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6 Vol.250

June 2026 Vol.250
그린 Next > 인터뷰

클로로필이 빚은
초록빛 마늘,
우리 품종 ‘홍산’의
이유 있는 자신감

마늘 끝에 감도는 선명한 초록빛은 결코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항암과 간 기능 개선에 탁월한 클로로필 성분이 응축된 홍산 마늘만의 훈장이다.
전북 부안의 변산농장을 일구는 석승인 대표는 귀농 15년 차의 노련함으로 우리 품종 홍산 마늘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씨마늘을 직접 생산하는 주아 재배부터 마늘 정과와 고추장 같은 가공식품까지, 그의 마늘은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들의 건강한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정성과 기술로 국산 마늘의 자부심을 지켜가는 변산농장 석승인 대표의 진심 어린 농사 이야기를 전한다.

박수인 ㆍ 사진 이준우 ㆍ 추천 및 감수 파속채소연구센터 최철우 농업연구사

석승인 변산농장 대표

도시를 뒤로하고 농부의 삶을 선택하다

2012년, 석승인 대표는 38년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치매 진단이 계기였다. 농사는 처음이었다. 막막했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배웠고, 농업벤처대 과정을 1년 만에 수료했다. 주변의 권유로 머위 시설 재배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농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작물 관리부터 유통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임차한 하우스 부지가 70여 년 전 염전 자리였다는 점이었다. 땅속 깊이 남아 있던 염분 때문에 작물이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결국 8년 만에 시설하우스를 접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순한 실패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 8년 동안 농사의 기초를 몸으로 익혔다. 한국농수산대학 마이스터 과정을 밟았고, 굴삭기와 지게차 면허까지 직접 취득하며 농장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하나씩 익혀나갔다. 어떤 농산물을 어떻게 재배하고 판매해야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현장에서 배운 시간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못 하는 게 없어야 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농업이더라고요.”

전환점은 서울 강동구 도토리 장터였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소비자와 얼굴을 맞댄 그 경험이 가공에 대한 생각을 싹트게 했다. 양파즙, 양파가루, 장아찌 등 이것저것 시도해 보던 중 부안마늘연구회에 가입하며 마늘과의 인연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여느 농가처럼 대서 마늘 농사부터 시작하다가 연구회 활동을 이어가며 홍산 마늘을 접하게 됐다.

“내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무엇이든 배운다는 각오로 마늘 농사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마늘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되었다. 현재 변산농장의 마늘 재배 면적은 16,529m2(5,000평)으로, 이 중 11,570㎡(3,500평)은 대서 마늘, 4,959㎡(1,500평)은 홍산 마늘을 짓고 있다.

클로로필 성분이 풍부하여 끝자락에 초록빛이 감도는 홍산 마늘

홍산 마늘이 보여주는 우리 품종의 힘

부안마늘연구회 회원의 추천으로 처음 접한 홍산 마늘은 일반 마늘과 달랐다. 구가 크고 단단하며, 무엇보다 끝이 초록빛을 띠었다. 홍산(弘蒜)은 이름처럼 추운 곳, 따뜻한 곳, 전국 어디서나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다. 농촌진흥청이 2014년 개발하고 2016년 품종보호권을 출원한 순수 국산 마늘로, 2020년에는 대한민국 우수품종상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마늘 품목에서 대통령상이 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교배·육종·상용화까지 수년간의 연구 끝에 맺은 결실이다.

홍산은 고유 유전 특성으로 인해 클로로필(엽록소) 성분이 일반 마늘보다 1.6~3.5배 많아 끝이 초록빛을 띤다. 이 클로로필은 항암 작용, 당뇨 완화, 조혈 작용, 간 기능 개선, 고혈압·고지혈증 완화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성분이다.

석승인 대표는 소비자들이 초록빛을 보고 감자의 독성 성분인 솔라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감자가 초록빛을 띠는 건 독소지만, 홍산 마늘은 전혀 달라요. 클로로필은 기능성 성분입니다.”

소비자의 오해를 풀고 홍산 마늘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석 대표에게 농사만큼 중요한 과제다. 홍산 마늘의 알리신 함량은 다른 품종보다 45% 이상 높고, 당도는 42.8브릭스에 달한다. 항산화 물질인 총 페놀과 총 플라보노이드도 다른 품종보다 30% 이상 많다. 조단백질 성분과 인·마그네슘·칼슘·아연·망간 등 미량 원소도 10~20% 이상 더 함유하고 있다.

“벌레도 범접을 못 해요. 당도가 높고 항균 성분이 강하니까요. 그 정도로 좋은 마늘입니다.”

지금 국내에서 재배되는 마늘의 약 80%가 대서종 같은 외래종인 현실에서, 홍산은 우리 품종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대표 사례다.

홍산 마늘은 김장용으로 사용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반 마늘보다 숙성 속도가 느려 김치가 쉽게 무르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풍부한 감칠맛을 내는 까닭이다. “우리 집은 김장할 때 무조건 홍산 마늘만 씁니다. 그 맛의 차이를 직접 경험해 본 분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다시 찾습니다.”

초록빛 마늘을 향한 소비자들의 낯선 시선도 이제는 조금씩 기대와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혁신적인 기술력에 농부의 우직한 진심이 더해진 만큼, 석승인 대표는 홍산 마늘이 머지않아 대중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보약 마늘’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씨앗부터 남다른 고집, 기다림으로 빚은 명품 씨마늘

석승인 대표가 무엇보다 공을 들이는 작업은 바로 ‘주아(珠芽) 재배’다. 마늘종 끝에 맺히는 작은 씨눈인 주아를 채취해 말린 뒤, 가을이나 이듬해 봄에 파종하여 씨마늘(종구)을 직접 생산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씨마늘을 반복해서 사용하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지지만, 주아 재배를 거치면 훨씬 건강하고 우수한 씨마늘을 얻을 수 있다.

주아는 조직이 치밀하고 알리신 함량이 높아, 이를 통해 생산한 씨마늘은 품질 면에서도 일반 종구보다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업 과정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지만, 씨마늘 구매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농가 경영에도 큰 보탬이 된다. 이렇게 생산한 씨마늘을 다시 심어 이듬해 수확하기까지, 홍산 마늘 한 통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무려 2년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하지만 석 대표는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야 진짜 건강한 마늘이 나옵니다. 좋은 씨앗이 결국 좋은 마늘을 만드는 거예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변산농장이 제안하는 마늘의 화려한 변신

마늘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몸에 좋은 마늘도 한꺼번에 많이 먹기보다는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늘을 간식처럼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 끝에 석승인 대표는 정성을 다해 키운 마늘을 ‘정과’로 재탄생시켰다.

변산농장의 대표 상품인 마늘 정과는 만드는 방식부터 남다르다. 일반 전기밥솥에 찌는 대신 가마솥에 사양꿀을 넉넉히 넣고 은근한 불로 삶아낸 뒤, 건조기에서 말려 고소한 콩가루를 묻혀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정과는 쫀득하게 씹는 식감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마늘 본연의 영양 성분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씹을수록 깊어지는 풍미에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홍산 마늘을 아낌없이 넣어 담근 마늘고추장 역시 별미다. 마늘의 알싸한 향과 고추장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 고추장은 입소문만으로 해마다 주문이 쏟아지는 이른바 ‘밥도둑’이다.

석승인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 연말 출시를 목표로 홍산 마늘 액기스 개발에 한창이다. 정과를 삶아낸 육수에 마늘을 곱게 갈아 넣고 다시 한번 진하게 끓여낸 이 제품은 커피나 요구르트에 섞어 마실 수 있어 마늘 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간편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내년에는 마늘청 출시도 앞두고 있다며, “결국 가공이 답입니다. 더 많은 분이 우리 홍산 마늘의 좋은 성분을 일상에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성공적인 가공을 향한 열정은 해외 연수로도 이어졌다. 올해 3월 석승인 대표는 스페인 마늘 산지를 방문해 수확부터 가공까지 100% 기계화된 대규모 농업 현장을 직접 살폈다. 1인당 최소 330,579m2(10만 평)를 경작하는 압도적인 규모였지만, 평균 수확량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좁은 땅에서 농부의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거쳐 키워낸 국산 마늘의 품질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 한번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지 마트에서 본 소포장 마늘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인 가구가 2~3일 내에 소비할 수 있도록 앙증맞게 담긴 소형 포장 방식은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좋은 힌트가 되었다. 그는 해외연수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홍산 마늘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건강한 마늘 한 쪽에 담긴 농부의 진심

변산농장의 마늘은 유독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다. 항암 치료 경험자 450여 명이 모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변산농장의 든든한 직거래 단골이다. 이들은 제품을 대량으로 받기 전, 샘플을 먼저 수령해 농약 성분 잔류 여부를 직접 검사할 만큼 철저하다. 석 대표는 이 엄격한 검증 과정을 오히려 환영한다. “건강 관리에 진심인 분들이 저를 믿고 다시 찾아주실 때, 농부로서 가장 큰 인정을 받는 기분입니다.” 이렇듯 꼼꼼한 검증을 거치며 쌓아온 신뢰야말로 변산농장이 가진 가장 값진 자산이다.

앞으로 석승인 대표는 홍산 마늘의 뛰어난 기능성을 온전히 담아낸 제품군을 차근차근 늘려갈 계획이다. 이미 정과와 고추장을 넘어 액기스, 마늘청으로 이어지는 가공 라인업이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가공 제품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가 일상에서 홍산 마늘의 가치를 손쉽게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예부터 마늘은 일해백리(一害百利)라 불렸습니다. 특유의 냄새 하나만 빼면 백 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죠. 특히 홍산 마늘은 클로로필과 알리신 성분이 일반 마늘보다 훨씬 풍부해, 꾸준히 드시면 몸이 먼저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마늘의 효능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경험한 그는 지금도 매일 직접 만든 마늘 정과를 챙겨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더 좋은 상품을 개발해 국민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건넨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묵직한 농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Vol.250
2026년 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