 시스템이 조금만 바뀌었더라면, 미리 대비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인리히의 1:29:300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심각한 인명사고 1건이 일어나기 전에 경상 사고가 29번, 그 이전에 비슷한 사건이 300번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1번의 큰 사고 전에 300번의 신호가 있었다는 얘기죠. 조금만 더 안전에 유의하고, 한 번만 더 점검했으면 달라질 수 있었던 겁니다. 제게 오는 주검들은 결국 그걸 막지 못한 ‘마지막 결과’입니다. 저는 삶을 다 채우지 못한 죽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삶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같은 죽음을 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늘 따라옵니다.

Q.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농촌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사고 예방 수칙은 무엇입니까?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혼자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같이 일하던 일을 이제는 혼자 감당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고가 나도 발견이 늦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어르신들의 경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해오던 일이어서 ‘늘 하던 대로’가 몸에 배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안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일종의 불감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술 개발이 고도화되고 빨라지면서 사고의 양상도 달라졌고요. 새로운 농기계가 들어오면,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그 기계에 대해서는 초보자에게 하듯 다시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때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너무 다르거든요. 환경이 달라졌으면, 시스템도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페일 세이프(fail safe)’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일 세이프는 기계가 고장 나거나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안전한 상태로 전환되어 인명 피해나 사고를 막는 설계 및 안전 대책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전원이 끊기거나 이상이 발생하면 그대로 추락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해 멈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문제가 생겼을 때 ‘계속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을 기본으로 설계해 사고를 막는 것이죠. 농기계도 이런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실외 온도가 35도를 넘으면 경운기가 자동으로 멈추고, 동시에 어르신 휴대전화로 경보가 울리는 식인 거죠. 어떤 기준을 넘어가면 ‘그 순간엔 멈추자’고 자동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농촌 사고는 분명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Q. “한번 놓친 끼니는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하실 만큼 음식에 진심이라고 들었습니다. 교수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사는 어떤 자리인가요?

누구도 과거로는 못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능한 끼니는 거르지 않고 챙기려고 합니다. ‘한 번 놓친 끼니’는, 말 그대로 정말 돌아오지 않거든요.

그리고 밥은 될 수 있으면 같이 먹으려고 해요. 우리 식구들, 동료들, 내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요. 저는 밥상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누구와 한 호흡으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식탁은 내 곁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해주는 자리인 거죠.


삶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 자체가 기적입니다.


Q. 자주 가는 맛집, 또 그곳을 찾는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완주에 있는 ‘송광순두부’에 자주 갑니다. 그 지역에서 나는 국산콩으로, 새벽 4시부터 간수를 부어 직접 순두부를 만드는 곳인데요. 그 식당엔 ‘백탕’이라는 메뉴가 있어요.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순두부 그 자체입니다. 이런 메뉴는 숨길 게 없죠. 콩이 좋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납니다. 콩의 민낯, 본연의 맛이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그래서 더 믿고 먹게 됩니다. 그 집 순두부 한번 먹고 나니 수입콩으로 만든 순두부에 쉽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만큼 국산콩 특유의 고소함과 진한 맛이 살아 있어요.

농촌진흥청에서도 우리 품종 콩 연구를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그런 연구가 결국은 이렇게 식탁 위에서 맛으로 증명되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 연구실에 있는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참 인상적이에요. 『그린매거진』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산다는 건, 결국 같이 사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또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도 사람 관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나뭇잎은 바람에 흩날려도 서로 간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부딪혀도, 서로를 베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나와 한 호흡으로 먹고사는 존재라고 여기면서요.
삶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Vol.248
2026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