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6 Vol.250

June 2026 Vol.250
그린 Special > 세계로 간 농업혁신

국경 없는 식량 안보,

‘K-농업기술’이
세계의 대지를 일구다

농촌진흥청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국제개발협력 프로그램이 현지 농업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를 아우르는 ‘대륙별 다자간 협력 네트워크(3FACIs)’가 있다.

박수인 ㆍ 도움 국제기술협력과 한종석 농촌지도관, 박수윤 농업연구사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를 잇는 거대한 농업 지식 공유의 장

대륙별 다자간 협력 네트워크는 단순히 기술을 전수하는 단계를 넘어, 농업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와 회원국은 각 대륙이 직면한 공통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기술 개발과 보급을 통해 식량안보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공동연구를 통한 정보 교류와 벤치마킹은 국가 간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각국의 생산성 향상과 상호 발전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현재 3개 협의체에 참여 중인 국가는 총 67개국에 달하며, 대륙별 특화 과제 발굴과 총회 중심의 체계적인 운영을 통해 내실을 다지고 있다.





아시아 농업의 미래를 여는 K-농업기술의 저력

한-아시아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AFACI, Asian Food & Agriculture Cooperation Initiative)는 2009년 11월, 필리핀과 베트남 등 5개 회원국 농업부 차관급이 참여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꾸준한 외연 확장을 거듭한 AFACI는 현재 네팔, 라오스, 몽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거대 협의체로 성장했다.

AFACI는 농촌진흥청이 보유한 우수한 디지털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아시아 농식품 정보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과 첨단 농업에 대한 회원국들의 강력한 요구를 반영하여, 디지털 농업의 근간이 되는 농업 데이터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아시아 최초 ‘아시아 토양지도’


가장 독보적인 성과는 ‘아시아 토양지도’ 제작이다. 아시아 13개국은 농촌진흥청의 ‘흙토람’ 구축 기술을 기반으로 국제 토양 분류 체계를 공동 적용했다. 이를 통해 토성, 수분, 산도(pH), 탄소 등 12개 항목의 디지털 토양 특성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2023년 완성된 이 지도는 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통합 토양지도로 기록되었으며 전 세계에 배부되었다.

토양지도에 수록된 지형과 비옥도 정보는 작물 재배 적지 선정과 생산성 향상 전략 수립에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데이터다. 라오스, 몽골, 방글라데시, 베트남, 부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8개국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국가 차원의 토양정보시스템을 처음으로 구축했다.

국경을 넘는 농업 협력, 아시아의 식량 안보와 디지털 혁신을 선도

식품 영양정보 분야에서도 새 역사를 썼다. 농촌진흥청의 ‘농식품올바로’ 구축 기술을 전수받아 2024년 ‘아시아 식품성분 데이터베이스(DB)’를 완성한 것이다. 이 DB에는 단백질, 지방, 무기질 등 16개 항목에 걸쳐 아시아 주요 소비 식품 923점에 대한 영양정보 1만 2,848건을 담았다. 이어 2025년에는 아시아 전통음식 120종의 특성과 조리법, 식재료 영양정보를 집대성한 「아시아 음식 문화유산」 자료집을 발간하며 성과를 이어갔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해충 문제에도 AFACI 회원국들이 머리를 맞댔다. 벼멸구와 열대거세미나방 등 주요 해충의 모니터링 방법을 통일하고, 2025년까지 총 5만 2,952건의 발생 정보를 공유했다. 농촌진흥청의 ‘국가농작물병해충관리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축한 ‘아시아 이동성 해충 및 바이러스 감시 시스템(AMIVS)’은 회원국의 식량 안보를 강화하는 핵심축이다. 이는 이동성 해충에 대한 우리나라의 선제적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품종 개발 사업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각국의 재배 환경에 적합한 우수 벼 계통(8개국 71계통)을 선발하는 한편, 고추와 토마토 신품종 개발 사업을 통해 13개국에서 선발한 541계통 중 9개국 38종이 국가 품종 등록을 마쳤다. 특히 라오스는 이 사업을 통해 자국 최초로 토마토 품종을 개발·등록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방글라데시와 부탄에서는 안정적인 종자 생산 및 보급 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시아 음식 문화 유산」 책자 발간



K-라이스의 기적, 아프리카의 굶주림을 희망으로 바꾸다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KAFACI, Korea-Africa Food & Agriculture Cooperation Initiative)는 식량 안보 강화와 기아 종식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2010년 7월 케냐, 세네갈 등 16개국이 참여하며 출범했다. 이후 가입국이 꾸준히 늘어 2024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14개국이 추가로 합류했다. 이로써 KAFACI는 현재 37개국이 함께하는 거대 협력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KAFACI의 대표적인 성과는 ‘한-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이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 사업을 통해 아프리카 15개국의 기후와 토양에 최적화한 벼 71품종을 개발하여 등록을 마쳤다. 말리 15종, 가나 8종, 감비아 6종 등 각국의 농업 환경을 세심하게 반영한 맞춤형 품종들은 놀라운 생산량 증대로 이어졌다. 2022년 ha(헥타르)당 평균 2.7톤이었던 아프리카의 벼 생산량은 2024년 7.1톤으로 급증하며 2년 만에 160%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짐바브웨(3톤→12.2톤), 카메룬(1톤→6.5톤), 탄자니아(2.5톤→7.5톤) 등 주요 국가의 성과는 식량 자급의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했다.

이러한 성과는 국제 사회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2021년 OECD 공공부문 국제협력 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아프리카 농업의 규모화를 위한 ‘K-라이스벨트’ 사업으로 외연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협력의 방향이 일방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개발한 벼 품종 28종이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 기탁되었으며, 앞으로 43종을 추가로 수탁하여 국내 육종 소재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공여국과 수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진정한 상호 협력의 가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다.

원예·방제로 확장된 협력의 성과

KAFACI는 벼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해충 방제와 원예작물 분야에서도 실질적인 결실을 보았다. 천적을 활용한 친환경 방제 기술을 전수하여 아프리카 전역의 농약 의존도를 낮췄으며, 특히 케냐에서는 해충으로 인한 수확량 손실을 5%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마다가스카르 역시 체계적인 해충 관리 기술을 보급받아 2018년 21만 5,000톤까지 떨어졌던 옥수수 생산량을 2022년 26만 6,000톤으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원예 분야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나타났다. 각국 기후에 적합한 품종을 선발해 보급한 결과, 양파 생산량은 ha당 17톤에서 26톤으로, 토마토는 11.8톤에서 29.2톤으로 각각 90% 이상 향상됐다.

농촌진흥청이 아프리카 전역에 구축한 협력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농업을 보호하는 든든한 방어선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이동성 해충이 아시아를 거쳐 국내로 유입되는 경로를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차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KAFACI의 활동은 아프리카의 식량난 해결을 넘어, 우리 농업의 안전을 선제적으로 지켜내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선 ‘강낭콩의 기적’, 중남미 소농의 내일을 짓다

한-중남미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KoLFACI, Korea-Latin America Food & Agriculture Cooperation Initiative)는 2014년 9월 과테말라, 니카라과, 콜롬비아 등 12개국이 뜻을 모아 출범했다. 2023년 자메이카와 2024년 에콰도르가 차례로 합류하며 현재는 14개국이 함께하고 있다. KoLFACI는 기후변화 대응 신품종 개발을 통한 식량안보 강화와 소농의 소득 안정화 및 자립 지원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KoLFACI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 중 하나는 ‘가뭄 저항성 강낭콩 품종 개발’이다. 중남미 지역의 건기가 길어지고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면서 강낭콩 농가의 피해가 커지자, 농촌진흥청은 2020년부터 과테말라,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등 9개국과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5개 국가에서 총 12개의 내건성 품종을 등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니카라과에서는 ‘INTA Nutritivo y Rendidor’ 등 6종이 등록되었으며, 코스타리카의 신품종 ‘Uran’은 기존 품종보다 ha당 675.6kg을 더 생산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 사업은 2023년 국무조정실 주관 국제개발협력위원회 평가에서 기후변화 적응 분야의 우수 성과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탄소는 줄이고 소득은 높이는 녹색 전환

온실가스 감축 분야에서 중남미 지역 최초로 유의미한 결실을 거두었다. 2022년부터 추진한 ‘농경지 온실가스 배출 저감 최적 재배법 연구’를 통해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콜롬비아, 파나마, 엘살바도르 등 6개국에서 목초지와 농경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특히 2025년 발간한 「중남미 맞춤형 농업 온실가스 표준 기술 자료집」은 각국이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핵심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파나마에서는 옥수수와 강낭콩 윤작 시스템 분석을 통해 온실가스를 최대 42%까지 감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중남미 소농의 실질적인 소득 향상을 위한 노력도 빛을 발하고 있다. 카카오 재배 시스템 개선 연구에 기후스마트 농업기술과 혼농임업을 도입한 결과, 국가 평균을 압도하는 수확량을 기록했다. 코스타리카는 국가 평균의 6배, 니카라과는 4.8배에 달하는 생산성을 보였다. 이러한 선진 농업 기술의 성공적인 보급은 소농들의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졌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카카오 재배 농가의 소득은 니카라과 2.7배, 파나마 10.5배, 코스타리카 3.8배 등 놀라운 성장세를 나타냈다.

커피 분야에서는 전정(가지치기) 기술 개발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코스타리카에서는 3~4년 주기의 전정 처리를 통해 대조구 대비 44% 향상된 생산성을 확인했으며, 이는 국가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가축분뇨를 활용한 유기 비료 개발 사업 역시 괄목할 만하다. 콜롬비아에서 개발한 ‘우분-인광석 결합 유기광물질 비료(FOM)’는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 비료는 2026년 완공 예정인 시범 생산 공장을 통해 현지 농민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상호 신뢰로 가꾸는 세계 식량안보의 미래

세 협의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일시적인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역량 강화’다. AFACI는 아시아 14개국 청년 과학자 1,530명의 연구 역량을 길러냈으며, KAFACI는 아프리카 23개국에서 벼 육종가 48명을 직접 양성해 현지 자생력을 높이는 토대를 마련했다. KoLFACI 또한 수백 명에 달하는 소농과 기술자를 대상으로 꾸준히 현장 교육을 이어가며 기술 자립을 돕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전하는 것은 단순한 씨앗과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그 씨앗을 싹 틔우고 키워낼 전문 인력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현지에 함께 심는다. 과거 녹색혁명을 통해 일어섰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식량안보를 함께 가꿔나가는 든든한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우리 농업기술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길 위에서 농촌진흥청의 세 협의체(AFACI, KAFACI, KoLFACI)가 신뢰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Vol.250
2026년 06월호